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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베끼기와 훔치기

송미숙

송미숙의 미술시평(27)

일부 미술사가들은 피카소를 평할 때 표절의 표본으로 꼽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보통이 아닌 천재적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른다. 이 천재적인 표절주의자 피카소는 한 때, 아마도 이러한 그의 평가를 의식했었던지 ‘좋은 작가는 베끼고, 위대한 작가는 훔친다(A good artist copies, but a great artist steals)’ 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베끼는 [Copy]문제는 바르셀로나에서는 뭉크와 툴루즈 로트렉, 파리에서는 몽마르트르의 바토 라부아르(Bateau Lavoir) 에 자리를 잡고 열심히 브라크를 통해 세잔을, 동시에 막 문을 열었던 아프리카 원주민 박물관에서 ‘원시미술’을 열심히 ‘베꼈다.’ 이러한 원시·원주민 미술에 대한 자각은 그를 자신의 고향 스페인의 이베리아 조각에 눈을 돌리게 했고 조각을 하면서는 동향 조각가인 곤잘레즈를 통해 철 조각을 ‘훔쳤다.’ 조르지오 데 키리코에게서는 그림자의 세계를 훔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일명 로코코 큐비즘 시절에는 열심히 17세기 프랑스의 고전 푸생(Poussin)과 사실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르넹(Le Nain)의 구성을 따라 하기도 했다. 볼라르(Vollard) 에칭 연작은 공공연한 춘화도며 괴기한 관능주의는 앵그르를 연상케도 한다. 그의 필생의 수수께끼는 스페인 고향이 낳은 대가 벨라스케즈의 <궁정의 시녀들(Las Meninas)>였고 그는 말년을 이 작품의 구성을 재현하는데 바치게 하기도 했다. 미술사가들의 작업은 이러한 작가들의 표절의 출처를 밝히고 그 연원과 의미성을 추적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바친다. 피카소의 이러한 표절의 행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천재로, 대가로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돌이켜 보면 ‘베끼는’ 작업은 미술교육에서 중요한 과정중의 하나다. 석고데생, 인물드로잉이 그렇고 사생도 어찌 보면 자연을 ‘베끼는’ 일이다. 얼마나 그럴듯하게 ‘베끼냐’가 그림에 대한 재능을 식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아카데미에서는 공공연하게 루브르에서 대가들의 구성을 ‘베끼도록’ 권장하며 지금도 미술관에 가면 베레모를 쓰고 열심히 ‘베끼는’ 화가들을 볼 수 있다. 19세기 말 영향력이 상당했던 샤를 블랑이라는 한 고전주의·절충주의 미학자는 라파엘의 바티칸 벽화를 모사능력이 뛰어난 작가들을 선별해 그들로 하여금 ‘모사화’를 만들어 전시하는 ‘모사화 미술관(Museum of the copies)’을 구상하기도 했다. 19세기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20세기의 소위 대가들도 모색기에는 대개가 이 ‘베끼는’ 과정을 드러내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피카소가 구분 짓고 있는 ‘베끼는’ 행위와 ‘훔치는’ 그것을 어떻게 식별해 내는가에 있을 것이다. 하나는 외형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면, 즉 개념적인 것인가? 또는 ‘베끼는’ 행위는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던 진·위의 문제, 차용·전용, 도용, ‘재현(Representation)’의 문제, 그와 관련된 사회적 비평의 한 영역으로 확장시켜 볼 수 있는 반면 ‘훔치는’ 행각은 일종의 윤리적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피카소의 구분은 그의 시대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현대에서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그러나 현대미술을 하는 작가들에게 딜레마는 항상 존재한다. 일찍이 라우센버그가 개탄했듯이 피카소가 다 해버려서 독창적이려면 ‘지우는’ 일과 개작 밖에는 할 게 없을 지도 모른다.

창조의 반의어는 모방이라고 하지만 한편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기도 한다. 독창성·창조와 항상 함께 가는 ‘상상력’은 다름 아닌 유추의 감각, 유추하는 능력이라고 본다면 열심히 ‘베끼고’, ‘훔치는’일을 계속하는 것이 창조에, 독창성에 이르는 길이라면 역설일까? 물론 여기에는 ‘열심히’와 동기가 무엇인가라는 단서가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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