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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순철의 아티스트데자뷰(7) 임옥상 b. 1950

변순철

1983년, 나는 화가만이 아니며 인간인 것이다
‘미술이란 아름다워야 한다ʼ는 이 땅의 단순 무식한 미술론은 참담한 현실 앞에서 한낱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모두를 버려야 가능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두루마리를 그려 나갈 것이다. 이것은 전시용도 아니고 그림도 아니다. 그냥 그 자체일 뿐이다.

자연성에 대한 신념과 삶 자체로서의 허와 실을 현대사회의 조직과 그 지배자와 지배받는 자의 갈등을, 영원 회귀의 이상과 욕망의 그늘을, 진실과 허위가 한 몸임을, 아! 한 인간이 살아 눈을 부릅뜨고 있음을, 깊은 회환과 뜨거운 민족애와 절망으로 뒤범벅되었으나 자유 의지만은 분명함을 나는 내 온갖 열정을 쏟아 부어 표현해 나갈 것이다.

나 자신은 기존의 어떤 주장이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나를 어떠어떠한 식으로 분류하는 것을 단연코 거부한다. 나는 다만 이 땅에 존재하는 자로서 이 땅의 규정성이라는 범위 내에서 이와 갈등할 뿐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전체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비록 지금은 혼돈인 상태지만 그러한 나를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얻어 낸 결정이다. 나는 기존의 가치 체계 내에서 나를 정의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최근 들어 절실히 깨닫기 시작했다.



1987년, 문화 식민화와 그 이데올로기
우리나라 자연주의 계통의 그림은 인상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도구에서부터 재료, 기법, 미학 및 내용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인상파의 방법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자연주의 미술을 논하기 위해서는 인상주의 미학을 그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서구의 많은 미술사조 중 유독 우리 나라에 인상주의가 수용되고 그것이 아카데미즘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굳게 뿌리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상주의 미술이 우리 나라에 등장한 것은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였다. 일제는 식민 강권을 동원하여 문화 정책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인상주의를 수용하도록 하였다. 일제는 우리의 전통 회화에서의 자연관과 여기(餘技) 사상에 인상주의 외광파의 미학을 교묘히 접목시켜 사회로부터 미술을 거세하는 데 성공하였다. 인상주의는 식민종주국이 바라던 통치 이념과 합치되어 속박받던 피지배 식민에게 한 가닥 정서적 위안물로서 깊이 깊이 자리 잡았다. 이제 미술은 사회 현실과는 전혀 무관한 존재가 된 것이다.

1997년, 살아 오고 버텨 오고
나는 나대로 살아갈 뿐이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나를 감동시키는 그림, 가난한 이웃과 어려운 사람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그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담아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사회의 여러 문제나 나의 의지를 담아 성실한 장인으로서 해낼 수 있는 그런 그림들을 꾸준히 그릴 것이다. 다소 흔들리기도 하고 어려운 나날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살아 오고 버텨 오지 않았던가. 문제는 내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나의 신념에 내가 회의하지 않고 우려하지 않으면서 해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세상에 기생하여 시늉만 내는 그런 더러운 인간으로 전락하지 않고, 세상을 꽉 잡고 끊임없이 고뇌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그런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관리하고 가다듬을 수 있으면 된다. 인생은 얼마나 짧고 또 얼마나 긴 것인가. 지금까지 그린 것보다 더 많이 크게 그리고 더 큰 뜻을 담은 그림을 나는 분명 그릴 것이다.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자신을 불필요한 잡념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지만 않는다면 나는 나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미술에 있어서의 역사라는 화두
매향리를 주제로 개인전을 하겠다는 나의 계획에 대하여 한 큐레이터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의 의미를 풀어보면 대개 이런 것일 것이다. 임옥상은 민중미술로 ‘스타ʼ가 된 사람이긴 하지만 여전히 그 민중미술을 고집하고 있으니 안타깝다는 것이고, 이 시대는 이미 자본주의의 승리가 명백한 뉴밀레니엄 시대인데 시대 조류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미술이란 늘 새로움을 찾는 작업인데 예전의 명제를 놓고 헤메고 있으니 아직도 미술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에게 매향리의 어제와 오늘, 주민들의 고통, 매향리와 한국 역사, 강력한 미국 자본주의의 진실과 한민족의 운명 등은 관심 밖의 일일 것이다.

나의 미술은 여전히 정치사회적인,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라는 사고에서 출발한다. 정치, 이념, 역사가 곧 미술은 아니지만 정치와 이념, 역사가 미술과 무관할 수는 없다. 이들과 무관한 상황에서 미술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어떻게 미술이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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