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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미술과 도시 : 재현과 매개의 시공간

이현경



어느 시대든 권력가들에게 도시는 그들의 야망을 체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관리 공간이었다. 때문에 도시가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그 원리를 살피는 것, 즉 건축된 도시를 보는 것은 그 시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알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건축된 도시를 기억하며 그리는 것은 화가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모더니즘 시기에는 독일의 바우하우스,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미국의 정밀주의 등이 산업화가 이루어낸 그리드(Grid) 시스템을 가진 건축들을 찬양하였다. 이처럼 도시에 사는 예술가들에게 도시는 매일 숨 쉬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예술적 감수성을 자라게 하는 공간이다. 이렇게 도시와 건축, 그리고 미술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지난 10월 11일 토요일, 미술사학연구회에서는 ‘미술과 도시 : 재현과 매개의 시공간’이라는 주제로 이를 심도 있게 살피고자 하였다.  

최종현(통의도시연구소) 씨는 ‘안평대군의 꿈, 몽유도원(夢遊桃源)과 무계정사’에서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 이용(李瑢, 1418-1453)이 1447년 꿈에 다녀온 도원을, 화가 안견(安堅)에게 청하여 3일 만에 완성한 <몽유도원도>에 나타난 산수풍경이 실제 장소에 근거한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조선전기의 대표적 그림인 <몽유도원도>는 도원의 이상향을 그렸다는 의도에서도 보통 관념산수의 하나라고 생각되지만, 최종현 씨는 경복궁의 서쪽 뒤편에 있던 수성동 계곡의 무계정사에 은거하던 안평대군이 그가 평소에 다니던 수성동에서 북한산 보현봉을 바라보았을 때의 풍경을 담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발표자의 오랜 서울 답사를 통한 눈썰미에 의해 밝혀진 결과이다. 또한 몽유도원의 진짜 의도는 둘째 형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 정사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던 안평대군이 이루고자 한 조선의 모습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미정(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 씨는 ‘한국 기하추상미술, 도시적 상상력과 소환된 자연’에서 60, 70년대 도시인들은 새마을운동을 통한 도시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빠르게 사라져 가는 자연을 목격하였고, 그로 인해 상실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표현이 한국적인 기하추상미술로 도출되었다고 하였다. 그동안 70년대의 단색화 미술은 주로 캔버스의 표면과 지지체의 문제로 해석되면서 한국적인 모더니즘으로 정의되어 왔지만, 발표자는 한국에서 가장 도시화가 극심하게 진행될 때, 보상적으로 자연을 소환하는 방법이 추상미술로서 모색되었다고 하였다.  

조현정(카이스트 인문사회융합과학대학) 씨는 ‘종합에서 반( 反) 건축으로 : 전후 일본 건축과 미술의 교류’에서 1940년대 말부터 50년대까지 일본 건축가 단게 겐조(丹下健三)의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서, 일본이 서구적인 것을 맹목적으로 쫓던 이전 시기를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전통을 끌어들이고 있는지를 ‘예술의 종합’이라는 개념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전진성(부산교대 사학과) 씨는 ‘ 텍토닉의 식민성 : 베를린, 도쿄, 서울의 프로이센 고전주의 건축 유산’에서 근대기 독일의 신고전주의 건축의 유행은 당시 독일이 다른 유럽국가와의 차별화를 이루기 위한 전략이며, 일본은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적 제국주의를 모방하고자 한 의도에서, 그리고 식민지 조선에서는 근대 문명의 상징으로서 신고전주의 건축이 건설되었다고 하였다. 

장용순(홍익대 건축학과) 씨는 ‘들뢰즈의 리좀(Rhizome), 현대 도시론의 기초’를 발표하였다. 불어로 리좀은 감자, 연근 등의 뿌리줄기 식물을 지칭하는 이름이지만, 포스트모던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elix Guattari)는 저서『천 개의 고원』에서 위계가 확실한 나무 구조와 대조적으로 리좀은 땅속에서 위계 없이 방사형으로 퍼지는 것에 착안하여, 모더니즘적 형이상학을 뛰어넘는 다양성의 사유로 제시한다. 장용순씨는 이러한 리좀적 사유를 실천하는 도시 건축을 살피면서 매우 재미있는 건축적 아이디어들을 소개하였다.   

우정아(포항공과대 인문사회학부) 씨는 ‘프란시스 알리스 : 도시를 걷는 미술가’에서 1959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건축을 전공한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가 1986년 멕시코시티에 파견된 이후 작업의 목적으로 무작정 걷는 것을 선택한 이유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목적 행위이기 때문에 걷는 알리스의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86년 지진으로 폐허가 된 멕시코시티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씩 구직을 위해 거리를 떠돌고, 또 미국에 불법 취업을 위해서라도 목숨 걸고 국경을 넘는 남미의 현실을 부각시켰다. 너무도 비생산적이어서 헛웃음이 나오는 알리스의 작업은 은유적이지만 능청스럽게 현실과 정치를 끌어들이는 가장 예술다운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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