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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현대미술의 변모 양상

이경성

현대미술이 과거의 상식적인 것을 벗어나서 변모를 거듭하는 동안에 재래에 있던 것은 진부한 것이며 가치가 없으며 이상한 것만이 새로운 창조라고 착각하기 쉽다. 가령, 사람은 눈이 둘 달려 있는데 눈을 하나만 그리거나 눈을 세 개 그리며는 기형이지만 두 개의 눈보다는 확실히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상식적인 것과 늘 보아오던 것은 진부하게 생각하고 이제까지 보지 못한 것과 괴상한 것을 바람직한 변모라고 생각하는 현대미술의 흐름이 있다. 물론 옛날에는 미학자도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을 구별했는데 아름다운것 속에는 뛰어난 아름다움을 주는 우미(優美), 웅장한 아름다움을 주는 장미(壯美)로 나누었다. 거기다가 더러운 것까지 추미(醜美)로 넓은 의미의 미학 속에 포함시켰다.<인간의 창조 능력은 아름다움을 쫓다보니 괴상한 것 더러운 것 까지도 그 범주에 포함시켰지만 글자 그대로 비미(非美)인 아름답지 않은 것은 제외시켰다. 그런데 현대미술에 와서 인간의 능력이 새로운 창조에 벽을 넘다보니까 아름답지 않는 것 더러운 것을 훨씬 뛰어 넘어서 이상한 것 그리고 쇼킹한 것이 새로운 미의 대상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형태가 아니고 무엇인지 모르게 괴상하고 이상한게 존재하는 것이 새로운 미라고 혼돈하기 시작했다.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조각가의 작품 속에서 쌍둥이가 붙어서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이 그와 같은 예이다.<인간의 능력은 하나님이 한계를 주어서 무한대로 발전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유한적인 인간이 무한적인 조물주의 흉내를 내다보니까 때때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른다. 물론 아름다움의 잣대는 조건과 시대에 따라 그전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현재는 아름답다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보편적으로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아름답다고 느껴야 하는데, 현대 미학에서 그 선을 넘어 공포의 대상이거나 쇼킹한 것까지도 그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것은 마치 현대영화에서 공포와 파괴가 중요한 요소가 되듯이 부분적으로 영화의 표현방법이지만, 목적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공포와 파괴가 예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 자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의 영역은 무한대이기에 새로 발견되는 것이 창조로 통하지만 비미(非美)에 속한 것은 아름다움이 될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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