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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이명박 대통령, 문화도 살려야 한다

정중헌

2월 하순 취임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를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내세웠다. 국민 통합과 화합, 북핵 등 안보문제, 한미동맹 강화를 기조로 한 4강 실리 외교, 교육 개혁과 대운하 추진 등 산적한 과제에 가려 문화와 예술에 관한 정책은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 복원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여러 일을 했다. 서울문화재단을 출범시켜 문화예술 지원 사업뿐 아니라 문화예술 이벤트와 축제를 만들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재단법인 서울시 교향악단으로 출범시켰고,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을 초빙해 시민에게 다가가는 오케스트라로 탈바꿈 시켰다. 경선과 대선에서도 문화산업, 관광 진흥, 디자인 전략과 예술창작 환경 조성, 국민문화 향수권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공약들을 제시해 놓았으나 네거티브 공세로 인해 문화는 언급조차 하지 못한 채 선거를 치렀다. TV토론에서도 문화예술 분야는 소외되고 말았다.

인수위원회 조직에서도 문화예술은 사회교육문화분과위에 속해 교육 개혁과 복지 정책에 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차 국정과제 보고에서도 국립박물관, 미술관 전면 무료 관람제 정도가 언론에 보도됐다. 1실 7수석으로 개편된 청와대 비서실 조직에서도 문화는 보이지 않아 사회정책 수석인지 홍보 수석 소관인지 알기가 어렵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선진화를 통한 세계일류국가 실현이나 창조적 실용주의에서 문화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하다. 문화산업이 국가의 성장 동력이자 창의력이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원로인 정의채 몬시뇰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경제 발전은 돈이나 권력만 가지고 뒷받침되지 않는다. 문화와 높은 수준의 윤리성이 갖춰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화는 한 나라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척도이며 선진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필수 덕목이다. 문화는 미래 창의 산업의 원동력이며 예술 창작의 원천이다. 무엇보다 문화는 미래 대비 국민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다.

이런 문화의 비중과 가치를 이명박 정부가 소홀히 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늘어난 평균 수명과 여가 시간의 확대에 따른 국민들의 소박한 행복과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차기 정부의 핵심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의 문화전쟁에서 경쟁력을 갖춘 고부가가치 문화산업을 육성하려면 창의력 갖춘 인재양성이 절대적이고, 창의력 배양은 인문학과 예술교육 강화에서 나오기 때문에 문화의 위상을 높일 수밖에 없다. 문화적 소양과 에티켓 없이 선진 사회에 진입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새 정부는 규제를 풀겠다고 발표했다. 문화예술이야말로 인프라를 확충하고 지원은 하되 영국의 팔길이 정책처럼 간섭은 금물이다. 정부가 나서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기 보다는 국민 스스로가 정책을 마련케 하여 정부가 지원하는 문화 서비스 체제로 발상을 전환하지 못하면 아무리 알뜰하고 유능한 정부라 해도 국민들의 진정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 새 정부가 문화 분야에서 할 일은 태산처럼 쌓여 있다. 우선 방만한 문화예술 관련 위원회를 정비하고 국공립 문화단체의 위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 깨진 독에 물 붓기 식이거나 나눠주기 식의 지원 정책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문성 있는 책임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지난 10년간 흐트러지고 왜곡된 문화 풍토부터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다.


창작기반, 인프라구축 간접지원이 필요
다음은 침체된 문화예술계를 어떻게 살려낼 것이냐가 관건이다. 한류는 우리가 주춤한 사이에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4편이나 1천만 이상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계가 활력을 잃고 위축되고 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국제적 명물 대학로가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천정부지로 값이 뛰던 미술시장의 과열현상이 위작 사건과 투명하지 못한 관행으로 움츠러들고 있다. 출판계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문학을 비롯한 창작 전반에 이야기와 상상력 고갈 상태를 빚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할 일은 이 같은 문화를 경제 못지않게 살려내는 일이다. 관 주도나 정책이 아니라 자율과 자립으로 승부하도록 선의의 경쟁 풍토를 조성하되 창작기반이나 인프라 구축 등 간접 지원으로 문화 전반에 신명을 불어넣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인위적인 지원이나 육성이 아니라 자유로운 환경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면 문화예술 전반에 생기가 돌 것이다. 대학로 연극은 간접 지원 방식으로 활성화시켜야 한다. 미술계는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 국가가 보증하는 권위 있는 감정기구 설치가 절실하다. 영화계는 상상력으로 승부하도록 하되 실험적인 작품이나 작가들의 단편은 지원할 필요가 있다. 재원확보가 관건인데 대통령과 영부인이 기금모금에 앞장 서는 것도 새로운 방안이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작은 행복을 누리도록 문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대운하 사업처럼 정부 예산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자신들의 종합문화공간을 갖도록 유도하는 등 참신한 아이디어와 추진의지만 있다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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