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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이중섭 위작논란-유족측은 소장경위 밝히고 감정협회는 증거내놔야

정중헌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미사사)’은 연륜있는 화상들과 전직 미술기자들이 만든 친목모임이다. 작년 송년회 때 이 얘기 저 얘기가 오가던 중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위(眞僞)논란을 미사사가 책으로 엮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1991년에 발생한 이 사건은 15년이 흘렀지만 아직껏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작가는 지금도 그때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늦기 전에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당시의 기사와 자료를 모으고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채록해 놓자는 것이 책을 내자는 취지였다. 기자 출신들은 당시 현장에서 이 사건을 취재했고 화랑 회원들 역시 천 선생과 교분도 있고 감정에도 참여한 경험에 증인도 알고있어 미사사가 이런 자료집을 내는 의미가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진실은 밝히지 못하더라도 증언과 자료를 통해 사건의 실상을 짚어보게 함으로써 화단의 교훈으로 삼자는데까지 의견을 모았으나 아직 작업에는 착수하지 못했다.
천경자 선생과 각별한 관계였던 필자는 ‘미인도’ 진위 논란을 보면서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객관성을 견지해야 하는 기자지만 노 화백의 한맺힌 절규쪽에 심증이 갔기 때문이었다. 당시 68세였던 천 화백은 꼿꼿한 어조로 ‘미인도’가 자신의 그림이 아닌 가짜임을 주장했다. “자기가 낳지않은 아이를 남들이 당신 자식이라고 윽박지른다면 어쩌자는 것이냐”고 반문하던 모습이 기억에 살아있다.
그래도 세상이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천 화백은 절필을 선언했다. 그렇게 명예롭게 여기던 예술원 회원직도 던지고 큰딸이 사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천 화백은 당시 스포츠조선 문화연예부장으로 있던 필자에게 자신의 진심을 밝히는 친필 편지를 보내왔다. 자신이 정보기관의 실력자에게 진품을 준 기억이 있는데 현대미술관 소장품은 위작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서한은 지금 찾을 길이 없다. 또 아나운서 일을 했던 둘째딸과 서점을 경영하는 막내아들이 필자를 찾아와 어머니의 진정을 호소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온 가족이 진실을 밝히려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99년에 천 화백의 ‘미인도’를 위조했다는 피의자의 진술이 나왔건만 작가도 소장기관도 종래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있다. 이런 상태에서 미사사가 증언록을 내 진위여부를 분명히 가리는 풍토를 확립해보자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제에 과학적인 감정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위작시비를 막아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한 것이었다.





뜨거운 이중섭 위작 논란

그런데 또다른 위작논란이 화랑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것도 다름아닌 이중섭 화백의 유족이 가져와 경매에 내놓은 ‘물고기과 아이들’이 사단법인 한국미술품감정협회로부터 가짜 판정을 받아 파문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술품감정협회는 유족들이 서울옥션을 통해 팔려고 했던 드로잉 ‘물고기과 아이들’은 확실한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림의 선이 이중섭 작품과는 완전히 다를뿐 아니라 종이를 불빛에 대고 비춰보면 원판에 대고 베껴그린 듯한 자국이 선명하다는 것이다. 서울옥션측이 참고자료로 보내온 유족 소유 작품 3점도 위작이라고 밝혔다.
이런 위작논란에 대해 이중섭 화백 차남 태성씨는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직접 만나 들어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족이 중심이 돼 최근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연 ‘이중섭 예술문화진흥회’측도 “부인이 오래 간직해온 유작에 대한 진위논란은 유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법적 책임을 물을 용의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서울옥션 이호재 대표도 “유족이 작품에 대해 자신이 있기 때문에 공개 경매에 내놓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진위논란이 번지자 일본에 거주하는 이 화백의 부인 마사코여사가 “남편이 일본에 올 때 많은 그림을 가져왔다. 그 뒤로도 자주 우편으로 그림을 가져왔다”고 말하고 위작 평가에 대해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유감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총 몇점이나 있으냐는 질문에 아들 태성씨는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이번 논란은 어느쪽 주장이 옳으냐는 ‘진실게임’이 되고있다. 바람직한 방법은 감정위원들과 유족이 만나 대화로 푸는 것인데 감정협회 주최 세미나에는 유족도 경매회사측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진위논란은 ‘미인도’보다 더 복잡하고 문제점이 많다. 우선 한점이 아니라 유족을 통해 한국에 온 여러점이 위작판정을 받았고 실거래가도 엄청나다. 감정협회측은 유족의 미발표 소장품을 200여점으로 추산하고 있다며 작품 소장 경위를 구체적으로 밝힐 것을 유족측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유족측은 앞으로 자체 감정서를 발행하겠다고 밝혀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중섭의 가짜작품이 나돈다는 얘기는 그동안 수도없이 제기돼 왔고 실제 전시때도 가짜가 번듯이 걸린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유족이 공개하기 꺼리는 소장품이 상당수에 달해 파장이 얼마나 번질지 주목된다. 이중섭 작품은 워낙 희소해 국내서 유통되는 작품이 한계에 달했는데 수십 또는 수백점이 새로 나온다면 양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희소가치로 인해 고가일수 밖에 없는 이중섭 유작이 모두 진짜라면 화단의 큰 수확이 되겠지만 만에 하나 의구심이 든다면 유통질서를 혼란시킬 수도 있다는게 화단의 우려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법정 공방을 벌여서라도 왜 작가 사후 50년만에 이런 일이 터졌는지 그 원인과 배경을 철저히 따져 진위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유족들이 이미 신화가 된 이중섭을 유작까지 팔아 기념사업을 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고싶다. 결국 유족측은 소장품 숫자와 소장 경위를 밝히고, 감정협회측도 진짜가 아니라는 과학적인 근거와 증언을 내놓아야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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