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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정치 요동치고 경제 가라앉고 그나마 한류만 반짝한 해

정중헌

2004년이 저물고 있다. 올해는 참 힘든 1년을 살았다. 정치가 요동치고 경제가 가라앉았으니 너나없이 삶이 버거웠을 것이다.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헌법재판소가 그 족쇄를 풀어줬는데, 그 헌재가 자기편과 다른 판정을 내렸다고 권력층이 헌법을 무시하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았다. 씀씀이를 줄이고 아예 지갑을 닫고 살았는데도 주머니가 비어 마음까지 허전했던 나날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거리 시위가 잇달았지만 솥단지 데모까지 해야 했던 절박한 난제들이 우리를 짓누른 1년이었다.
청년실업과 한강 투신자살이 우리를 우울하게 했던 금년에 그래두 반짝 한 곳은 문화쪽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2등에 해당하는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것은 한국영화 최고의 경사였다. 또한 김기덕 감독이 베를린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거푸 감독상을 거머쥔 일은 세계영화사에도 기록될만 한 쾌거였다. 한국영화가 세계 3대 국제영화제를 석권했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일본 열도를 후끈 달군 ‘한류’ 또한 올해 최대 화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아사히 신문이 선정한 올해 일본 최대의 유행어로 ‘욘사마’(배용준)가 선정되었다는 것만으로 그 열기를 알 수 있을만큼 한국 스타들이 일본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한류는 중국에 우리 대중문화가 흘러들면서 그쪽에서 생긴 용어지만 2004년 그 한류가 일본에서 최대 유행으로 꼽혔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만한 일이다.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상징하듯 서로의 감정이 좋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을 36년간 식민통치했고,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한국인의 가슴에는 일제에 대한 앙금이 고여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과 정치가, 기업들, 학자들도 풀지못한 양국간의 꼬인 매듭을 문화가 풀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한류가 급속히 확산된 한해다.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한국은 일본 대중문화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빗장을 쳤다. 첫째는 국민 정서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고, 둘째는 저질 일본문화가 청소년들에 미칠 폐혜가 크다는 것이었다. 문화계 또한 일본 대중문화가 수입되면 자생력이 약한 한국 대중문화 시장이 침식될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대세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일본의 위성방송이 안방을 파고 들었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키만 누르면 일본 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부도 어쩔 수 없이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1998년 한일문화교류자문위원으로 개방정책에 참여한 필자는 단기간 전면개방을 주장했다. 그러나 여론의 반쪽은 심한 거부감을 드러냈고 일본 문화가 들어오면 일제시대 망령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억지 주장까지 제기됐다. 결국 영화를 필두로 몇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일본대중문화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일본 영화가 수입되면 관객이 몰릴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국제영화제 수상작들이 상영됐지만 관객 호응은 예상보다 높지 않았다. 아직 방송과 에니메이션 등에 제약을 가하고 있지만 일본 대중문화가 들어와 청소년들을 나쁜 쪽으로 물들게 하거나 시장을 흔든 사례는 별로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류 열풍 공급의 필요성

오히려 우리가 일본에 문을 열어주면서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으로 흘러드는 물꼬가 트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표주자가 가수 보아이고, 한국에서 흥행된 영화들이 일본에서도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속에 한류를 이으킨 일등공신은 연파성 TV드라마였다. 그중에도 한류열풍에 불을 붙인 한국 드라마가 배용준 최지우 주연의 ‘겨울연가’였다. 지난해 4월 NHK 위성방송을 통해 처음 소개된후 같은해 12월 재방영됐고 올 4월부터 8월까지 NHK 지상파로 방송되면서 ‘욘사마’ 붐이 거세게 일었다. 일본을 방문한 배용준은 세계적인 스타 대접을 받았고, 최지우 인기 또한 하늘로 솟고있다. ‘겨울연가’에 반한 일본인들은 한국어를 배우는가 하면 촬영장소였던 춘천과 속초를 찾는 한국관광 붐까지 일으켰다. 일본의 상혼은 ‘겨울연가’ OST와 영상뿐 아니라 배용준의 캐릭터 상품을 만들어 재미를 보고있다. 일본의 잡지들도 한류스타와 한국 특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왜 이렇게 인기인가. 사실 필요없는 질문이다. 무조건 좋다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분석하자면 솔직한 감정표현, 순수한 사랑에 대한 향수와 갈증을 해소해 준다는 것이다. 특히 욘사마 배용준은 일본 남성에 비해 부드럽고 상냥하게 다가온다고 얘기한다.
지금 일본에선 올해 일본인을 사로잡은 ‘4대 천왕’으로 ‘겨울연가’의 배용준,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 원빈, ‘올인’의 이병헌이 꼽히면서 한류 붐이 지속되고 있다. 문제는 한류바람이 언제까지 갈것이냐다. 한류바람을 끌어가려면 한류의 실상을 바로 보고 계속 히트작을 공급해야 한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금처럼 일본인이 주도하고 열매 또한 일본인만 따고 우리는 부수러기나 줍는 식으로는 실익이 없다. 우리가 한류의 공급자로 나서 일본인들을 끌어들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문화상품들을 적극 개발하고 공급하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다. 중국과 동남아 뿐 아니라 미주와 유럽에까지 한류바람을 불게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결국 창의력과 완성도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능가하는 영화를 만들고, ‘겨울연가’ ‘가을동화’ 보다 더 인기있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창력 있고 춤도 잘 추는 ‘얼짱’ 가수도 발굴해 보아처럼 체계적인 매니지먼트와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한류 바람을 확산하려면 고정관념부터 깨야한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식은 곤란하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에 외국의 유능한 감독이나 작가, 배우를 끌어들이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특히 막대한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는 지상파 TV방송사가 한류 열풍을 끌어갈 영화나 드라마 제작에 앞장서고, 대중문화 스타를 육성한다면 큰 자극이 될 것이다. 정부는 간섭말고 지원만 하면 되다는 교훈을 한류열풍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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