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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도자기가 바다를 건너간 까닭은

윤철규


윤철규 한국미술산책(15)

다시 신록이 유혹하는 좋은 계절이다. 계절은 이렇게 좋은데 사람 사는 일이 계절만큼 달콤하지 않은 게 고민이다. 고미술 쪽은 인사로 어수선하고 시장도 터닝포인트를 못 찾고 헤매고 있다. 한국미술을 다룬 봄경매의 총낙찰가가 30억 원에 못 미친다고 한다. 손바닥만한 송나라 청자접시 한 점이 최근 300억 원에 팔린 것에 비추면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 이렇게 심난할 때는 흔히 심호흡을 하면서 눈을 들어 높이 멀리를 바라보라고 한다. 퍼뜩 드는 생각인데, 실크로드가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그 이면에는 이런 현실이탈 지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잗단 현실을 떠나 미술이야기를 먼 곳으로 끌고 가보자.

저 중동의 호르무즈(Hormuz) 해협이라면 지리에 둔감한 이라도 더러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해협의 이란 쪽에 바싹 붙어있는 작은 섬이 호르무즈 섬이다. 도자사(陶磁史)에서는 이 섬을 매우 주목한다. 이유는 중국도자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섬의 중국도자기는 1930년대 처음 알려졌다. 어부 신드밧드가 살았던 고기잡이 섬 정도로 상상하기 쉽겠지만 실은 이곳은 일찍부터 상업적으로 크게 발전한 곳이다. 중세부터 인도양에서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래서 포르투갈과 영국도 눈독을 들여 16세기 이후 이곳을 차례로 차지했다. 이 외진 섬에 중국도자기가 나온 것은 바로 이런 경제적 번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64년 일본의 석유수입회사 이데미쓰(出光)가 보낸 조사단을 따라 섬에 간 연구원은 ‘성채가 셋이나 보이는 곳에서 발굴했다’며 작은 섬답지 않게 방비가 튼튼함을 전했다.

그런데 이란의 중국도자기는 사실상 다른 곳에 엄청난 하이라이트가 있다. 카스피해에 가까운 쪽으로 온천으로 유명한 아르데빌(Ardebil)이란 곳이 있다. 이곳의 모스크 겸 영묘(靈廟)에는 요즘 중국에도 없다는 원나라 청화백자 수십 점을 포함해 명나라 도자기 등 900점 넘는 중국도자기가 수백 년동안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자신이 사용하던 귀중한 물건을 모스크에 바치는 풍습이 있는데 1611년에 이들이 한꺼번에 헌납된 것이다. 당시 이 지역의 전능한 왕이었던 압바스 왕이 자기의 실용 애장품을 내놓은 것이다. 이 도자기들은 1910년 무렵 영국인을 통해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졌고 그중 일부는 1930년 영국 군함에 태워져 런던에 소개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후일담이지만 이란 정부는 국경 도시의 정정을 불안하게 여겨 이들 대부분을 테헤란의 이란 바스탄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6월 미국에 간 한국유물 전시
하나 더 사례를 들어보자. 1922년 파리에 있던 일본 서양화가 고지마 도라지로()는 카이로 남쪽의 푸스타트(Fustat)라는 곳에서 나온 중국도자기 파편 390여 점이 한 몫에 경매에 붙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당시 구라시키 방직의 오하라 사장의 장학생으로 유학중이었다. 그에게는 별도의 특명이 있었는데 그것은 장차 미술관 건립을 위해 전세계의 좋은 미술품을 손에 넣으라는 것이었다. 고지마가 이 출토품을 손에 넣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푸스타트를 보면, 중국도자기의 타임캡슐 같은 곳이다. 그곳은 7세기부터 아랍지배 이집트의 수도였는데 이후 온갖 상인들이 드나들면서 11, 12세기에는 중동 최대의 상업도시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땅속에서는 아라비아상인들이 실어온 중국 월주청자에서 원명의 청화백자 등 파기만 하면 수천 점씩 그 파편이 나온다는 곳이다.

중국도자기 마니아가 많은 일본의 연구에 따르면 이란, 이집트 등지에서 중국산 도자기가 나오는 것은 경제적 번영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연구자 얘기로는 두드리면 ‘탱’하고 쇳소리가 나는 자기를 만드는 나라는 과거 중국밖에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도자기는 최고급 수출품이었고 사치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전세계 50개국 이상에서 중국도자기가 출토된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중국 다음으로 전세계에 도자기가 많이 나가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자기를 만든 나라는 당시 중국 외에 한국밖에 없었다. 세계로 나간 한국 도자기는 수출품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을 비롯해 유럽과 미국의 거만(鉅萬)의 부호들이 애지중지하며 한국도자기를 사모은 것은 수백 년 동안 동경해마지 않았던 그 ‘자기’였기 때문이다. 한국 도자기를 쉽게 봐서는 안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는 6월 바다를 건너 미국에 간 한국 유물이 소개된다고 한다. 그 중에는 ‘탱’ 소리 나는 자기도 포함돼 있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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