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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한국미술, 샌델식으로 생각하기

윤철규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그것은 좀처럼 한쪽으로 쉽게 치우칠 수 없다는데 요점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던 옛사람들은 이미 그 기미를 알고 있었던 것이 되는가.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 한국미술을 만나다’(6.5-8.5)라는 전시를 보면 정의처럼 거창하지는 않지만, 세상일은 새옹지마쯤은 족히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전시는 알다시피 한미국교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한국미술이 어떻게 미국에 건너가 소개됐는지를 보여주는 기획이다.
여기를 보면 한국미술이 처음 미국에 건너갔을 때의 궁색한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미국미술관 중 공식적으로 처음 한국미술품을 구입한 곳은 보스턴이다. 이곳에서 구입한 첫 한국미술은 청자 상감화조문 매병. 상감으로 꽃나무 아래에 백로를 표현한 이 근사한 매병의 원래 주인은 조개류 전문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모스(1838-1925)였다. 1877년 일본에 온 그는 일본 최초로 조개 무덤인 오모리(大森) 패총을 발견해 교과서에도 나오는 인물이다. 이런 그가 일본 미술에 큰 공헌을 남겼는데 바로 그 유명한 어네스트 페놀로사를 동경대에 불러들인 때문이다. 페놀로사는 문명개화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일본 전통미술을 재발견했음은 물론 허둥대고 있던 회화쪽에서도 ‘근대 일본화’를 탄생케 한 장본인이다. 모스는 그를 지켜보며 자신도 일본미술품을 수집했다. 특히 패총에 나온 일본 토기에 관심을 가졌고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 도자기도 수집했다. 방대한 양의 모스의 토기 컬렉션은 1890년 보스턴미술관에 기증됐는데 2년 뒤에 그에게 있던 이 청자도 미술관에 양도됐다. 미국미술관의 첫 번째 공식 한국미술품 소장은 이렇게 해서 일본을 등에 업고 시작됐다. 


 

하와이에는 1903년에 사탕수수농장 일을 위해 첫 한국인 이주가 있었다고 한다. 그에 앞서 이미 중국, 포르투갈, 일본의 이주민들이 있었다. 1920년대 앤 라이스 쿡 여사가 섬내의 다민족 문화를 이해하자는 취지로 소장품과 기금을 내놓아 호놀룰루미술관이 탄생하게 됐다. 1927년 오픈때 벌써 한국미술 100여 점이 소장돼 있었는데 이는 쿡 여사가 일본의 골동상회 야마나카社를 통해 구입한 것이다. 말하자면 여기도 일본 상인의 감식안에 의해 골라진 것들이 하와이까지 건너갔다고 할 수 있다.

 


 


 

초창기 한국미술의 대접은 이처럼 당시 조선의 사정과 다를 바 없었다. 일본의 취향에 따라 청자가 대접을 받고 그 덕분에 일본에 온 미국인들에게 덤으로 팔려나간 것이다. 경위야 어쨌든 요즘 한국경제가 커진 데 따라 세계 22개국의 67개 미술관, 박물관에 한국실, 코너가 있다고 한다. 미국에만 그 숫자가 30곳에 이른다. 새옹지마식으로 해석하자면 이들은 비록 일본 등에 업혀 갔지만 오늘날 현지에서 한국문화 소개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국제교류재단 윤금진 부장도 지적하듯이 현지에서 한국미술을 소개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소장품이 부족이라고 한다. 일본을 제외하면 모든 나라에 공통되는 문제인데 이는 빈약한 전시로 이어지고 또 전문적인 큐레이터 양성에도 지장을 초래해 결과적으로 엉성한 한국문화의 소개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샌델로 돌아가보자. 그에게는 고정된 정의란 없는 게 되는데 복잡하게 뒤얽힌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수적이라고 권한다. 해외에 한국을, 한국문화를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는 한국미술품 수를 늘려야 하는데 이는 문화재 유출이란 문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샌델식으로 말하자면 이쯤해서 규제 일변도의 문화재 보호법을 대화의 주제로 올려놓고 문화 소개와 유출규제 양자를 꼼꼼히 따져볼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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