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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예 오늘과 내일

김정환

오늘날의 서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수의 서예가들이 제작하는 수많은 작품에 일정한 방향이 있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 한 점은 오늘날 서예는 예전에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던 영광의 상당 부분을 이미 잃었거나 지금 잃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서예는 발전 가능성이 풍부한 미답의 영토로 여겨지기보다는 고답적인 장르의 경계 안에 갇혀 있는 유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간에도 서예작품은 쓰여지고 발표되고 읽혀지고 있다.

오늘을 말하기 위해 먼저 과거를 짚어야 할 것이다. 90년대를 전후로 해서 한국서예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으며, 이를 통해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88년 동아시아권에서 처음으로 서예전용 박물관인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이 건립되었고, 89년 원광대에 서예과가 신설된 것으로 시작으로 수도권과 지방에 5개 서예과가 신설되었다. 또한 이들 대학에서 배출된 졸업생들이 대학원으로 진학하거나 중국과 대만, 일본 등지로 유학하여 서예가 본격적인 학문의 영역으로 탐구되기 시작하였다. 서예전공 관련자들을 중심으로 각종 학회가 결성되었고, 관련 저서의 저술 및 번역 작업이 활기를 띠게 된다. 이러한 발전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라는 결과물을 낳아 한국서예의 위상을 한층 드높이게 된다.<최근 우리 서예의 지형은, 오랫동안 구심점이 되였던 주요 공모전 및 지역적 서풍에서 탈피하여 작품 하나하나의 미학적 완결성에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시대와 조건이 달라져도 서예가 근본적으로 지켜나가야 할 위상과 가치는 어떤 것인가 하는 고전적이고 원론적인 성찰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시대적 분위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지난 시대에 대안적 위상을 차지했던 서예적 경향을 무반성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적 상황과‘서예’라는 예술 양식의 관련성에 대한 메타적 통찰의 축적을 요구하는 일이다. 결국 서예는 오랜 숙련과 성숙에 의해 고전적 투명성과 엄격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작가들은 기지나 순발력이 아니라 고전적 품격을 하나하나 축적해가는 과정을 통해 서예를 해야 한다.

서예의 미래를 얘기하는 자리에서는 늘 위기니 종말이니 하는 말이 따라 나온다. 서예 위기론이 제기될 때 그 진단의 배면에는 새로운 미디어와 그에 무비판적으로 젖어 들어가는 대중들의 감수성 그리고 그의 파급 효과인 문자매체 및 문자예술에의 경시, 바꿔 말해 대중들이 서예에서 이탈해간다는 우려가 깔려 있는 것이다. 아울러 테크놀로지에 오래 전에 추월당하고 이벤트 산업의 한 영역으로 축소된 서예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한탄과 자조가 있다. 그러나 서예의 진짜 위기는 그것이 그리움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무엇을 그리워할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알 수 없게 될 때, 그리하여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할 때 서예는 개인에게든 세상에서든 종말을 맞을 것이다.<예술의 본질이 무엇보다도 새로움에 있다면, 그 새로움의 확보를 위해서 기존 예술의 고루한 관점을 비판하면서 상투적인 시각을 탈피한 새로운 관점을 주창하는 것은 예술의 피할 수 없는 근원적인 목표이자 운명일 것이다. 또한 예술에 있어서 진정한 실험은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인류의 예술적 성과와 다양한 형식실험의 역사를 충분히 장악했을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서예는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범주의 형성과정이 다시 이전으로 환원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우리가 서예에서 숭고함(sublime)을 기대한다면 이제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것이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회 혹은 문화의 신전 속에서 횃불이나 망루처럼 솟아오르는 숭고함이 아니라 개별적인 작가들의 삶 속에서 환유적(metonymic)으로 형성되는, 즉 매번 다르게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완결되는 굳이 비유하자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 각자의 삶 속에 허용된 유일한 첫사랑이나 죽음과도 같은, 그래서 날개와 전체가 매번등가를 이루는 순간의 숭고함을 기대해야할것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고 객관화할 수 있다. 즉 보이는 자아와 보려 하는 자아를 동시에 경험한다. 이때 자신에 대한 관찰과 반성이 생겨난다. 서예가는 끊임없이 질문하여야 한다. 작가가 자신과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은 자신의 삶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전체성을 온전히 파악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이와 같이 자신과 사회, 시대에 대한 솔직하고 겸허한 성찰을 통해 감추어지고 잊혀졌던 예술과 삶의 본질은 한 꺼풀씩 벗겨질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고 했다. 첫 탄생은 생물학적인 것이지만, 두 번째 탄생은 의식적인 것이다. 만일 새로운 시대의 서예가 있다면, 우리는 이 두 번째 탄생을 기다려야 될 것 같다.

- 김정환씨는 월간 서예 평론공모에 당선되었으며 저서로`필묵의 황홀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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