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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불확실함의 가능성

정현

나의 박사 논문(5)

정현 / 미술비평


「Devenir art : trajet identitaire et devenir-art」, 2007




2007년 여름에 학위를 받았으니 햇수로 6년이 지났다. 이 글을 위해 오랜만에 발표 당시의 모습이 담긴 사진첩을 꺼냈다. 연구에 관한 생각보다 그리움이 앞선다. 당시의 절박함과 그 덕분에 가질 수 있었던 짜릿함. 지도교수 엘리안 쉬롱과 심사위원들 그리고 친구들의 모습까지 한국에 돌아온 후 잊고 지냈던 순간이 갑자기 펼쳐진다. 

내가 다닌 학교는 프랑스 파리 1대학(팡테옹-소르본느)의 예술학과다. 나는 정체성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정체성은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붙잡았던 주제였다. 정체성의 고민은 십대 시절부터 나를 지배하던 고민이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되는 획일성,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정서적 환경은 모범적 규준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인정하지 못했고, 나는 문화적 태도에 잘 적응하지 못한 채로 성인이 됐다. 그리고 26살에 떠난 프랑스 유학은 공부보다 더 나은 세상으로의 도피에 가까웠다. 프랑스는 한국에 비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편이었지만 그곳도 완전한 세계는 아니었다. 


순진하게 제도적 속박에서 해방되고자 했던 나의 욕심은 유학 시절 자연스레 다각적 관점이 공존하는 프랑스 사회를 통해 사회와 인간, 내면과 외면의 상관성을 함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바로 정체성을 연구주제로 결정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에 나는 2000년 여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박사 논문을 끝마쳐야겠다는 결심은 그로부터 4년가량이 지난 다음에야 세워졌다. 당시 4년의 시간은 내가 나의 나라를 비로소 마주보는 시간,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거울 단계에 속하는 시기였다. 내가 늘 속해있던 아카데미의 틀 속에서 경험하던 미술과 달리 실제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미술의 움직임, 작가의 삶, 미술계라 불리는 계층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교육 제도의 현실에 이르는 여러 가지 현상의 경험은 나를 보다 균형감 있게 성장시켰다. 

한국에 돌아오기 이전까지 자신의 내적 동요에만 집중하고 있었다면 이후 차츰 바깥 세계와 마주보며 서로의 상태를 진단하기에 이른다. 더불어 정체성의 물음 또한 신경질적인 내면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내외부가 서로 변증적으로 연결된 유기적 상태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4년이 지나고 논문을 마치기 위해 나는 다시 파리로 떠났다.


이십대에 떠난 유학이 어두운 현실을 피해 떠난 도피였다면, 삼십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 떠난 유학은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찾아 떠난 여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술에서의 정체성 연구가 대개 예술사회학적 유형의 연구로 정형화 되는 것을 주의했다. 대신 나의 관심은 작가의 정체성과 창작 사이의 관계로 확장되었고 이는 자연스레 문화인류학적 관점의 동시대 미술의 경향과 조우하게 된다. 

첫번째 연구대상은 바로 차학경이었다. 재미교포인 그녀는 두 개의 정체성, 세 개 이상의 언어적 혼성, 남성중심 백인사회에서 동아시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의 갈등과 혼돈을 글, 개념미술,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매체와 실험으로 드러낸 작가다. 나는 사회학적 의미보다 그녀가 사용하는 해체적 낱말들, 추상적 몸짓을 통해 탈 언어적 세계로 향하는 태도를 분석하려 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정체성이란 개념이 갖고 있는 본질적 모순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정체성이란 정신과 신체가 하나인 상태를 뜻하는데 과연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정체성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특히 초자본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정체성은 홍보의 수단이거나 진보주의자를 표상하는 지시체처럼 부풀려서 사용되곤 하는 게 사실이다. 나의 박사 논문 「다른 것 되기 : 정체성의 궤적과 예술-되기와의 관계」는 정체성의 다양한 얼굴 속에 숨은 위험도 함께 다루고 있다. ‘다른 것 되기’라는 표제가 지시하듯 들뢰즈의 철학에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특히 들뢰즈의 ‘탈주선’ 개념이 주장하는 고정되지 않는 삶, 이념으로 제도화 되지 않는 예술의 가능성을 연구한 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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