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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예술행위의 의미를 찾아 떠난 여정

신나경

나의 박사 논문(6)

신나경 / 부산대 강사, 부산시 미술작품 심의위원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미학에 있어서 예술과 사회-민예운동을 통해 본 ‘미적 생활’」, 2004




유학을 결심할 당시, 나는 화가를 꿈꾸면서 미대를 졸업했지만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던 예술가의 현실에 힘들어 했다. 특히 그때는 지금처럼 다양한 전시기획이나 미술담론이 없었고, 대부분 국가나 시·도 주최의 큰 규모 단체전이 화가들의 등용문으로 여겨지던 때라, 어떤 그림들이 공모전에 당선되는가가 예술가들에겐 큰 관심거리였다. 몇 번의 입선과 낙선을 겪으면서, 과연 내가 미술에 소질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이고 가치가 있는 작품인지, 왜 좀 더 편하게 그릴 수 없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해답을 구하고자 미술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한 것이 미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였다. 

미학에 매료되면서 미술교사생활 틈틈이 그리던 그림과는 멀어져갔고, 교직도 대학원 진학 때문에 휴직계를 내었다가 결국은 유학을 계기로 사직했다. 대학원 은사의 도움으로 도쿄대 연구생으로 갈 때만 하더라도 도쿄대에서 학위를 받겠다는 목적보다는 ‘미학’이라는 학과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탄생시킨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접해보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전부였지만, 연구생 생활을 하는 동안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싶다는 욕심이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논문을 야나기 무네요시로 정하게 되었던 것은, 본래 석사논문에서 영국미학을 공부하면서 블레이크(W. Blake)에 매우 흥미를 가졌고 그 때문에 일본에서 블레이크의 연구서를 살펴보던 중 그에 관해 체계적으로 연구된 서적으로서는 최초라고 할 수 있는『윌리엄 블레이크』(1914)의 저자가 야나기라는 것과 그 내용이 거의 블레이크 예찬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야나기를 단순히 한국의 민예를 사랑한 전통예술 옹호자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게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왜냐하면 예술계의 이단아이자 아카데미에 저항한 낭만주의자 블레이크와, 전통적인 서민 공예를 옹호하는 야나기의 이미지가 잘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계기로 야나기에 주목하는 동안 그의 사상이 상당부분 영국미학, 특히 블레이크를 비롯하여 러스킨, 모리스 등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우리나라에서 야나기의 연구는 대부분이 전체적인 그의 사상에 관한 조명보다는 조선예술 혹은 내셔널리즘 등에 집중되어 폭좁게 연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보다 폭넓게 야나기에 관해서 공부해봐야겠다는 것이 논문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다. 

그런데 야나기의 사상과 활동은 분명히 근대미학의 틀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근대미학의 틀이 가지는 모순에 반대하고 그 이전의 순수한 미의식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연구방법론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고, 또한 그가 체계적으로 학문을 연구한 학자라기보다는 실천가이자 사상가였기 때문에 그의 글에만 근거해 일목요연한 사상체계를 추려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예상보다 늦게 논문을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로 보완하고 싶은 곳이 많은 논문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야나기의 미학사상은 우리가 수미일관한 하나의 학문적 체계로 굳건하게 믿고 있는 근대미학의 틀이 얼마나 많은 모순을 내포하는 것인가를 일깨우기 충분했으며,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바로 젊은 날에 화가지망생으로서 의문을 가졌던 예술의 많은 부분들에 대하여 우회적으로 답을 얻는 뜻 깊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야나기는 단지 조선의 민예를 경탄했기만 했던 미술애호가에 그쳤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공예론을 면밀히 고찰해보면, 소위 ‘순수예술(Fine Art)’이 얼마나 부조리하게 ‘예술’에서 공예를 비롯하여 순수예술이 아닌 것들을 배제하면서 그 신비한 독자성을 공고히 했던가, 그리고 그러한 모더니즘 예술이 단지 순수하게 ‘미’만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공고하게 자신의 찬란한 탑을 쌓아가는 동안, 역시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진-순수예술 탄생이전에는 차별받지 않았던-수많은 공예가들이 똑같이 아름다운 작품을 제작하면서도, 단지 전통에 따라 ‘기능’이 부가된 작품을 제작한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하찮게 여겨졌던가를 주장하는 문구들로 가득했다. 그것은 내게 희미하게나마 인생에서도 학문에서도 내가 추구해야 할 ‘미’란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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