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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다시 쓰는 서양미술사

김석모

「제목: 작품제목의 미술사(Titel: eine Kunstgeschichte des Bildtitles)」, 2014


전시장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의 시선은 작품과 명제표를 분주하게 오간다.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최소의 정보가 들어 있으리라 감상자는 ‘기대’한다. 제목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려는 이러한 감상행태에 대한 자각과 반성은 나에게 박사논문에 대한 결정적 영감으로 작용했다. 바로, 명제표에 새겨져 있는 작품의 제목, 나는 박사논문에서 그 기원을 서양미술사 속에서 찾아 들어 갔다.

제목은 미술, 문학, 음악, 춤 혹은 영화 등 인간의 예술 활동을 통하여 만들어진 개별 창작물에 붙여진 고유한 이름이다. 고유명사가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듯, 제목은 특정한 작품을 지칭하며, 지시된 바로 그 작품을 다른 작품으로부터 구별지어 준다. 그런데 고정지시어로서의 작품 제목은 단순히 특정 작품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수용미학적 관점에서 감상자의 시각적 인식에 간섭을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자신의 저서 <일상적인 것의 변용>(1981)에서 감상자를 작품으로 이끄는 제목의 기능에 대해 심층적인 분석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마르셀 뒤샹은 제목을 작품의 내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그것을 “보이지 않는 색(Invisible Color)”이라 규정하기까지 한다.

작가적 의도가 투영되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임의로 변경될 수 없다는 제목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근거로 본 논문은 서두에서 모더니즘 이전의 시대에는 제목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근거로 과거의 작품들이 담고 있는 도상들이 주로 종교적, 신화적 맥락속에서 명확히 읽힐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문 생산방식 그리고 작품들이 전시되었던 공간적 특수성 등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제목은 읽히기 위해 부여된다.”는 자명한 명제로부터 출발하여, 제목의 기원이 - 작품에 명제표가 달리고, 도록에 제목이 표기되는 - 오늘날의 전시 형태가 생겨난 시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였다. 그리고 그 원형을 1667년 파리에서 시작된 살롱전에서 찾았다. 1767년 루브르에서 열린 살롱전의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당시 전시 공간은 빈틈없이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따라서 누구의 어떤 작품이어디에 걸려 있는지 확인조차 힘든 상황이었고, 이 같은 이유로 전시 안내서에 대한 요구가 생겨났으며, 1673년 처음으로 전시의 전체 구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살롱전의 소책자(Livret)가 출판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초기의 도록에는 도판은 실리지 않았고,작품과 작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만 기록되어 있었다.


1673년 출판된 파리의 살롱전 전시도록


Gabriel-Jacques de Saint-Aubin, Vue du Salon de 1765

도록의 발달사를 추적한 결과, 19세기 이전의 경우 오늘날과 같이 명사화된 제목이 아니라 작품의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짧은 문장들이 제목을 대신하고 있었다. 19세기를 전후로 오늘날과 같이 명사로 이루어진 제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목의 출현에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추상미술의 등장이다. 화면에서 구체적 대상성이 사라지면서 작품을 지칭하기 위해 제목에 대한 실질적인 필요성이 생겨났다. 20세기 초,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 팽창하면서 제목의 기능과 역할 또한 그 영역을 넓혀나간다. 특히나 다다이즘 미술가들은 제목을 작품의 내적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이제 제목은 단순히 작품의 이름이 아니라 작품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한다. 제목이 작품이 된 것이다.
20세기 중엽을 지나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작가들은 의식적으로 제목을 부여하는 행위를 거부하며 제목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무제’라는 단어를 써 넣었다. 제목의 부재를 뜻하는 지시어 ‘무제’, 이미 사람들은 제목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무제는 또 다른 제목의 형태로 인지가 되었다. 제목을 통해 작품이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서 미술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예술적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지를 밝히면서 본 논문은 끝을 맺는다. 

본 논문은 김희경 유럽정신문화 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지원받아 집필이 되었으며, 2014년 독일 뒤셀도르프대 올해의 논문으로 선정되었다


- 김석모(1976- ) 독일 프라이브루크대 철학전공, 쾰른대 연극영화TV학 전공, 뒤셀도르프대 철학박사(미술사전공). 뒤셀도르프대 연구조교와 2008-2010 베이징에서 큐레이터 업무를 거쳐 현재 대구미술관 전시팀장. TBC 대구방송 <문화로채움>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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