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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밑이 어둡다는 등잔에 문화유산의 등불을 밝혀 잇다 한국등잔박물관 김동휘 설립관장과 김형구 관장

윤태석


한국등잔박물관 전경



왜 의사가 되고 싶었는지는 모른다. 수원면 신풍리에서 태어난 김동휘는 수원공립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나왔다. 대학졸업 후에는 원산에서 미국인이 운영하던 기독교계통의 구세병원에서 인턴생활을 했다.이때 은행원이던 아내를 만나 결혼해 장남 형구(현 박물관장)도 낳았다. 그리고 무더위 속에서 광복을 맞게 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의사 특유의 직감으로 그 긴장이 그냥 스쳐 가는 바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마침내 동휘는 풋사과 같았던 원산에서의 새내기 의사 생활을 접고 월남해 경기도립수원병원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꿀맛 같던 평화도 잠시,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수원마저 짓밟고, 동휘는 인민군에 의해 군의관으로강제 징집되어 낙동강 전투까지 내려가게 된다. 그러던 중 연합군의 반격으로 이번에는 국군에게 붙잡혀 대위 계급의 군의관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복무했다. 전장에서 동휘가 겪은 이 얄궂은 이데올로기의 충돌은 다름 아닌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정세의 축약판이었다. 그러나 이 거대 담론의 단면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동족끼리 싸우다 다친 이들의 아픔을 의술로 보듬어 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지루하고 잔인했던 전쟁이 끝나고 그는 고향 수원에서 보구(普救)산부인과를 개원하게 된다. 


그렇게 청진기를 가까이 둔 생활이 60세까지 계속되었다. 차츰 활력은 사라지고 체력과 기억력도 급격히 떨어지게 되자 병원의 설비마저 낙후되어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해 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심신이 지쳤던 것이다. 이때 임상에서 물러나 지금껏 하지 못했던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된다. 그의 나이 64세가 되던 1981년의 일이다. 이미 수원문화원을 만들고 예술총연합회 회장도 했던 터라 문화 쪽부터 시작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간간이 부인과 함께했던 외국여행도 한 달에서길게는 4개월 동안을 다니게 되었고 박물관 공부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무렵 국립중앙박물관 특별강좌와 연구 과정을 듣게 된 것도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똑바로 알고 그것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1990년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박물관은 한 나라의 중요한 문화지표 이므로 박물관법을 진흥법으로 개정하여 많은 박물관이 들어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김동휘가 박물관에 대한 구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동기를 제공했던 것이다.


김동휘 관장



김동휘는 그저 우리 민속사료와 민속품이 좋아서 일찍이 5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까지는 적지 않은 자료를 수집했다. 1968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과 함께 두 차례 공동특별전을 열기도 했으며 1971년 에는 등잔으로만 단독으로 수원여성회관에서 전시회를 했다. 당시로써는 등잔 전시가 생소했기 때문에 동양TV 아침 생방송에도 출연했고 나아가 박물관 관장들에게도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91년 가을에 롯데월드에서 연 소장품전은 전시기간을 두달이나 연장했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모든 물건이 그렇겠지만 겉만으로는 일정한 깊이를 알 수 없다. 쓰임, 유래, 제작과정, 이 물건을 중심으로 한 당대 사람들의생활방식, 역사적(민속적) 의미 등을 알게 되면 분명히 다름을 알수 있다. 따라서 등잔도 고려청자나 김홍도의 그림만큼 귀중하게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문화재와 등잔에 대한 김동휘의 지론이다. 이처럼 등잔은 옛날부터 귀천이 없이 어떠한 사람이건 썼던 물건이다. 재화적 가치는 없어도 그렇게 집안 대대로 내려왔다. 그러다가 근대에 와서 혁명처럼 석유와 전깃불이 들어오면서 천덕 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다. 김동휘 관장의 눈에 보이는 등잔은 우리 조상들의 얼을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타임캡슐이었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수공예품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아이디어나 재질, 규모, 느낌 하나하나가 다른 분위기를 담고 있어 김동휘에게는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김동휘에게 등잔은 그 아래서 바느질을 하곤 하셨던 어머니를 연상하게 해준 그리움의 매개였다. 김동휘는 1950년대 후반부터 시간 될 때마다 인사동과 황학동 골동품상을 찾아 등잔을 중심으로 옛 미술품을 수집하였다. ‘수원 등잔박사’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였다. 지금 관장으로 있는 큰아들 형구의 생일에 촛불 대신 등잔을 켜놓고 생일 축하파티를 했을 정도로 등잔에 흠뻑 빠졌다. 이런 김동휘의 우리 문화재 사랑은 결코 우연한 것은 아니었다.


김형구 관장



동휘 일가가 본가인 안성을 떠나 수원으로 나오게 된 것은 조부 때인 1897년의 일이다. 수원으로 향하던 이삿짐을 가득 실은 달구지를 먼저 보내고 ‘뭐 빠뜨린 것 없나’하고 방안을 살피는데 버려진 가재도구 틈으로 다듬잇돌과 방망이가 조부의 눈에 들어왔다. 이미 달구지는 떠났고 그렇다고 대대로 물려온 것들을 버리고 올 수는 없었다. 아직 젊고 패기 있던 조부는 이것들을 짊어지고 장장 120리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 다듬잇돌은 조모께서 내내 쓰시다가 어머니로,또 아내로 그리고 큰 며느리를 통해 지금은 박물관 전시장에 진열되어있다. “아버지는 생전에 그 방망이를 어루만지곤 하였는데이럴 때면 마치 할머니 손을 만지는 기분이 들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장남 김형구 관장의 회고다.


한편 김동휘의 부친은 수원에서 ‘김상회’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백화점 같은 사업을 했다. 그는 서화와 민속품에 관심을 두고 상당수의 유물을 수집하여 틈나는 대로 집 안에서 감상하기도 하였다. 이런 가정환경은 아들 동휘에게 또 어린 손자 형구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1991년에 있었던 롯데월드 전시에서 전시명을 ‘고등기’, ‘옛 불 그릇’ 등으로 하자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김병모 전 한국전통문화대 총장이 그냥 ‘등잔’이라고 하자는 제안이 계기가 되어 등잔박물관이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다.


왼쪽부터 김형구(28세), 부친 김동휘(52세), 조부 김용옥(75세)

1969년 촬영



등잔박물관은 현재 김동휘 선생의 1남 4녀중 장남 김형구 관장이 이끌고 있다. 조부의 문화재 사랑에 영향을 받은 아버지 김동휘 관장은 그가 운영하던 수원의 병원 2층에 ‘등잔 전시장’을 설치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등잔박물관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997년에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무역업을 그만두고 부친과 함께 국내 최초의 등잔박물관을 세웠다. 청출어람-아버지의 뒤를 이은 김형구 관장의 활동은 매우 입체적이다. 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사회활동과 전시 및 교육활동이 그것으로 이를 통해 등잔의 문화 콘텐츠적 가치를 보다 넓게 밝히고 있다.





- 김동휘(金東輝, 1918-2011)

수원 신풍리 출생, 수원공립보통학교 졸업(1931),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현경기중·고교) 졸업(1936),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현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1940), 원산 구세병원 근무(1940-45), 경기도립수원병원 산부인과 근무(1946-48), 보구 산부인과 개설(1954), 예술총연합회 수원지부 창립, 예총연합회 회장 역임(1966),한국등잔박물관 설립(1997).


- 김형구(金炯九, 1942- )

함경도 원산 출생, 사)한국사립박물관협회 상임고문, 사)경기도박물관협회 회장, 경기도박물관·미술관진흥위원회 위원장, 한국재단법인 뮤지엄협회 회장 등 역임 또는 재임. 박물관에서 발간한 도록 및 도서로는『 박물관 가는 길』(2000),『 불의 기원』(2002), 『인류의 기원』(2003), 『세계의 문화상품』(2006), 『농가월령가』(2007), 『등잔이 있는 풍속화』(2008), 『조선시대 현대 한지공예의 신비』(2009),『조선시대의 쇳대와 금속등잔』(2011), 『서민의 멋과 재치-민화』(2013), 『우리의

불그릇 등잔』(2014),『 한국도자의 빛 속을 거닐다』(2015) 등. 박물관 유공 대통령상 수상(2015). 현 재단법인 한국등잔박물관 대표 및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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