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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마음을 훔치는 화가

김정수

어쩌면 숙명일는지도 모르지만 좋은 예술가에겐 그를 이해하고 그의 그림들을 이해하는 아주 좋은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을 본다. 창작 활동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오랫동안 사유하고 생각한 것들을 표현하기란 그리 만만한 게 아니기에 작가 자신이 점점 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타인들이 보기엔 좀 이상한 행동들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 때도 있다. 어떤 땐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만큼 심한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겠지만, 좀 관대하게 보면 많은 예술가가 흔히 겪는 아픔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 같다. 그런 아픔들을 지켜보며 조심스럽게 서포트하는 참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 예술가들에겐 정말 다행인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고흐가 동생 태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생활고에 시달려 돈을 부탁하는 이야기가 많았었지만 테오는 한 번도 형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았었다. 형의 이야기와 작업에 귀 기울여 준 테오는 고흐에겐 동생이자 매니저이자 후원자 그리고 천사 같은 존재임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테오는 형이 하늘나라로 가자 얼마 안 있어 그를 따라갔다.

백남준 선생님에게도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1960년대 세계적으로 떠오른 첼로계의 샛별로 유수 방송사들과 계약을 맺고 성공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한 아티스트를 위하여 기꺼이 옷을 벗고 백남준 선생님과 함께 퍼포먼스를 펼쳐 뉴욕뿐만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했던 샬롯 무어만 (Charlotte MOORMAN), 그리고 첫눈에 반해 오랫동안 백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40여 년을 함께 했던 부인 구보타 시게코 등이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박수근 선생님의 아내분이신 김복순 여사 또한 그림의 모델이자 선생님 그림의 에너지 원천이 되셨다. 박 선생님께서 고인이 되신 후 창신동 집을 새로 지을 때 김복순 여사는 재래식 화장실을 철거하지 말고 놔두라고 말리셨다. 알고 보니 무릎이 안 좋으신 선생님이 화장실에서 나와 이젤 앞에 앉아 계실 때 등에 땀이나 젖은 러닝셔츠를 기억하시며 그 안쓰러웠던 모습까지도 마음에 두시며 잊지 않으려 하셨던 여사의 이야기를 어느 인터뷰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외에도 많은 훌륭한 화가들이 소위 극성 신도라 불릴만한 진정한 서포터들을 곁에 두었었는데 대체적인 공통점은 정말 예술가들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했다는 것이다. 말이 쉽지 힘든 일이다. 그런데 무엇이 어떤 힘이 그들을 곁에 맴도는 광신도가 되게 만들었을까. 단지 사람이 좋아서? 아님 사랑하는 감정 때문에? 물론 그런 것들도 포함되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거기다 예술가의 순수한 예술적 감정들이 이입된 걸로 보고 싶다. 그래서 작품이 탄생할 때까지 모든 감정과 작품이 탄생하고 나서 모든 감정이 작가와 거의 유사한 상태가 된 걸로 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된 것은 아마도 작가들이 그들의 마음을 훔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예술가들의 작업에 대한 극단의 순수함, 열정 이런 것들에 의해 단숨에 아니면 천천히 마음이 도둑맞았을지도 모른다. 미친 것 같은 작업을 향한 모든 행위가 어쩌면 가장 순수한 서포터들을 탄생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단 한 명의 병사만이라도 진정으로 목숨을 내놓고 따른다면 그는 벌써 위대한 장군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어느 분야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득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는가 자문해 본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30년 넘게 테오처럼 아무 조건 없이 내가 하는 모든 작업에 지지를 보내준 형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구나’라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결국, 예술가란 타인의 마음을 훔쳐 창조적 공간의 확장자로 공감을 이끌어 내는 거라면,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을 작품의 팬으로 끌어 들이지도 못하면서 많은 이와 함께 작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땀에 젖은 박수근 선생님의 러닝셔츠마저 김복순 여사의 모든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완벽하게 감상자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그런 화가가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기분이 참 좋게 느껴지는 오월의 어느 맑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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