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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가의 자존감

김정수



언젠가 모 잡지사에서 내 그림을 표지로 쓰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그림을 쓰는 비용으론 얼마를 지불하겠다라고 설명하며 굳이 덧붙이지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였다. 난 단박에 거절했다. 표지로 실어달란 화가들이 줄을 섰다는 말 때문이었다.

자기 복은 자기가 이고 간다는 말이 있다. 잠깐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다. 모 미술관 큐레이터의 말도 생각났다. 그림을 넣기 위해 줄을 선다는 말, 한국 화가가 갤러리에 그냥 그림을 놓고 가 버렸다는 프랑스 갤러리 사장의 하소연의 말, 일본갤러리 사장들이 한국 화가들 그림을 그냥 선물로 주고 갑디다 했던 말. 

탤런트들이나 가수, 배우 등의 얼굴 사진 한장 사용료가 얼마일까. 단순비교로는 좀 애매한 이야기지만, 화단이나 가요계나 방송계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일은 어렵기 매한가지라고 본다. 그런데 초상권 사용료 등은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

왜 그럴까? 언뜻 잡지사 기자의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줄을 선다라는 말. 그림 그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일까,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인구에 비하면 화가가 매우 적은 편이다. 과장인지 모르겠지만, 파리와 파리 인근에서 활동하는 화가가 100만이 넘는다는 말을 종종 들어 봤다. 그런데도 파리나 유럽에선 화가라 하면 주위에서 어울리려 모여들고 그 모임들은 즐겁고 유쾌하다. 

우리의 경우는 그림이 좀 팔리고 유명해지면 모여들고 그렇지 않으면 뺑끼쟁이라는 소리와 함께 그림 사 달라 그럴까 회피 대상이 된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도 그림 그린다 그러면 불편한 기색이 주위에 감도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여유가 있는 화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엇 때문에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본다. 한참 생각해 보니 어렴풋이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해 본다. 화가들의 자존감이 많이 훼손되어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선은 화가라 부를 수 없는 너무 많은 가짜 화가들이 더 진짜 화가인 양 설쳐대고 다닌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시인의 시처럼 껍데기 화가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그림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참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건 안중에도 없고 남의 그림을 거의 베껴서 당당하게 화가라고 떠들며 화랑에서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하고(그런 작품을 판매하는 질 낮은 화랑들도 문제지만)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부 문화센터 같은 데서 그림 좀 배워서 집안이나 배우자의 영향력에 기대어 전시회를 연이어 열며 지인들에게 은근히 압력을 넣어가며 판매에 열을 올린다. 

선생이란 사람들은 공모전 같은 데 제자들 수상하게 만들고 제자 전시 때 손봐주며 이것저것 챙긴다는 이야기가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때도 있었다. 

그 선생조차 화가라기에는 자기 작업 세계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해 더 배워야 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무슨 협회 같은 데에서라도 감투하나 쓰려고 혈안이 되어 이리저리 기웃기웃 돌아다니고.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본인이야말로 그림 그리는 철학이나 독창성이나 기법이나 이런 모든 걸 종합해 봤을 때 최고의 화가라고 떠들어 대기 일쑤지만…. 

적당한 평론 글에 적당히 매스컴 좀 타고 대충 포장해서 전시하고, 해외전이니 아트페어니 적당히 경력 좀 쌓고,이렇게 그림 외에 여러 가지 학력, 경력, 재력, 권력 등 명쾌하지 못한 것들로 치장해서 화가라고 큰소리치며 다닌다. 또한, 다른 직장을 가지고 겸업하며 화가라고 하는 이들도 많다.

생각해 보라. 그림 그리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이던가. 평생을 그리고 그려도 자기 작업세계 구축하기가 힘든 그런 일이 아니던가. 다른 일에 충실하면서 월급 또박또박 받으며 곁눈질로 작업해도 그렇게 쉽게 쉽게 작품이 나올 일이던가. 스쳐지나가는 바람 같은 돈, 명예, 눈앞의 이득 이런 것들에 쉽게 꺼져버리지 않는 멋진 자존감으로 묵묵히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해온 멋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진정한 ‘화가’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 껍데기들은 누가 화가라 그러면 겸손히 저 아직 화가 되려면 멀었다고 대답했으면 한다. 진정한 화가들의 자존감을 더러운 붓질들로 휘젓지 말기를. 앞서 이야기했지만 자기 복은 자기가 이고 간다는 말이 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에 걸맞은 옷을 바로 입었을 때 아마도 어떤 모임에서든 즐겁고 유쾌한 예술가로 존재할 것이다. 이제 미술 세계에서도 껍데기들은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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