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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바다가 보이는 카페의 벽면

박영택

오석근, 인천 월미도 연인들의 서약, 흑백사진


모든 벽은 시간의 입김에 의해 조금씩 마모된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 피부는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자취로 혼곤하다. 비가시적인 것들에 의해 문질러진 흔적은 가시적 대상이 되었다. 물론 의도적인 행위 때문에 조금씩 변형된 것이기도 하다. 해서 남겨진 가시적 대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떻게 보이게 되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또는 의식적으로 벽에 남긴 행위의 기원을 헤아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물의 피부, 벽을 골똘히 응시한다.

그것은 모종의 통로가 되어 내 시선과 의식을 어디론가 몰고 간다. 얇은 막 위에 펼쳐진 것들은 무척이나 깊은 생각거리의 공간을 후벼 판다. 그래서일까, 하루의 동선에서 우연히 만나는 다양한 벽면들을 수시로 카메라에 저장한다. 나는 그 상처들을 즐겨 수집하고 있다. 시간의 압력과 계절의 현기증 나는 선회의 속도를 몸소 받아내며 쇠락하는 그 피부는 형언하기 어려운 화면이자 조각, 오브제나 설치에 해당한다. 따라서 나는 그것들을 사진으로 채집하며 즐거이 감상하곤 한다. 그것은 자연이 만든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것이자 동시에 모종의 의도를 갖고 개입한 누군가의 욕망을 은연중 발설한다.

근래 수년 동안 많은 벽을 찍어두었다. 그것들은 우선 외장 하드에 가득 저장되어 있는데 언젠가 정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벽 하나하나에 대해 모종의 단상을 기술하고 싶은 것이다.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늘 휴대전화기에 장착된 카메라 렌즈를 통해 하루에 만나는 모든 장면 중 인상적인 것, 치명적인 것, 매혹적인 것, 아름다운 것, 언어와 문자로 기술되지 못하는 묘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 등을 그렇게 찍어두고 있다.

오석근이 찍은 이 사진은 인천 월미도의 앞바다가 바라보이는 어느 카페의 내부 벽을 촬영한 것이다. 이 카페에 온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 동안 낙서를 했고 그 낙서가 벽지처럼 자리하고 있는 장면을, 작가는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인천에 거주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서울에 사는 이들에게 이곳 인천의 월미도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바다일 것이다. 그러니 바다를 보고 싶은 이들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인천에 와서 월미도로 가면 된다.

바다가 보이는 그곳에는 납작한 카페나 식당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저녁이 되면 적지 않은 연인들이 이곳에 자리한 카페에 와서 창문 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응시하면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자 할 것이다. 대략 10,000원 내지 15,000원 정도 하는 칵테일 한 잔이나 커피를 주문해 마시면서 나름대로 분위기 있는 시간을 지연시키고자 하지 않을까? 바다는 저 멀리 수평선으로 펼쳐져 숨을 죽이고 사랑하는, 사랑하고자 하는 두 젊은 연인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앉아서 이 순간이 영원으로 지속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불안이 두렵고 한편으로는 정해지지 않은 둘의 운명에 대한 조바심으로 애를 태우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왔던 젊은 청춘들은 자신들이 앉은 의자 옆의 흰 벽면에 자신들이 이곳에 왔음을, 그리고 자신들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벽면에 간절히 기재했다. 마치 선사시대인들이 자신들이 사냥터에 가서 잡아야만 했던 사냥감을 동굴의 벽면에 그려 넣었던 것처럼, 그 주술처럼 말이다. 민호와 광은, 세일과 하늘 등이 이름이 쓰여 있고 하트 형상에 날짜, 그리고 둘만의 긴밀한 관계를 보호받으려는 듯이 네모를 쳐놓기도 했다. 이 낙서, 주문과도 같은 이미지와 문자들을 보노라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간절하기도 하고 왠지 서글프기도 하다.

불안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청춘기의 사랑과 그 소멸하기 쉬운 연애의 감정이 영속적이기를 애타게 바라는 이들의 마음이 안쓰러운 것이다. 지금 민호와 광은은 잘살고 있을까? 과연 그럴까? 아마도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언젠가 이곳에 와서 절박한 마음으로 흰 벽에 낙서했던 사실도 까맣게 잊고 각자 잘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가 있겠나? 고통스러운 청춘기의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이들은 각자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그 순간이 영원하기를 터무니없이 바랐을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사라져버리는 시간을, 순간의 감정을 흘려보내며 죽어갈 뿐이다. 그러나 벽은 여전히 살아남아 이곳에 왔던 이들이 어떤 마음과 감정을 은연중 발설했는지를 선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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