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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역자 후기, 또 다른 저자의 말

호경윤

최근 통번역을 서비스하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과 컴퓨터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다. 네이버에서 내놓은 ‘파파고’는 인공신경망을 적용해 문맥에 따라 번역할 수 있다며 가히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지만 마치 알파고와 의 바둑 게임에서처럼, 머지않아 인공지능 번역기가 인간을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있듯이, 번역가는 미래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 다. 특히 미술처럼 은유와 상징의 표현이 빈번하게 사용되는 분야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 현대미술비평 30선』 표지


일민미술관에서 2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는 ‘역자 후기’라는 강연 프로그램이 있다. 그동안 총 10회를 개최해오면서 미술관 측은 이 프로그램에 대해 “동시대 미술 담론을 구성하는 다양한 서적의 번역자들을 초청하여 직접 주해를 듣는 자리로, 번역서의 내용은 물론 책이 발간될 당시의 문화 정치적 상황, 동시대 한국의 미술 담론에서 적용할 수 있는 주제 등에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고 설명하면서 또 다른 저자로서의 번역자에 힘을 실어 준다. 대부분의 번역서에는 책의 뒷부분에 번역자가 쓴 후기가 실려 있다. 책 전체의 내용에 대한 안내가 되어 주기 때문에, 필자는 보통 번역서를 볼 때 역자 후기부터 챙겨 읽는다. 때로는 이 지면에 번역하는 데 어려웠던 점이나 오류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내용이 적혀 있기도 한다. 바로 여기서 번역가의 주관성, 즉 ‘제2의 창작’으로 번역의 중요성이 드러나곤 한다.


역자후기 10- 임산: 알린 골드바드, ‘새로운 창의적 공동체’(2017.4.5)

다음은 독일의 미디어 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기록시스 템 1800-1900』를 완역한 윤원화가 쓴 후기 중 일부다. “자기 의혹을 에너지원 삼아 움직이는 언어의 친애하는 적으로서, 키틀러는 일상적인 독일어나 학계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보다 이를 약간 비틀어서 다소 변칙적인 말의 집을 짓는다. 이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한국어로 옮기기란 아마도 실현될 수 없는 바람일것이다. (중략)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이 책이 교양 있는 일반 독자에게 가능한 한 원서를 읽을 때와 근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총 800페이지가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은 둘째 치고, 독일어로 된 특정 용어를 대치시킬 만한 한국어가 존재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난제가 있었음에도 번역자는 이 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과거 번역기도 없고, 해외 서적도 구하기 힘든 시절에는 한국미술계에 서양의 담론을 전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번역의 역할이 강력했다. 1987년 미술평론가 이영철이 엮어냈던 『현대미술비평 30선』이나 1989년 창립된 미술비평연구회 혹은 그 멤버들이 번역했던 책들은 한국미술이 동시대성을 축조해 나가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 이후 미술 이론 번역서는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특히 한 사람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 장별로 나누어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 이론 전공 대학에서 제자들이 번역을 하면 교수가 감수를 맡는 식으로 나온, 전공자를 위한 교재에 가까운 번역서들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였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의 학예연구부 22인이 함께 번역한 『라운드테이블』처럼 큐레이터가 동시대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공유하기 위한 번역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중에서 『스스로 조직하기』를 옮긴 박가희, 전효경, 조은비가 대담식으로 쓴 후기가 인상적인데, 이 내용은 미술에서의 번역이 결국 큐레이팅과 비슷한 작업이라는 것으로 읽힌다.

한편, 반대로 한국어로 된 글을 영어로 번역해서 해외에 출간하는 필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얼마 전부터 국가 문화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아직은 걸음마 단계로, 도록에 들어가는 짧은 글이나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책자 정도에 국한되고 있다. 한국의 미술평론가가 쓴 두꺼운 책을 번역하며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다는 외국인 번역가의 역자 후기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일까?


- 호경윤(1981- ) 월간 『아트인컬처』 편집장 및 2013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부커미셔너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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