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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김일, 투쟁과 해학이 융합된 전위회화의 세계

최열

1995년 정부는 김일(金鎰)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국가보훈처가 발행한『 독립유공자 공훈록』을 보면 생몰년을 알 수 없는 강원도 사람으로 1916년 9월 평안북도 영변의 의병장 출신 기천(己千) 이진룡(李鎭龍, 1879-1919)의 독립군부대에 편성되어 전투를 전개하다가 이진룡이 1919년 3.1민족해방운동 직후 체포, 처형당한 뒤 만주로 건너가 박장호(朴長浩, 1850-1922), 조맹선(趙孟善, ?-?)과 함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 활약하던 중 1925년 무렵 일경에 체포, 피살당했다고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두산백과』에서는 강원도 원주 출생이며 황해도 의병 활동하였다고 했다.



김일, 매화 8폭 병풍, 1936, 천, 85×30.8, 최열 소장


그 뒤 최열의 「제국과 식민지 사족 지사화가」에서 화산(華山) 김일(金鎰, 1880 무렵-1938 이후)은 황해도 일대 해주, 문화 및 구월산에서 펼쳐진 의병부대에 속했다는 사실과 대한독립단이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주장하는 조직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김일의 사상 경향을 추론하였고 나아가 김일이 1925년 무렵 피살당한 게 아니라 출옥 이후 보성전문학교 교사로 재직했었고 퇴임 이후 호남을 왕래하며 서예와 회화에 의탁하여 생애 말년을 보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그가 남긴 작품에 쓴 제작연도를 확인함으로써 그가 적어도 1938년까지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의 작품을 배관할 수 있는 기회가 가끔 주어지는 전주, 광주 쪽의 구전에는 그가 일대에 머물러 살았으며 서화가와 교유했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호남 쪽 기록에 없어서 그의 고향인 강원도 쪽 기록을 찾아보았지만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어느 쪽에서도 무관심했던 것이다.



김일, 10군자 병풍 국화, 연대미상, 비단, 81.5×29.5, 최열 소장


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도 지사 출신 화가에 대한 배척이 미술계를 주도하는 이들은 물론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 관장 및 학예사들에게 광범위하게 내면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무시는 무지로부터 비롯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명성과 권위를 가로막는 장애라는 생각과 또한 지사 출신 화가의 작품세계가 지닌 깊이와 넓이 그리고 그 양식의 창의성과 혁명성을 전혀 볼 수 없는 안목부재로부터 였다.

하지만 김일의 사군자 세계는 너무나도 독특해서 18세기 이인상, 19세기 윤제홍, 20세기 윤용구에 비견할 수 있을만큼 전위성과 혁신성이 눈부신 별격(別格)의 가치를 뽐내고 있다. 강인성과 유연성의 조화, 근엄성과 익살성, 우아함과 유치함 그리고 단아함과 해학 같은 모순된 특성들이 어울려 뿜어내는 기이함은 놀라운 흥미를 관객에서 선사한다. 하지만 사후 80년이 흐르도록 우리는 그를 배척하고 있다. 투쟁과 해학이 융합된 20세기 초 전위의 화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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