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있는 풍경(97)
“머릿속으로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전개하면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노는 일은 어린 시절엔 즐거운 놀이 중의 하나였다. 언제부터였을까? 공간 또는 장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우리 집을 비롯해서 다른 집들, 다른 건물들, 다른 동네 그리고 우리 집 뒷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었다. 또한 수세기 과거 유물의 흔적이 생활공간이며 일상인 로마, 그 곳에서 보낸 유학 시절은 공간에 대한 관심을 더욱 확장 시켰다. 귀국 후 서울이라는 공간은 다시금 극복해야만 하는 또 다른 현실이었으며 대상이었다. 유학 기간 서울에서의 긴 공백은 마치 삶의 한 부분에 뚫린 거대한 구멍과도 같았다. 공간이동에 따른 삶의 변화와 공간 프레임의 안과 밖의 관계를 조율하는데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나는 계속 내 삶의 안에 있는 줄 알았는데 밖에 있는 것처럼 되어버린... 이러한 경험 때문이었을까? 평면(같은 시간) 안에서 말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각각 다른 위치에 있는 작품, <이중존재-공간>은 공간 속에 투영된 삶의 모순이 존재의 방식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는 당시 나의 현재적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리라.
그 후 수년간 나의 작업은 건물이나 전시장 벽면에 거울과 라인 테이프로 드로잉을 해서 3차원의 입체, 가상의 공간을 구축하는 평면 설치 작업으로 일관해왔다. 착시를 이용한 공간의 변형을 통해 제 2의 공간을 만들어 냄으로써 본래의 익숙한 공간 속에 생경한 또 다른 현실을 표현하였다. 내 자신이 적극적으로 시점을 이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늘 똑같은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과거와 현재, 환영과 실재, 부분과 전체, 존재와 부재... 그리고 평면과 3차원. 이들은 이질적이면서도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 서로 상반된 개념들은 마치 중력이 사라진 듯 자유롭게 병치된 이미지를 통해서 모든 고정된 기준을 해체한다.
영상작품
은 그 간의 작업 개념이 종합적으로 함축된 작품이다. 공간의 생성과 사라짐. 그 순환의 고리가 인간의 욕망과 연결된 작품이다. 하나의 선, 그것은 인간의 자각의 시작이며 역사의 시작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의 유일성으로 살아 숨 쉬는 삶의 유기체이다. ‘비움’이란 아무것도 없는 ‘무無’를 의미하기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기초로써 새로운 시작이며 가능성임을 나타낸다. 부분을 전체로 판단하는 우리의 미숙함 그리고 삶의 모든 확신과 기준으로 재단된 옷을 벗는 것이다. 최근에는 공장 굴뚝의 연기가 만들어낸 이미지들로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연기는 곧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지만 형체가 없어졌다고 해서 그 독성까지도 함께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가장 큰 바람은 무엇일까? 무병장수일까? 권력일까? 아님 그 무엇이 되던지 인간의 유익을 위한 선택과 행동들이 뒤늦은 후회와 헛된 일루전이 아니길 바란다. 실재란 땅위에 그린 그림처럼 그렸다가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실재에 귀 기울일 때이다.” - 작가의 생각
건축가를 능가하는 공간에 대한 진지한 탐구력이 좀처럼 식지 않는 것 같다. 주어진 공간에 대한 주관적 해석은 누구나 각각이지만 뻔하지 않은 예술을 만드는 이는 결국 극소수다. 이미 매체의 특성에 맞게 성공적으로 공간을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라면, 향후 ‘건축’이라는 장르에서도 좋은 예술을 남기리라 충분히 예상한다.
<- 박은선 작가는 2011년 카이스트갤러리에서 15번째 개인전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