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서울아트가이드 디.에디션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김달진의 휴머니즘 아카이브 인생(1): 고독한 아이의 운명, 수집

심현섭

김달진의 휴머니즘 아카이브 인생


I. 발아기: 국립현대미술관까지


고독한 아이의 운명, 수집


정지용 시인이 <향수>에서 읊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예로부터 물 맑아 포도, 복숭아 같은 과일이며 벼농사가 풍성했던 충북 옥천군 이원면. 사통팔달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지금은 우리나라 최고의 묘목원산지로 경제적 부를 획득하고 있는 지역이다. 사회정치적으로 눈을 돌리면 지역주민이 발행하는 옥천 신문, 배바우 신문 등의 선진적인 운영으로 지역 언론의 모델을 제시하고, 자생적 축제, 도서관 설립 등의 사업을 펼침에 있어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한국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아나키즘적 자치가 돋보이는 지역으로 이름나있는 곳이다. 경제적 자립 뿐 아니라 자율적 문화 권리를 획득하는데 앞장서온 옥천에서 한국 미술계의 불모지였던 아카이브 영역에 독자적으로 뛰어들어 단초를 놓은 김달진이 태어난 건 아무리 우연이래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강변 자갈밭에서 쓰러지신 어머니가 끝내 세상을 떠났을 때, 61녀의 막내 김달진은 11살이었다. 어릴 때부터 밖에 나가놀기 보다는 집에서 무언가를 모으고 오려붙이는 일을 더 좋아했던 김달진은 어머니를 잃은 후 더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대전에서 철도공무원으로 재직하던 셋째 형은 영민한 동생을 대전의 중학교로 진학시켰다. 조용한 성격에다 몸집이 작아 여자 같다는 놀림을 받았던 그는 무언가를 모으고 붙이는 일에 더욱 몰두하게 된다. 우체국 창구에 몸을 뺀 작은 체구의 소년이 새로 나온 우표를 사기위해 동동거리며, 방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잡지에 나온 그림을 오려 도화지에 오려붙이는 모습에서 이후 한국 미술 자료 수집의 장인의 면모를 누가 발견했을까. 훗날 한국 미술사에서 미답의 영역을 개척하고 선도해나는 한 사람이 탄생하는 결정적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고 자신조차 가늠하지 못했던 운명의 시발점이었다.

 

           뭐라고 시작할까... 고향이 충북 옥천군 이원면 대동리(행정상으로는 미동리)이구요, 형제는 51녀 중 막내였었고, 또 뭐 어머니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시고, 성격이 약간 이제 여성적이라고 해야 될까? 소극적이고 그러니까 모으는 거에 좀 관심이 많았죠. 옥천군 이원면 대성초등학교 나오고 중학교 때 대전으로 온 거예요. 충남중학교에 다니면서 뭐 우표수집, 껌 상표, 담배 갑, 뭐 여러 가지 것을 많이 모았죠. 그래서 우표가 새로 발행되면 기념우표라고 나오잖아요. 박정희 대통령이 외국방문을 한다든지 전국체전이 열리면 기념우표가 나오는데, 발행 숫자는 한정돼서 나오니까 대흥동에 있는 대전우체국으로 가서 미리 가서 사야 되잖아요. 늦게 가면 없고, 기념우표가 언제 나온다는 건 아니까, 발행날짜 맞춰가지고 창구에 달려가 우표도 사고, 시트라고 해가지고 우표 말고 이런 게 있어요. 필요하시면 그런 거 한번 잠깐 실물로 한번 보는 게(서가에서 우표 수집 책을 꺼내온다). 우표를 사고 우표상회에서 외국우표도 사고 친구와 바꾸기도 하고 워낙 많이 이렇게 모았었는데 지금은 다 중단하고 그 당시 이게 뭐야 외국화폐 동전도 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것도 모았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동전 화폐. 60년대 말에서 70년댄가? 그 당시 일본우표잖아요? 발행 년도가 1967년 이런 때네? 이런 외국의 우표라든지 이런 것도 많이 모으고. 그리고 이건 그 당시 우리나라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 신윤복, 이재관 그림이네. 지금은 우정사업부, 옛날에는 체신부에서 조선회화나 콩쥐팥쥐 등 동화를 시리즈로 발행했죠. 그러나 우표 수집은 중단했으니까 다 나눠주고, 일부 남겼죠. 왜냐하면 외향적으로 밖에 나가서 활동을 안 하고 내가 취미로 해서 모으고 하면, 모으는 것이 내 스스로 만족을 하는 거죠.


 당시 충남중학교는 명문학교인 대전중학교, 한밭중학교에 이은 공립중학교로 야구로 유명했던 학교로 기억해요. 중학교 입학성적이 좋아서 반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구령이니 통솔력이 부족하여 담인 선생님께 반장을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다가  혼난 적도 있었고. 중학교시절 글쓰기에도 소질을 보여 신흥이라는 학교교지에  1학년 때는 독후감 레미제라블을 읽고”, 2학년 때는 수학여행 기행문 경주를 다 녀와서”, 3학년 때는 산문 친구가 실렸어요. 그 교지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어요김소월의 초혼을 애송하기도 하는 문학소년이었지요.


기록은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의 표출이다. 1994년 프랑스 남부에서 발견된 쇼베동굴에 그려진 32천 년 전 그림들과 오늘날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SNS, 블로그를 통해 수없이 업로드 되는 글과 사진들은 인간의 기록 욕망이 얼마나 오래되고 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의 흔적 뿐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본능이 있다. 기록은 누적되어 역사와 문화를 풍성하게 한다. 기록이 역사와 문화가 되는 과정에 수집이 있다. 따라서 수집은 인간의 욕망을 모으는 또 다른 층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일반적으로 수집에는 자기만족, 심리적 편집증(욕구), 투자성 등의 동기가 작용한다. 김달진의 어린 시절 수집은 자기만족과 편집증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달진은 어머니를 잃은 후 찾아온 상실감과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으로 수집에 빠져들었다. 껌 봉지를 모으고 우표를 모으던 그가 미술과 관련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특별히 미술 선생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영향은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여성 잡지에서 미술품 사진을 봤는데 첫 눈에 반해서 오려 모으기 시작했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 운명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는 지금처럼 그림에 대한 우리나라에서 호화로운 서양미술 전집이라든지, 지금처럼 뭐 서양의 유명한 오리지널 작품을 우리가 본다는 건 그때 꿈같은 얘기죠 1970년대 초반은. 예를 들어서 예전의 조선일보가 인상파전으로 끌어다가 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좋은 원화를 본다는 건 그 시대엔 어려웠잖아요. 그럼 그 당시에 뭐 예를 들어 주부생활 이라든지 뭐 여원 여상잡지에 칼라 화보가 하나 나오잖아요. 다빈치의 모나리자, 르느와르, 피카소 그림, 그런 것들이 원화는 아니지만 거기에서 받은 그런 감동이라고 해야 될까? 그런 게 굉장히 좋았죠. 그런 거를 그냥 단순히 하나씩 오려서 모으는 어떤 그런 거를 쭉 집적해 나가고, 그래서 그걸 내 나름대로 뭐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그런 식으로 훑어서 서양미술사. 그런 일종의 스크랩북을 만들면서 이제 고등학교 때 서울로 오니까 지금이야 청계천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는 청계천이 6,7,8가가 완전히 헌책방이었잖아요. 거기 가서 뒤지면서 뭐 미술교과서 사서 오리기도 하고 일본에서 나왔다는 서양미술전집 같은 거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오니까 그런 거 사서 뭐 도판 같은 것도 뜯고 오리기도 하고, 또 지내놓고 생각하니까 그 당시에 내가 필요한 거는 지금 피카소 이 그림이니까 요거를 뜯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당시에 그걸 뜯을게 아니라 그 책에 실려져 있는 원본 자체를 보존했으면 좋았었는데, 그 당시는 거기까지 생각이 못 미치니까 그렇게 해서 뜯어서 모아서 나름대로 서양미술 스크랩북을 만들어갔죠. 그때 내가 참고했던 것이 지금이야 뭐 서양미술사에 대한 책도 많이 나왔지만, 그 이영환 선생이라고 많이 안 알려진 분인데 박영사에서 나온 서양미술사라는 책이 있었어요. 그게 르네상스 그 이전 원시시대부터 서양미술사를 시기 유파별로 굉장히 잘 정리된 책이에요. 그 책 자체가 나한테는 굉장히 좋은 참고서 같은 그런 책이죠. 그걸 가지고 시대별, 유파별로쭉 만들면서 서양미술전집 10권을 스크랩북을 만들은 거죠. 그래서 내가 만든 서양미술전집은 이거거든요. 이거를 르네상스에서부터 20세기까지 해가지고 색 켄트지 있잖아요. 예를 들어 르느와르를 펼치면 르느와르의 전집 이런 걸 오려 모은 거죠. 르느와르의 일반적인 도판이 거의 다 모아질 정도로 엄청나게 모은 거죠.






하단 정보

FAMILY SITE

110-020 서울시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5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