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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5/ 프리드와 미니멀리스트의 논쟁

심현섭

공공미술 5/ 프리드와 미니멀리스트의 논쟁 

프리드의 미니멀리스트에 대한 비판은 「미술과 사물성(Art & Objecthood」(1967)에 담겨있다. 그는 여기에서 미니멀아트를 리터럴아트(literalist art)로 부른다. 이는 어떤 철학적, 과학적 원리, 즉 모더니즘적 이성에 근거하지 않고 감각의 역사에 속한 미술과 예술작품의 내적상관성을 거부하고 대상의 사물성 자체를 그대로 제시하는 미술을 의미한다. 프리드는 미니멀아트가 모더니즘 회화나 조각이 아닌 독립된 미술로서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지만 실패했다고 본다. 

미니멀아트의 출현에는 매체의 물질적 특성을 강조하며 모더니즘 미술을 정의한 그리버그의 언급이 모티브로 작용한다. 그는 비록 성공적이지는 않다는 단서를 달지만 캔버스만으로도 이미 회화로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캔버스/물질 자체를 회화의 형태로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그린버그, 1962). 이어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94)는 빈 캔버스를 하나의 회화적 형태로 보고 2차원의 평면성을 떠나 조각의 3차원적 공간을 회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D. Judd, 1965; Howard Singerman, 1989). 그러나 이러한 장르의 혼합은 매체 특수성과 함께 미술의 순수성이 미술의 질과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믿는 모더니스트 프리드로서는 애매모호한 미술로서 수용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미니멀아트의 입장에서 2차원적 평면이 만들어내는 원근법적 공간과 환영을 일시에 제거하는 3차원적 공간의 확보는 유럽미술의 전통과 모더니즘 미술을 벗어나는 일이었으며, 프리드가 부재하다고 여긴 미니멀아트의 철학적 바탕이었다. 

프리드와 미니멀리스트의 논쟁은 회화적 형태와 사물성(작가의 흔적과 물질의 반복), 비연극과 연극, 작품과 관객(고독과 고립), 현재성과 현존(순간성과 지속성, 신념과 흥미) 등 대략 네 가닥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 

프리드는 사물 그대로의 형태와 회화적 형태를 구분하면서 미니멀아트의 형태에는 사물만이 느껴진다고 지적한다. 사물(thing)을 대상화(object)하는 과정이 부재한, 회화적 형태가 없는, 사물 그 자체 혹은 그렇게 느껴지는 즉물적(literal) 미술이라는 것이다. 사물의 대상화 과정을 생략하는 차원에서 작가의 흔적을 거부하는 미니멀아트는 사물의 반복성과 전체적이고 단일한 형태(gestalt)를 추구한다. 작품을 게쉬탈트로 받아들이면 부분들 사이의 위계적 관계가 해체되면서 작품의 형태가 가져오는 작가의 암시나 환영이 축출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작품 내의 부분들에 나타나는 작가의 인위성은 사라지고 대상의 물질성이 두드러지면서(Robert Morris, 1970) 모더니즘 회화나 조각의 표상이었던 ‘작가의 흔적’이 제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물의 반복성과 게쉬탈트로 관객에게 제시된 대상이 사물로서 느껴지는 상태를 프리드는 사물성(objecthood)이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그러나 프리드가 보기에 작가의 흔적을 제거하고자한 미니멀리스트의 의도는 그들 작업 역시 인간 형태를 띰으로써 성공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그것을 은폐하려는 작위성을 드러낼 뿐이다. 

프리드에 의하면 미술과 비미술을 가르는 경계는 연극성(Theatricality)의 유무이다. 미니멀아트의 연극성은 인간형태주의에 대한 은폐와 관객과 작품의 관계라는 두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프리드는 미니멀아트가 스스로 인간형태주의를 벗어났다고 여기지만, 인간신체와 크기가 비슷한 점, 미니멀아트가 추구하는 비상관적, 단일적, 전체적인 실체는 바로 사람인 점, 작품의 속이 비어있다는 점을 들어 미니멀아트가 인간형태주의에 가깝다고 본다. 그러나 그는 작품의 인간형태주의를 부정하거나 그 자체를 비판하기보다는, 미술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간형태주의를 은폐하려는 미니멀리스트의 태도가 연극적이라고 비판한다. 

또 한 측면의 연극성은 세 번째 구도인 관객과 작품의 관계에서 비롯한다. 작품을 하나의 형태로 보기 위해서는 관객의 능동적인 인지행위가 중요한데, 이는 시각적 감각과 함께 작품이 놓인 공간을 공유하는 관객의 신체적 행위를 동반한다. 작품은 이제 작가의 의도와 제작 행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놓인 장소, 이와 관련한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로서 완성된다. 프리드에 의하면 이것은 작품과 관객의 고독(solitude)한 만남 대신, 관객과 관객 이외의 것의 만남(그는 이를 관객을 작품으로부터 격리한다는 의미로 고립isolation이라고 표현한다) 을 조작하는 것이다. 관객을 작품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연극적인 주변 요소가 필요하다. 이전의 미술에서는 작품 내에서 작품을 경험했다면, 미니멀아트에서는 어떤 조작된 상황 내에서 대상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의 주인은 작품이 아니라 관객이다. “작품은 관객을 기다려온 것이다.”(Robert Morris, 1965) 프리드에 의하면 이렇게 작품이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미술은 연극에 가까운 예술로서 미술이 아니다. 그러나 로버트 스밋슨(Robert Smithson, 1938-73)은 프리드야말로 관객으로부터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연극을 하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Robert Smithson, 1967).

프리드는 작품 경험의 인식을 현재성(presentness)과 현존((presence)으로 구별한다. 현존은 작품과 관람객의 의식과 극적으로 구성된 주변 요소들이 상호관계를 맺는 상태 혹은 순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객은 작품과 현존할 우연의 순간을 기다리거나 찾아야 하는데 이건 관객의 편에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순간순간 다가오는 느낌의 차이의 반복 역시 시간을 요구한다. 모리스가 지적하듯 게쉬탈트의 인지는 즉각적인 동시에 곧바로 뒤따르는 경험에 의해 소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의 경험은 반드시 인식의 멈춤과 인식의 재진입이 반복하는 시간의 지속성 속에 존재한다. 프리드는 이러한 미니멀리스트의 작품이 요구하는 시간은 지속적인 흥미를 유도하는 작품외의 장치들, 즉 연극성 때문이다. 그는 관객의 흥미와 신념을 구분하여 신념의 관객에게는 연극성으로 인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신념을 가진 관객은 작품과 직접 연결되는 시간이 아닌, 작품 외 조건들과 관객이 관계를 맺는 시간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작품을 관객의 경험을 주도하는 주체로 인식하는 프리드는 시간성에 의존하는 관객의 연극적인 체험과는 다른,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느끼는 충만함을 제공하는 현재성(presentness)의 경험을 중시한다. 현재성의 경험에서는 작품이 관객을 흡수한다(몰입). 이 몰입은 자동적이고, 비의도적이고, 무의식적이다(Michael Fried, 1980). 프리드에 의하면 관객은 그림/작품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때 작품과 일체화한다. 이러한 자기 부정은 작품이 관객을 끌어들임으로써 발생하며, 이 몰입이 작품/대상과 주체의 관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관객에게 현재성의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서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오브제의 창출(충만히 인식된 타블로)과 새로운 종류의 감상자(새로운 ‘주체’)의 구축이다. 그 감상자의 가장 깊은 내면은 정확하게 재현 장면에서 자신의 부재를 확신한다.”(Michael Fried, 1980) 

미니멀리스트들은 작가의 주체성이 주도한 조각 작품의 내적 관계들을 관객의 의식과 연결시키는 모더니즘 조각의 프리드식 관념주의를 비판하면서 관객과 작품, 그리고 그들이 존재하는 장소 사이의 현상학적 체험을 탐구하였다. 이로써 작품의 감상은 찰나적인 시각의 경험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르는 몸의 경험으로 받아들여졌다. 

공공미술의 관점에서 미니멀리스트와 프리드의 논쟁이 흥미로운 점은 장소에 작품을 배치했던 과거의 사례들에서도 이러한 작품과 관객의 대비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748년 루이 15세의 동상을 광장에 세우기 위해 공모한 설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으로, 당시 설계자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동상의 실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신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경험보다는 인식과 지각, 사고에 의한 선험적 판단을 중시하였다. 반면 미켈란젤로의 캄피돌리오 광장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상은 한눈에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동상과 주변 공간 속에 결합된 필수요소로 신체적 경험과 연결성이 관람의 전제조건이다(김미상, 2004). 시차가 있지만 이런 역사적 실례는 프리드식 현재성의 경험과 미니멀리스트의 현상학적 체험(현존)이 예술적 경험으로서 공존할 수밖에 없는, 그만큼 둘 다 예술 감상에 있어 중요한 경험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작품 앞에서 관객은, 또 관객 앞에서 작품은 양 쪽 모두의 경험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는 할 포스터(Hal Foster, 1955- )가 언급하였듯 미니멀아트가 작품을 중심에 둔 모더니즘과 관객에 중심을 둔 포스트모더니즘을 동시에 품은 중간적 미술로서 미술의 여정에 속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Hal Foster, 1984). 

미니멀리즘은 모더니즘의 작가의 주관성과 미적자율성 개념을 거부하고 작품 감상의 주체를 작가와 작품 중심에서 관객의 경험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작가와 대상/사물,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공간과 장소의 관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던 대지미술, 설치미술 등 다양한 미술의 수용과 복합의 길을 열었다. 이와 같은 진전은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확장된 장’ 이론이 확인한다. 

(다음: 매체의 경계 해체: 크라우스의 확장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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