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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6/ 매체의 경계 해체: 크라우스의 확장된 장

심현섭

공공미술 6/ 매체의 경계 해체: 크라우스의 확장된 장


프리드가 「미술과 사물성」(1967)에서 모더니즘 회화의 역사적 관점에서 미니멀리스트의 작업을 비판하였다면, 크라우스는 「확장된 장의 조각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1979)을 통해 조각의 역사적 측면에서 미니멀리스트의 작업을 수용하는 이론을 펼치는데 주력하였다. 이와 같은 크라우스의 입장은 글이 쓰인 시기를 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미니멀리스트의 작업이 대지미술과 같은 “다소 생소한” 형태로 드러나면서 하나의 현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후라는 점과 이미 그들 작업이 조각이라고 불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크라우스는 1968-70년 무렵, 그러니까 미니멀리스트 작품에 대한 논쟁이 일었던 시기에 내적으로 조각의 해석의 장을 확장해야 한다는 압력이 팽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크라우스는 미니멀리스트의 작업들을 조각의 범주에, 정확하게는 미술의 역사에 편입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내재적 논리와 자체 규범을 가지고 이어져온 전통적인 조각이라고 규정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이들 작품을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러시아 구축주의나 심지어 수백 년의 역사를 거슬러 조각이 아닌 스톤헨지, 인디언 무덤 같은 것을 소환하여 조각이라는 카테고리에 집어넣으려는 당시의 시도로는 ‘조각’의 의미가 모호해진다고 본다. 따라서 크라우스는 이와 같은 역사화의 욕망(역사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정신적, 언어적, 사회적 구조 위에서 문화의 의미가 생산된다는 구조주의의 틀에 따라 미니멀리즘 작품을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진 복합체 구조 위에서 형성된 문화적 공간의 한 부분으로 파악하면서 미니멀리스트의 작업을 수용하고자 시도한다. 이를 위해 크라우스는 차이를 기반으로 한, 서로 배타적인 용어의 대립을 사유의 근본적인 것으로 보는 구조주의의 ‘이항대립’ 개념을 인용한다. 그가 보기에 미니멀리스트의 작업들은 건물 위나 앞에 있는 건물  아닌 것, 풍경 속에 있는 풍경 아닌 것에 속하는,  ‘-이 아닌 것’ 이라는 대립의 부정성위에 있기 때문이다.  

크라우스는 로댕(François-Auguste-René Rodin, 1840-1917)의 <지옥문>(1917)과 <발자크상>(1939)을 기점으로 조각이 모더니즘에 들어섰다고 본다. 로댕이 의도했든 안했든 이들 작품을 설치하기로 했던 원래의 장소에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무장소정, 무거처성, 장소의 절대적 장소 즉, 물리적인 장소 특정성이 사라지는 모더니즘 시기 조각의 특징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후 브랑쿠지(Constantin Brâncuși, 1876-1957)의 작품에 이르러 받침대는 무장소성의 표지가 된다. 작품이 장소로부터 멀어지게 되면서, 모더니즘 조각은 새로운 공간을 탐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조각은 ‘-이 아닌 것’이라는 정체모를 카테고리에 도달하는데 1960년대 초 미니멀리즘의 작품들이 이를 대표한다. 조각의 이러한 변화는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온 현상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심겨진 씨앗의 결실이었다. 모더니즘의 시대, 탈모더니즘의 맹아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크라우스의 확장된 장>(Rosalind Krauss, “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 October, 30-44  Spring 1979, 38). 

크라우스에 의하면 공공미술이 아직 ‘공공장소의 미술’에 머물러있을 때인 1950년을 전후로 조각은 이상주의적 공간을 탐구함으로써 확장의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1950년 전후로 비록 한계가 있지만, 기념물로서 부정적인 조건에 놓인 모더니스트 조각이 시·공간적 재현으로부터 단절한 영역으로서 일종의 이상주의적인 공간을 탐구하여 한시적으로나마 유익한 풍부하고 새로운 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은 1950년경부터 고갈하여 조각은 점점 더 정의하기 어려운 순수한 부정성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성은 훗날 조각이 건축 속에 있는 건축 아닌 것 또는 풍경 속에 있는 풍경 아닌 것으로 장을 넓히는 씨앗이 되었다.

 
좌)Robert Morris, Installation in the Green Gallery, New York, 1964. 
우)Robert Morris, Untitled (Mirrored Boxes). 1965.

1950년을 전후로 확장의 맹아를 키웠던 조각은 1960년대 초반에 이르러 건축이 아닌 것과 풍경이 아닌 것을 결합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실례로 크라우스는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1931-2018)의 두 작품을 든다. 모리스는 1964년, 뉴욕 그린 갤러리에 회색으로 칠해진 합판으로 구성된 커다란 다면체 형태의 제품들을 전시했다. 이러한 종류의 기하학적인 조각은 수식적이거나 은유적 지시, 디테일이거나 장식품, 심지어 표면의 굴절과 같은 부차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다. 이처럼 산만해 보이는 작품은 관람자가 작품 사이를 돌아다니는 가운데 서로 관계하며 현상학적 체험을 제공한다. 이런 체험이 프리드의 말처럼 연극성의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크라우스는 이 작품이 건축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조각의 정체성을 완전히 축소시킨 유사 건축적 조각들을 배열하였다고 한다. 건축과 건축이 아닌 것,  그 사이에 조각이 자리 잡은 최초의 사례로 본 것이다.

또 하나의 작품은 야외에 설치한 거울 상자 형태의 <Untitled (Mirrored Boxes)>다. 이 작품에서 거울은 나무와 풀을 시각적으로 연장하여 구분할 수 없지만, 배경 혹은 풍경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문화의 결정물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므로 자연으로서 실제 풍경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모리스의 작품은 이처럼 풍경도, 건축도 아닌 조각의 존재론적 부재를 나타낸다. 그러나 ‘건축이 아닌 것’은 ‘풍경’의 다른 용어이고, ‘풍경이 아닌 것‘ 은 곧 ’건축‘  이라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모리스의 작품은 조각을 건축과 풍경이라는 확장된 장에 위치하게 한다. 크라우스는 ’건축과 환경이 아닌 것’이라는 부정성을 뒤집은 ‘풍경’과 ‘건축’을 묶어 복합체라고 규정하면서 두 용어를 미술의 영역에 끌어들인다. 이는 건축의 조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조각과 건축, 풍경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크라우스는 조각에서 일어난 이러한 역사적 단절 현상과 이로 인해 발생한 문화적 장의 구조적인 변화를 모더니즘 이후의 새로운 현상이라고 파악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동시대 작업을 더 이상 매체(조각)과 관련해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문화적 지칭들에 의해, 즉 구조주의적 분석에 의해 정의함으로써 미니멀리스트 작업들을 모더니즘의 단절과 동시에 역사적 과정을 잇는 과정의 결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 

한편 권미원은 ‘확장된 장’을 정확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 시기에 발생한 조각의 확장된 장이 미술의 공간을 실제의 장소로 인식되는 계기였음을 암시한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에 미니멀리즘을 따라 처음 출현했던 장소 특정적 작업들은 바로 이러한 모더니스트 패러다임의 극적인 역전을 불러왔다. […] 그 결과, 지배적인 모더니즘의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관념적 공간은 이제 자연 풍광의 물질성이나 순수하지 않은 일상적 공간으로 급진적으로 대체되었다. 미술을 위한 공간은 이제 더 이상 텅 빈 벽, 즉 타블로 라사(tabula rasa)가 아니라 실제의 장소로 인식된다.”(권미원, 2013)

로댕 이후 장소로부터 멀어진 모더니즘 조각이 미니멀리즘에 의해 다시 장소와 밀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보는 것이다. 크라우스가 ‘확장된 장’ 이론에서 제시한 장소구축물, 표시된 장소들, 자명한 구조물들, 조각으로 이루어진 구조주의적 기호사각형은 동시대 미술현상으로 정착하고 있는 미니멀리즘, 대지미술, 환경미술, 설치미술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미술을 해석하고, 이들 장르의 융합을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장된 장으로 수용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미니멀리즘의 부상과 이들이 촉발한 프리드와 논쟁, 크라우스의 확장된 장 논의는 문화적 조건의 구조적 변화, 즉 모더니즘이라는 거대한 문화가 작가의 주도성, 다양한 매체 기술의 발달, 다면화한 진리의 양상, 공간의 중요성과 같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저물어가고, 새로운 문화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여명이 밝아오는 가운데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거대한 물결 속에서 공공미술 또한 모더니즘의 틀을 벗어나 장소와 미술의 밀착, 주체의 탈중심화, 매체의 다양화와 혼합, 새 장르 공공미술이라는 변화의 길로 들어선다. 

(다음: 미술과 장소의 밀착, 장소 특정적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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