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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세상] ‘미술 장님’ 만드는 학교

오병욱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은 주 1시간이다. 그것도 고1, 고3 혹은 고2, 고3 때에는 없다. 중학교 미술시간에는 주로 만들기, 그리기 등등 실습이라도 하지만, 고등학교 미술시간은 매우 형식적이다. 내신성적에 반영되지 않으니, 과외 받을 과목이 하나라도 줄어드는 것이고, 학부모들은 이를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게 과연 환영할 일인가?

-7차 교육과정 내신서도 배제-

몇 년 전 프랑스나 미국 같은 선진국들은 미술교육을 강화했다. 이는 단지 학생들에게 창작의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미술은 작품이면서 언어이기 때문에 더 정교하고 보강된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각 국의 언어가 의사소통 수단인 것처럼, 미술언어 혹은 조형언어도 영상이미지로 조직된 언어이다. 미술작품이 소중하게 전해 내려오는 이유는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큰 중요성은 그것들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잘된 미술작품 한 점을 보고,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삶과 역사를 읽어낼 수 있다. 인류가 언어로 생각과 삶과 역사를 기록하듯이, 영상으로도 동일한 것을 기록해온 것은 영상언어는 언어보다 더 즉각적이고, 알기 쉽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각 국의 언어와 어휘와 문법이 다르듯이, 각 국의 영상언어와 도상들과 문법도 다르다. 모두가 각자의 언어를 배워야 하듯이, 영상언어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림 앞에서 눈 뜬 장님’이 될 수밖에 없다. 서양미술의 경우에도 르네상스 미술양식의 언어체계와 모더니즘 양식의 언어체계는 완전히 다르다. 원근법과 명암법을 사용하여 실제처럼 그려내면서 종교적이거나 역사적 이야기를 그려내는 르네상스 양식의 작품들과 원근법과 명암법을 완전히 배제하면서 이야기가 없는 그림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양식의 작품들을 언어체계들을 배우지 않고 읽는 방법은 없다.

선진국들의 미술교육 강화는 과연 제대로 된 미술감상만을 위한 것일까? 미술작품은 물감과 화포, 나무나 돌 혹은 쇠와 같은 물질로 만들어져 있다. 미술은 생각을 물질화하는 과정이고, 물질에서 생각을 읽어내는 과정이다. 즉 작가는 그의 메시지를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다듬은 후에 어떤 수단이 가장 적절할 것인가를 모색하고, 재능과 인내와 시행착오를 거쳐 물질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작품감상은 그 역순이다. 작품의 형과 색, 구도 등을 보고, 어떤 생각이 이렇게 되었을까를 추론하고, 결국 작가의 생각에 도달하고 공감하는 것이 작품감상이다. 한 시대의 작가는 그의 시대를 그의 시대의 영상언어를 사용하여 이야기한다. 동시대의 작품을 감상하기가 쉬운 이유이다. 시대가 달라진다면? 지역이 달라진다면? 당연히 영상언어를 읽는 방법을 따로 배워야 한다. 시대와 지역의 시공적 차이를 넘나들며, 조형언어로 쓰여 있는 생각과 삶과 역사를 읽어내는 능력,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 이외의 방법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능력, 또 물질과 정신을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미술교육의 요점인 것이다.

-있으나마나한 과목 전락-

7차 교육과정뿐 아니라 이전 교육과정의 목표에서도 창의성은 요점이었다. ‘창의성(創意性).’ 뜻을 새로이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애초의 뜻도 모르고, 문법도 모른다면, 그 무엇도 될 수가 없다. 이 점에서 우리의 미술교육은 매우 잘못되어 있다. 뭔가 새로운 것만을 그려내게 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여러 가지 재료와 기법들을 학생들에게 실습시키지만, 그것들이 소통을 위한 정교한 언어이고, 언어인 만큼 역사와 전례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생소한 모더니즘 기법들을 주로 실습하니,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고, 그러니 공허하고 있으나 없으나한 과목이 된 것이다.

이 미술과목은 어휘의 70%가 넘는 한자어를 외국어 취급하는 국어과목과 선택과목으로 전락한 국사과목과 더불어 ‘21세기의 세계화 정보화시대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 육성’이라는 7차 교육과정의 모토를 무색하게 한다. 도대체 우리는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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