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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아 / 금기의 언저리에서

이선영

금기의 언저리에서

 

이선영(미술평론가)

 


장지아의 작품은 인간 사회에 깊숙이 깔려있는 금기들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충격은 현대미술에 요구되는 조건이지만, 그가 구사하는 형식은 다소간 고풍스럽다.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고양이’라 불리는 채찍같이, 무엇에 쓰는지 알기 힘든 물건이 종종 등장한다. 작가는 현대미술관보다는 벼룩시장이나 박물관 등과 더 친숙할 듯싶다. 장지아가 활용하는 형식은 예술보다는 생활, 의례, 종교같은 오래된 관행과 더 밀접하다. 근대에 시작된 순수미술의 전통은 장지아의 관심사인 근본적 주제를 포괄하기 힘들다. 물론 작가가 형식을 소홀히 한다는 것이 아니다. 장지아는 자신이 원하는 표현을 얻기 위해 끝까지 가는 작가에 속한다. 인간이 쌓아 올린 이성의 방벽에 맺힌 생생한 피의 색을 구현하기 위해 수년간 국내외의 많은 과학자와 접촉했으며, 전시를 앞두고 피를 토할 정도로 작업했다. 




장지아, 공주는 말했다, 2004, 싱글 채널 비디오, 8분 30초



소 한 마리를 통째로 벗긴 가죽에 인두질로 드로잉 한 작품은 하루 10시간 이상 한 땀 한 땀의 작업으로 석 달 넘게 걸리기도 했다. 현대미술은 개념에 비해 수작업을 허술하게 생각하지만, 장지아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필연적 작업에 대해 자신의 온 에너지를 쏟는다. 초창기 작품에서 끝없이 가격당하는 자신의 이미지처럼, 작업은 삶의 고난이나 고통을 압축적으로 실행되는 장이다. 

장지아는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피할 수 없는 격세유전적 주제를 다룬다. 그 중 하나가 사랑이다. 2000년대 초반 작가가 남성 포로를 괴롭히는 요부로 분장한 작품부터, 2015년 짐승의 피로 직접 쓴 사랑의 시까지 일관된다. 그러나 사랑은 포근하고 따스하기보다는 낯설고 잔혹하다. 카타르시스적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잔인함과 다르다. 


작가는 초창기 작품부터 사도 매저키즘적인 관행과 그에 따르는 기이한 환상이 출몰했다. 이때 유기체의 경계는 침해된다. 이러한 침해 속에 침, 오줌, 피같은 체액이 제자리를 벗어난다. 이 오염물은 타자와 마주한 몸의 경계에서 일어난 사건의 흔적들이다. 인간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 지정해 놓은 자리나 경계, 즉 금기에 주목한다. 특히 성과 관련된 금기의 언저리에는 권력의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장지아의 작품은 성과 권력이 금기를 매개 작동하는 기제가 있으며, 작가는 노골적인 가부장제의 억압부터 은밀한 쾌락을 포괄하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의 문제의식은 약간의 비틀기로 제시한다. 가령 서서 오줌을 누는 여성의 이미지가 그렇다. 억압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뜨거운 관심사인 성을 담론화하고 권력과의 관계를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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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원형인 모성을 생각해 보라. 모성을 예찬하는 이는 받는 사람의 입장만을 고려한다. 하지만 모성은 숭고하면서도 비천하다. 무한대의 투입이 요구되는 헌신, 즉 주는 입장은 다르다. 어떤 부류에게는 모성이나 남녀 간의 사랑보다 더 지독한 사랑, 즉 예술에 대한 사랑이 있다. 장지아는 ‘죽지 않고 살아남기’같은 작업을 통해서 예술가로서 살아남기에 대한 주제로 전시를 한 적도 있다. 2014년 올해의 작가상에 출품한 작업은 그간 다양한 매체로 행했던 경계 위의 아슬아슬한 게임을 서커스같은 총체적 무대로 보여주었다. 수집과 조합으로 창안된 ‘아름다운 도구들’이 몸과 결합 또는 접속되어 작동하는 가운데, 노동요가 성가가 조합된 여성들의 합창 소리는 미묘한 분위기에 감싸여 있다. 


여성들이 탄 작품 속의 바퀴와 현대미술의 거장 뒤샹이 레디메이드로 선택한 바퀴는 얼마나 다른가. 장지아의 작품은 개념미술 보다는 뒤샹이 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여성의 자궁을 떠오르게 했던 (남성)예술가의 무의식까지 근접한다. 여성의 성기를 떠오르게 하는 바퀴 위의 의자는 피카소가 선택한 오브제인 자전거 안장과도 사뭇 다르다. 장지아의 작품은 개념이나 형식 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인간의 무의식과 그것이 머무는 몸에 가 닿고자 한다. 장지아가 그동안의 작품들을 통해 비춘 인간의 면모는 억압과 해방, 고통과 희열, 가학과 피학, 사유와 신비, 이성과 광기, 헌신과 향유, 사랑과 증오, 금기와 위반 등이 동시에 작동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출전; 2022 올해의 작가상 10주년 기념도록(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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