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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의 관념성을 넘어서려는 시도의 같으면서 다른 길’

박영택

'수묵의 관념성을 넘어서려는 시도의 같으면서 다른 길'



 1980년대 중후반 박생광의 존재는 기존 동양화단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고 그만큼 큰 반향이 있었다. 이후 황창배란 존재가 그 흐름을 이어 또 다른 지평을 열어젖히면서부터 상당히 활기찬 모색들이 줄을 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의 화단은 나름 뜨거운 분위기로 충만한 편이었다. 당시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도 한 몫 했다고 본다. 하여간 황창배의 영향은 당시 젊은 작가들에게 엄청난 자극을 주었다. 그가 몸담았던 학교의 제자들 중에서 그의 세례를 직접적으로 받아낸 이들은 박윤영, 김은진(이대), 윤영진(경희대)과 같은 제자들인 동시에 김근중, 김선형, 이만수 등의 홍대 출신의 작가들도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서울대 출신의 작가인 김호득, 강경구, 심현희 등도 기존 동양화단이 보여주는 작업과는 다른 작업을 펼쳐나갔고 중대의 서정태도 그런 자장권 안에서 돋보이는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황창배, 김호득, 강경구를 비롯해 당시 새로운 모색을 펼쳐나갔던 이들은 한결 같이 모교에서 배제되어 타 대학이나 지방대학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들이 반드시 모교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법도 없고 꼭 그래야 될 이유 또한 전혀 없지만 돌이켜보면 좋은 작가들이 한국의 중요 미술대학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동양화단, 대학의 동양화 교육 분야에서 분명 생각해볼 여지를 안겨준다. 

한편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홍대 출신의 유근택이 등장하고 이후 2000년대를 거쳐 서울대를 졸업한 젊은 손동현이 등장하면서 앞선 세대들의 작업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물꼬를 터나가고 있음을 본다. 이미 이들과 함께 90년대 중반 이후 이기영, 김정욱, 박윤영, 서은애, 박재철, 권기수, 정재호 등의 발랄한 젊은 작가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감수성과 취향, 기호를 지닌 체 등장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 현재 한국 미술시장과 화단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가 유근택이 아닐까 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쉼 없이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를 상당히 민감하고 감성적인 시선으로 응시하면서 눅눅하고 질펀하게, 빠르고 느리게 혹은 흐리고 아련하게 모필과 물감, 종이의 물성 등을 비벼내면서 회화만의 독특한 감각을 매력적으로 안겨주는 그림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뭇 감성적으로 건드리는 편이다. 그는 스승인 남천 송수남의 수묵과 모필이 지닌 전통성과 그것으로 인한 모종의 정신성의 고양이란 유산을 한 축으로 하면서도 과도한 관념성의 세계를 지향하거나 실험적인 차원에 저당 잡힌 수묵화/동양화의 한계를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그림의 차원으로 잡아 당겨 놓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이 그의 그림의 소재가 되고 있고 그 소재는 다름 아닌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고 자신의 몸을 둘러싼 환경이고 응시의 대상이자 느닷없이 그 무언가를 건드려주는 장소들이다. 동시에 시간이 덧없이 흐르고 이내 사라져버리기를 반복하는 현기증 나는 세계이며 순간순간 변화를 거듭하는 그래서 좀처럼 고정시킬 수 없는, 눈과 마음을 문지르고 사라져버리는 자취들이다. 작가는 ‘그것’을 현상학적으로 추적한다. 결국 유근택의 그림은 자신의 몸이 반응한 세게, 공간과의 접촉의 결과물이고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시각화, 물질화하느냐 하는 가장 본질적이라고 할까, 아니면 가장 근원적인 회화의 문제에 천착하는 작가로 보인다. 몸으로부터 출발하는 이런 동양화는 어떠면 매우 구체적이고 유물론적이고 현상학적인 체험에 근거한다. 그것은 다분히 의도된 차원에서 기성세대의 관념적인 동양화인식에 대항하는 제스처로 보인다. 

이번 갤러리현대에서 <어떤 산책>이란 제목으로 열린 전시에는 한지에 수묵채색으로 도서관과 방(모기장), 창문과 분수, 그리고 숲 속을 산책하는 남자와 목욕하는 남자를 그린 그림을 선보였다. 꽤 오랫동안 이 소재는 불변한다. 이전 작에 비해 형태는 모호해지고 추상화되어가며 종이와 물감은 구분 없이 뒤섞여 격렬한 상처처럼 들러붙어 있으며 좀 더 잘게 쪼개진 점, 터치들로 자욱한 화면을 안겨준다. 그로인해 표면이 발생시키는 감각이 이전과 좀 생소하다. 이전부터 느낀 점이지만 그의 그림은 베이컨, 호크니,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임동식 등의 영향이랄까,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동시에 가볍고 투명하고 얇을 수밖에 없는 기존 동양화 표면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는 질감처리와 함께 붓놀림의 변화로 인해 가능하다. 종이와 호분, 먹 등의 재료들이 교차하면서 나타나는 화면의 떨림, 흐림, 지워짐 그리고 호분과 먹의 층위를 조절해서 축적시킨 화면이 발생시키는 묘한 심리적 동요나 정서의 긴장감 등이 그것이다. 특히 근작에는 호분, 템페라, 철솔 등을 이용해 두드러진 질감과 그로인한 촉각적 화면을 구사하고자 했단다. 물론 여전히 먹이 지닌 정신성 또한 놓치지 않고(이는 여전히 먹에 부여한 정신성이란 남천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의식적으로 방증한다) 아울러 시간과 공간을 그림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욕구도 지속되고 있다. 하여간 이 그림은 유근택의 숙련된 기량, 감성의 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그는 매순간 자기 몸의 감각, 온갖 생각들이 뒤섞이는 체험, 그 느낌을 제대로 그림으로 끌어내려고 하고 있고 종이/화면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한편 기존의 그리기의 방식을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접근하고자 지속해서 고민하고 있음을 근작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물성 자체에 보다 기울어져 있고 시간을 쌓아나가는 작업이자 공간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기묘한 층차나 사건들을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의 모색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회의적이다. OCI (2014년)전시는 긴장감이 무척 떨어진 전시여서 실망스러웠는데 근작 역시 이전 작에 비해 감흥이 덜했다. 나로서는 2009년 사비나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시가 가장 좋았다. 자신을 둘러싼 일상, 현실을 대하는 자기 몸의 감각과 반응의 시각화란 설정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도식적으로 자리 잡고 특정한 효과 안에서 그림의 기교적 측면에서 반복적으로 맴돌 때, 그리고 그것이 기존 동양화 재료와 효과의 새로운 측면이란 점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는 상당히 회화/동양화의 문제를 좁혀 놓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다. 관습화된 몸의 관성이 경화되어 고착되는 감각의 시각화!


 손동현이 근작은 그의 이전의 작업들과는 달리 수묵만을 전면적으로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들이 전통적인 동양화론에서 논하는 필법과 그 방법론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낯설었다. 왜냐하면 그의 초기작은 기존 동양화 작업과 무척 이질적인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시대 초상화기법의 원용 문자도의 차용과 서화동원에 따른 제발의 개입, 인물의 영문 이름을 음차해서 표제로 삼는 등의 한문의 음차작업 등은 그가 여전히 동양화 전통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특히 그는 스승 일랑 이종상의 초상화 제작에 깊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실존 인물 대신(물론 일랑이 그린 선조들의 초상 역시 허구의 얼굴이긴 하지만) 대중매체의 주인공들을 차용했고 채색으로 그려졌다. 형식은 동양화로 가되 인물은 우리 시대 인물로 간다는 선언이었다고 본다. 

반면 근작은 동아시아 회화에서 다뤄줬던 중요한 주제나 화법, 회화의 요소나 재료의 물성을 기반으로 작가에 의해 창조된 가상의 협객들의 초상으로 채워졌다. 전시 제목은 ‘JASMINE DRAGON PHOENIX PEARL’이다. 이 작업 역시 이전 작업과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된다. 다만 근작은 동양화의 전통에 보다 더 근접해서 그것을 질문하고 모색하는 작업에 해당한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수묵화를 혼자 익혀왔었다고 한다. ‘배투만선생상’ 같은 그림을 그릴 때부터 틈틈이 수묵작업을 해왔는데 알다시피 이 수묵화란 것이 오랜 시간과 내공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쉽사리 선을 보일만하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알다시피 최근 젊은 동양화 전공자들, 작가들이 작업에는 먹이 사라지고 당연히 필선이 사라지고 마치 색채놀이 책처럼 공들여, 무념무상으로 채색하는 작업들로 채워져 있다는 인상이다. 먹을 다룰 줄 모르고 모필을 세울 수 없고 먹의 다채롭고 깊은 맛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없기에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다. 손동현의 근작에서 먹만이 단독으로 쓰였고 또한 그 먹/붓을 쓰는 다채로운 방법론의 여러 변주들의 활용을 전통적인 동양화론에 입각해서 구사하고 있음이 재미있다. 여전히 손동현 다운 재치나 상상력이랄까, 발랄함이 감촉된다. 그러나 재미있는 발상과 독특한 그림이지만 먹과 필을 다루는데 있어서 그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지, 그의 의도대로 펼쳐졌는지는 의문이다. 먹 작업이 그만큼 어렵고 까다롭다는 점이다.   

근작에서 작가는 흘러내리고 퍼지고 번지는 먹이라는 매체의 물성을 받아들여 이를 하나의 인물로 간주하고 그려냈다고 한다. 동양화의 여러 요소들을 거지고 인물의 성격이나 특징, 나아가 그가 가진 무공 혹은 이능력으로 간주하여 하나의 인물 안에서 적극적인 실험을 시도하고자 했단다. 예를 들어 파도나 계곡물이 부딪히는 등 물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그려진 <흑색의 물소인간>, <새우인간> 등은 리커란과 치바이스의 기법을 응용해 낸, 그들의 작업을  염두에 둔 작업이라고 한다. 한편 인물화의 양식을 빌려 산수화의 표현기법과 도구의 전환을 시각화한 작업, 그러니까 산수화를 그릴 때 산과 돌의 입체감이나 양감, 질감, 명암 등을 나타내기 위해 표면을 처리할 때 사용되는 준법들을 인물화의 형태로 바꾼 작업들이 있다. 여기서는 준법의 영문명을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선으로만 묘사하거나 먹을 깨뜨려 농담을 조절하여 그리는 파묵법과 물을 많이 섞어 윤곽선 없이 그리는 발묵법, 탁본기법 등을 다채롭게 동원해서 그리고 있다. 그에게 먹은 회화사뿐만 아니라 문화사 전반에 걸쳐서 동아시아인의 사고와 상상을 문자화/시각화해온 중심적인 매체라고 인식되고 있고 따라서 여전히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지만 먹이라는 특정 매체에만 형이상학적 가치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태도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이는 유근택의 경우와도 일치한다. 90년대 이후 젊은 동양화가들의 등장은 바로 이러한 공유성속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전통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는 없었다. 대신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재료를 다루는 방법론이었다. 그에 따라 먹의 여러 쓰임과 활용을 통한 형식실험이 두루 사용되는 한편 그러한 시도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손동현의 근작에는 이전 작업과 유사하게 먹(근작에서는 단독으로 쓰이고 있지만), 모필이 주가 되고 여전히 문자와 그림과의 관계성도 지속되고 있고 영문으로 쓰여진 사인과 제발 및 이탤릭체 D 낙관, 그리고 획에 대한 탐구 등이 눈에 띈다. 그것들을 보면서 박윤영의 픽토그램으로 그려진/쓰여진 제발이 떠올랐다. 

손동현은 동아시아의 수묵화가 지닌 이상화된 개념을 대중문화의 어법을 활용해 새로운 캐릭터로 가시화 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유근택의 작업과 공유되면서도 사실은 또한 갈라지는 지점이다. 유근택은 전통적인 동양화 재료를 통해 신체와 세계의 접촉점을,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여러 감정과 느낌을 포착하려는 지난한 시도를 감행하면서 동양화가 이렇게 풍부한 회화성으로 환생할 수 있음을 자부심 있게 표명하고 있다면 손동현은 새삼 동양화론의 고전을 원용해, 그러니까 ‘육법’이라는 전통적 화제에 관한 작가의 해석을 시도하고 있고 이 육법을 인물화라는 형식 안에서 자유롭게 유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실체 없는 그 이론을 구체적인, 눈에 보이는, 그것도 누구나 익히 아는 대중매체의 도상들을 빌려 그려내면서 다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 여겨지는 동양화/동양화론을 현실계로 끌어내린다. 동시에 그림 속 주인공들은 협격들이자 무협지나 만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로 보아지 않는 요소들, 관념적으로만 이해할 수밖에 없는 육법을 좀 더 실감나게 상상해주면서 동양화 전통을 동시대 대중문화나 감수성의 틀 안에서 녹여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충분히 효과적이려면 먹/모필의 구사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높은 어떤 수준이 요구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전통족인 화제에 도전..수묵화적인 수묵화를 그리겠다...수묵화의 여러 요소들을 인물화라는 틀 란에서 갖고 놀아보게 된 것, 문인화적 화제들, 글/그림의 관계, 문인화의 정신을 드러내는 캐릭터로 일종의 무인을 등장시킴...인체와 의복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그리기 위해서 포즈나 여타 효과들로 화면 내의 공간을 좀더 확보할 수도 있다.

평생 무공을 닦는 수행자의 모습과 작가의 모습이 공유하는 측면, 장인과도 같은 작가상에 대한 호의, 형상이 없는 존재를 새로운 캐릭터로 만드는 과정, 만화적 세계, 수묵 작업은 좀 더 유연하게, 조금은 즉흥적으로 접근

인물의 모습이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구성되고, 그의 무공을 보여주기에 효과적인 표현을 사용

기존 대중매체의 캐릭터에서 참고(인물에 관해 상상한 능력과 의상, 머리 모양 등) 디테일한 부분은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거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 경우...

레퍼런스들의 출처나 그 의미보다는 그것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모습이 흥미. 이름의 이니셜D를 고딕으로 새긴 것, 문자도를 인물화 안으로 끌어들임. 초기작은 

전통은 여전히 그에게 “참조하고 유희할 요소가 가득한 보물창고” 같다고 생각

전통의 어떤 지점이나 요소를 그 자체로 유용한 도구로 여긴다. 매우 시대착오적이거나 고색창연한 매체와 기법이나 화론이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을 것,..

인류 역사상 가장 여러 번 재현된 인물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보고 싶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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