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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 안에 펼쳐지는 이질적인 시간, 복합적인 공간, 촉각적 경험

박영택

평면 안에 펼쳐지는 이질적인 시간, 복합적인 공간, 촉각적 경험



이안 리(이석조)는 캔버스에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아크릴(혹은 먹) 물감을 긋고, 밀고 문질러 낸 다양한 흔적, 양상을 보여준다. 직관적이고 즉흥적이며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이다. 납작한 사각의 평면 안으로 들어간 자신의 실존적 신체가 특정한 시간 동안의 경험을 고스란히 응고 시킨 결과물이 그림이 되었다. 특정한 조형적 성과보다는 작가의 자유로운 정신의 정립이 우선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편 이 화면은 재현의 여러 요소로 분화하기 이전의 일체성을 보여준다. 또한 화면의 흔적들은 무언가를 재현하는 형상이기 이전에 그것을 남긴 사람의 현존을 가리키는 일종의 지표Index가 되었다. 이 지표는 그림 그리는 작가의 순간적인 동작, 신체의 흐름, 손가락과 손바닥, 팔뚝 등으로 물감을 문지르고 나간 궤적만을 지시할 뿐 다른 어떤 것도 재현하지 않는 순수한 행위의 결과, 흔적만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존재의 물리적 현존만을 가리킬 뿐 그 어떤 의미작용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추상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바탕 위를 부유하는 이 유동적인 물감의 자취들은 다분히 역동적이고 유기적인 성질과 변화무쌍한 생명력을 떠올려주면서 그것들이 자연에 대한 은유적인 이미지라는 느낌도 들고 동시에 순간순간 자신의 감정과 기억에 몸을 만들어 주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생성, 성장과 같은 자연의 순환 과정을 나타내는 것과도 유사한 또는 사라져 버린, 흘러가버리고 미끄러져버린 지난 시간의 감정이나 추억과도 같은 모호한 유기적 형태들은 방향을 달리하며 떠돌아다니고 색상의 차이를 발생시키면서 미끄러진다. 납작한 평면 위에서 꿈틀대는 이 생명체들은 마치 작가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의 기록과도 같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연적으로 생겨난 이미지이자 흔적들이다. 물감을 문질러서 생겨난 불가피한 흔적이고 그것에 의해 연속적으로 발생한 또 다른 이미지들이다. 화폭을 신체를 이용해 문질러 그린다는 것은 캔버스의 존재론적 조건인 평면성을 보다 확실하게 입증하거나 인식하는 방법인 동시에 관념성과 추상성을 떠나 보다 생생하고 구체적인 제작의 개입을 실존적인 차원에서 방증하는 것으로도 비친다. 하여간 이 그림은 추상적인 자취인 동시에 모호한 존재성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구상과 추상사이에, 물감의 질료와 행위 사이에 피어난 독특한 자취로 자욱하다. 그러니 이 이미지들은 고정된 사각형의 평면 위를 마치 숨 쉬는 생명체들처럼 (어항 속의 물고기들처럼, 혹은 봄날에 휘날리는 꽃잎처럼) 역동성을 지니며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듯하다. 납작한 부동의 화면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껴안으면서도 활력적인 움직임을 부여하고 구체적인 대상의 재현에서 빠져나가면서도 그 무엇인가를 강하게 연상시켜주는, 새로운 추상회화인 셈이다. 아울러 사각형의 틀 안에서, 그 틀의 조건 안에서 그림의 내용들이 자연스레 규정되고 있다. 더불어 그 형태들은 무한한 변주를 흥미롭게 안겨준다. 그것들은 대체로 많은 것을 암시하지만 그 어떤 것과도 동일시될 수 없는 모호한 형태, 질료의 흔적, 작가의 제스처이다.

 

끈적거리는 점성의 물질이 함께 해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몰려다니는 선/덩어리의 흐름,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물감의 흔적들만을 멈춰놓은 것이 이안 리의 회화다. 그것은 매우 운율적이고 격렬한 동세를 지닌다. 신속하고 절도 있게 물감을 밀고 나간 압력에 의해 색층이 달리 만들어지고 그 결이 동일한 부위에 몇 가지 다른 화면을 발생시킨다. 동시에 서체의 획이나 삐침, 소리의 꺾임 같은 분절이 이질적인 몇 개의 공간, 풍경을 만들어준다. 순간 평면 안에 복합적인 공간, 새로운 시간이 발생된다. 촉각적 경험이 유발되는 때이기도 하다.

 

이전 작업이 대체로 종이 위를 손가락으로 밀고 나가는 드로잉이 주를 이루었다면 근작은 캔버스 작업에 다채로운 색이 동원되고 모종의 형태에 대한 욕구가 두드러지게 감지된다. 그러나 그 형상은 구체적으로 외부세계를 지시하는 재현물이 아니라 꿈틀대고 움직이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무정형의 형상을 연상시킨다. 모종의 덩어리들이고 그 덩어리들이 연속적으로 배열, 증식되거나 불연속적으로 파생된다. 어쩌면 그 형상은 그림 그리는 순간 떠오르는 여러 감정, 기억이자 동시에 자신의 DNA에 깃든 모든 것의 총체적 외화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이인 리의 물감의 흔적은 구체적인 형상을 좌절시키고 특정한 이미지의 연상을 차단한다. 선과 색의 구별도 의미가 없다. 작가의 선은 색이자 빛이고 움직임이며 신체다. 덩어리이고 형체이기도 하며 추상이면서도 동시에 모종의 암시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가득하다.

 

작가는 말하기를 어린 시절 전시 도록을 갖고 놀았던 추억, 사찰 현판 서체의 획들, 타들어가면서 사라지는 향의 연기, 한옥의 기둥에 걸린 주련의 서각을 보았던 기억이 불현 듯 그림 그리는 과정에서 살아나고 있단다. 동시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의 경험과 기억의 단면을 날카롭게 잘라낼 수 있다면, 낸다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표현이라고 한다. 얼핏 나는 분방한 초서, 혁필화의 흔적이나 지두화, 또는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생명체나 물고기 떼의 이동, 식물의 생장력, 혹은 세포의 분열이나 증식 같은 장면도 상상된다. 모든 이미지는 생각거리를 안겨주고 보는 이에게 기시감을 던져준다. 외형적으로는 추상화로 보이는 선, 모호한 흔적들이지만 동시에 앞서 언급한 작가의 기억 속에 간직된 생의 기억, 자신의 DNA에 속한 그 모든 것을 화면에 쓰라리게 문질러 실체화시키는 구체적인 회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매우 자학적으로 다가오는 이 회화는 결국 표면으로만 존재하는 세계라는 한계 속에서 어떻게 심층적인 내용을 밀어 넣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차원에서 나온 방법론으로도 보인다. 피부 안 저 깊숙한 것에 자리한 것들을 평면 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는 회화의 운명 안에서 작가는 신체와 지면의 적극적인, 치열한 만남을 시도한다. 그리고 화면을 마주대하는 순간 직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물감으로 모종의 기운을 이미지화한다. 온 몸으로 그려나간, 마치 내면에 자리한 그 무엇을 바깥으로 토 해내듯이 그려내고자 한다. 자신에게 내재한 모든 기억들, 지금까지 살아온 생의 경험과 감정 등을 화면 위에 자신의 신체로 문질러 압화해 내고 있다. 타들어가는 살갗의 상처로 인해 비로소 가시화하고 있는 이 그림은 물질적 신체로 이루어진 회화인 동시에 퍼포먼스이고 신체 안에 깃든 무수한 의미망을 불가피하게 노출시키는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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