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서울아트가이드 디.에디션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일상의 예술: 오브제-영적인 질감행위’

박영택

일상의 예술: 오브제-영적인 질감행위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작가란 존재는 기존에 존재하는 물질에 혼을 불어넣어 그것을 이상한 존재로 탈바꿈시키거나 환생시키는 이들이다. 이른바 마술가요 연금술사에 해당한다. 그들의 응시와 손길에 의해 특별히 주목받지도 못하는 형태로 존재하던 사물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 현재의 시간위로 호명되어 이른바 기억의 화석이 된 것이다. 그 화석은 단지 지난날의 시간과 추억을 응고하고 닫힌 형태로 마냥 어두운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시절을 현재의 시간위로 방사하고 환하게 밝혀주면서 지속해서 살아나고 있는 그 무엇이 된다. 이른바 의미심장한 그 무엇이 된다. 작가들에게는 인간들이 쓰고 버린 물건들이 환기시키는 기억의 요소가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다. 인간의 손길, 시간의 자취, 사라져 버린 것들이 머문 자리는 부재와 공백이지만 그것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이 된다. 그래서 우연히 발견한 사물, 오브제들은 생명의 얼룩들로 다가온다. 그것들은 망각의 세월, 시간의 강 속에서 건져 올린 일련의 기호들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죽음, 부재, 소멸에 대한 애도의 감정도 묻어 있을 것이다. 하여간 그 오브제들은 모호한 텍스트이자 애매한 형상들, 기이한 질감을 동반한 낯선 존재들이다. 이때 기억 행위를 보다 완전하게 하는 것은 기억의 내용이 아니라 이미지의 강렬함이다. 이미지와 느낌의 구체성을 전달하는 데는 서술적인 표현보다는 시적 표현이 훨씬 효과적이다. 오브제는 그 자체로 시적인 사물이고 강렬한 이미지로 응고되어 있다. 정적인 사물, 예를 들어 일상에서 수습한 온갖 기호학적 파편들에서 생명의 기미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오브제를 다루는 작가들의 작업의 출발일 것이다. 이럴 경우 모든 것은 의미심장한 사건이 된다. 사건은 아무리 사소하고 평범한 것이라 해도 작가들 자신을 이른바 선지자로 만든다. 작가들은 자연이, 사물이 우리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그 소리에 신중하게 귀 기울인다. 그것은 매우 긴장된 모종의 순간이고 그것이 이들 작업의 스타일을 만든다. ‘스타일이란 이미지의 살아있는 운동이자 외부를 향한 언어적 긴장을 뜻한다. 이 긴장은 어떤 의미, 어떤 형식의 전달보다는 바로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가’(현재화)에 집중하는 문제일 것이다.

 

오늘날 미술은 미술이란 것이 특정한 재료와 전문적인 작가들의 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일상의 사물들 모두가 훌륭한 미술적 재료임과 동시에 누구나 그런 작업을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부여해왔다. 오브제를 다루는 작가들의 공통점은 주변의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세속의 물건들, 사물들에 과도한 애착과 편집증적 탐닉을 보이기도 하고 이를 가지고 노는 유희에 충만한가 하면 현실에의 집착과 세속성에 대한 퇴행적인 애정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병리적인 현상도 보이고 동시에 낯설고 기이한 것에 대한 매료,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 대한 의미부여, 사소한 장난, 교란, 간섭 등의 방법론들이 겹쳐있다. 이는 아마도 번식하는 무수한 사물들의 범람 속에서 살아가며 파생된 물건들과의 친숙한 삶, 일상화 삶의 체험과 감정이 이를 가능하게 한 것 같다. 그러니까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풍요로운 물건들의 벼락같은 축복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욕망하고 갈망해야 하는 조바심 속에서 죽어 가는 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사물들의 도움 없이는, 물건 없이는 살수가 없다. 작가들의 상상력은 이제 자연이 아니라 사물, 물건에 있다.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주변의 물건들을 조합하고 변형하면서 무엇인가를 꿈꾸고 욕망한다. 놀이한다. 그것이 오늘날 미술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검출되는 징후들이다. 새삼스럽지 않다는 얘기다. 사실 이처럼 일상의 사물들을 미술적 재료로 끌어들여 쓴 경우는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오브제와 일상성은 어쩌면 현대미술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테마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일상의 소소한 사물들을 수집하고 이를 관찰, 응시하는데서 우선하고 있다.

 

수집은 실천적인 상기의 한 형식이며 가까이 있는 것의 온갖 세속적인 현현 중에서 가장 구속력이 강한 현현이다. 사물들이 그를 불시에 습격한다. 근본적으로 수집가는 한 조각 꿈속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을 생생하게 현전시키는 진정한 방법은 그것들을 우리의 공간 안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수집가가 바로 그렇게 한다. 세계의 축도를 배치하는 것, 어떤 물건을 전유하는 것은 곧 그것을 자기 이외의 다른 모든 인간에게는 신성시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그것이 자신에게만 관여하도록만드는 것이다.” (N.구테르만)

 

서구에서는 18세기 계몽주의의 만개와 더불어 린네와 뷔퐁의 분류법이 등장하면서 수집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난다. 수집이 규모 제일주의를 포기하고 일정한 체계에 따라 분류하고 구성하는 과학적 면모를 갖추자 분류의 구성을 전담하고 진열실을 관리하는 작업도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큐레이터의 기원이라 하겠다. 19세기 유럽의 민족국가와 함께 태동된 뮤지엄은 이른바 민족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에서 유물 약탈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이후 상품대량생산이 본 궤도에 오른 20세기는 수집이 너나 할 것 없이 즐기는 일반인의 취미가 되었다. 수집을 통해 개인의 역사나 상흔 혹은 취향을 표현하는 이른바 수집의 개인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급속한 삶의 변화와 새로운 상품의 등장은 비로소 지난 시간대의 사물들에 대한 일종의 회고와 추억의 감정을 거느리고 상실되거나 급속히 폐기된 것들에 대한 소멸의 감각을 잉태하면서 그것과 자신의 관계를 사유하게 한다. 너무 이른 사물의 죽음과 너무 빨리 도래하는 것들 간의 사이에서 시간, 속도, 그리고 취미와 취향, 기호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결국 수집가들은 모두 죽음과 소멸의 공포와 싸운다. 망각되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자 내면에 잠복한 열망과 공허함을 건드린다. 사물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문명의 변화와 그 역사의 이정표 같은 구실도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 도구의 표정과 기능 깊숙이 어떤 시대정신을 품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음미하는 눈들이, 그 사물을 편애하는 손들이 사물을 수집한다. 작고 사소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사물을 통해서 어떤 거대 담론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역사와 생활의 핵심을 통찰하고 부재한 시공간의 아우라를 안스럽게 봉인하고자 한다. 수집가들은 사라지는 것들에 유난히 민감한 이들이자 덧없는 생의 잔해를 헤집는 이들이다. 그래서 수집가는 평범한 일상의 사물에서 기억이나 공감, 애정을 담는 이들이다. 그를 사로잡는 것은 정신적인 위로, 즐거움, 기록의 사명감과 자부심 같은 정서이자 학구적 열정 등이다. 동시에 자신이 취향과 기호, 감각을 보다 견고하게 하거나 이를 응고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수집가는 촉각적인 본능을 가진 사람이다.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치 못하고 자신의 몸으로, 손으로 어루만지고 애무를 통해 그 존재아의 일체감을 부단히 꿈꾸는 이들이다. 한편 수집된 사물은 한 개인을 전적으로 대변하고 시각화한다. 그는 사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그 사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그래서 사물이 이제 한 개인의 서사를 대신 써나간다. 자신의 서사를 기록하고 봉인하는 일이 사물의 수집이자 그 사물을 애용하고 이를 자기 몸과 결부시키는 일은 자신을 또 다른 존재로 밀로 나가는 일이 된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사람들은 수많은 사물들을 수집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삶에서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사물과 또한 그 기능적인 연관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전적으로 자신이 남과 다른 취향이나 감수성의 소유자임을 가시화하거나 자신의 안목과 감각을 증거 하기 위해 색다른 사물들을 편집증적으로 수집하기도 한다. 오늘날 오브제를 다루는 작가들은 대표적인 수집가들이고 그 수집이 자연스레 작업으로 연결되고 있는 경우다.

 

작가들은 일상의 사물들을 수집하고 이를 오랜 시간 매만지며 다른 것들과 혼합시켜서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만들어놓는다. 자연환경에서 직접 추출하거나 파생된 재료들 내지 인공의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들에서 문득 새롭게 발견되어진 것들이 선택되면 작가들은 그것을 가공하거나 변형된 오브제와 합성재료와 결합시켜 정련된 형태로 만들어 낸다. 그것들은 자연에서 상기되는 내면정서의 흔적들을 함축한 단편들로 지각된다. 그 형태와 질감, 색상 등을 감상하다보면 문득 그로부터 연상되는 형상을 만나고 그 형상이 끌고 들어오는 한국의 전통 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처럼 작가들은 사소한 일상의 사물들을 이용한 작품들을 통해 문명의 그늘 아래서 잊혀지거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복합적으로 자극하는 이 오브제들은 아마도 작가 스스로를 치유하고 다독거리던 추억의 매개들이고 상실되고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애도의 감정에서 풀려나온 것 같다.

한국 현대미술가들 중에는 손꼽히는 고미술수집가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본인들의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경우다. 도상봉, 김환기, 김영학, 권옥연, 김종학, 변종하, 이우환, 박대성 등은 알아주는 골동수집가이자 뛰어난 감식안을 지닌 작가들이다. 자연스레 이들은 자신의 수집품을 통해 미의식과 조형감각을 배웠을 것이고 그것이 자신의 작품 안으로 자연스레 수렴되었을 것이다. 공들여 수집한옛 물건들을 통해 미와 조형의 의미와 격을 깨달은 김환기와 김종학은 한결 같이 소박하고 심플하기 그지없는 목 가구, 백자 그리고 자연스러움과 해학미가 넘치는 다양한 공예품들에서 아름다움의 비밀을 알아차린 이들이다. 그리고 이를 적절하게 가공해 자신의 개성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이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소박미를 한국미의 원형으로 보았고 따라서 대부분의 한국 작가들은 물질을 생명체로 다루고자 한다. 이 물활론적이며 자연을 영성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태도는 여전히 한국 미술의 독특하고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김종학은 목기를 비롯하여 자수, 석상 등을 수집하는 그의 빼어난 안목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골동품에 대한 애정과 그로부터 받은 영감은 그의 작업 속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소화하여 표현한 질박하면서도 화려하고, 엉성한 듯 하면서도 섬세한 작품들로부터 작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그 결과 서툰 듯, 혹은 과장된 한 그의 표현방식은 오히려 좀 더 자유롭게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림 보는 즐거움을 안긴다. 그가 우리 전통미술로부터 깨달아 추구하는 것은 결국 기운생동의 세계이자, 신명(神明)의 세계이다. 언젠가 그는 자연을 열심히 보지 않는 작가는 좋은 작가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고미술이 지닌 조형의 비밀을 아는 자만이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가 평생 수집한 것들은 모두 옛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다. 선비들의 사랑방, 아녀자들의 규방, 그리고 농부들이 노동 현장에서 사용하던 것들이다. 우리 조상들의 생활공간을 치장해주던 소박한 도구들이자 일상에서 쓰이든 연장이자 우리의 체취에 친밀하게 직접 와 닿는 것이다. 또한 그것들은 기억이 간직된 형태의 생명물질이다. 너무나도 자연에 가깝고 또 단순한 오브제이기에는 소박하고 투박하면서도 우리로 하여금 그 어떤 원초적인 삶을 일깨워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나 이름 없는 한 농부가 자신의 필요성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든 연장이나 도구들은 고스란히 한국인의 전통문화 속에 간직된 사물관, 자연관을 드러낸다. 그러한 우리 조상들의 미감과 재료에 대한 태도는 한국 현대 미술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한국 미술가들은 재료에 대한 인위적인 가공과 기교를 극도로 제한하고 물질 그 자체가 자연스럽게 스스로 형성된 삶을 드러내고자 하는 특징이 있다. 특정 물질에 일련의 행위를 가함으로써 작가와 사물과의 관계를 시각적인 차원에서 인식하게 하는 일이 작업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모종의 이미지를 구현하거나 무엇을 표현하기 보다는 물질 그 자체를 최대한 활성화시키려 한다는 공유성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작가들의 오브제 작업에는 서양(현대)미술의 논리적 사고와 실험정신에 동양적 감각과 감수성이 절묘하게 조화되고 있다. 이들의 세계관은 모든 물체에는 생명이 있으며 고로 생물과 무생물, 정신과 물질사이에는 구분이 없다는 동양철학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하며 그들과 관련된 우리의 경험과 기억을 조용히 환기시키는 편이다. 그 점이 바로 오브제를 다루는 한국 작가들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의 과거 기억들이 현재의 기억과 의지에 의해 끊임없이 당사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된다고 한다. 작가들의 오브제 작업은 철저히 자신의 몸과 정서적인 배경에서 비롯되는 기억의 범주 안에서 오브제를 매만져서 모종의 작품으로 만들어 낸다. 그것은 그들의 기억 속에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정서적인 침전물에 의해 형성되었다. 무의식을 자극하는 촉매로서 정서적인 언어의 상징화이고 또한 문화가 쌓여 가는 방향을 지시해주는 예술적 이정표이자 그들 무의식에 쌓여 있는 과거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의 통일적인 전체로 이끌어 주는 미학적인 장치가 되었다. 그것이 오브제다. 그것들은 단순화 되고 고립되어 있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다른 의미를 갖는 그들 자신의 기억을 추구하게끔 유도하는 추상적인 요소들이 된다. 그 오브제들의 표면은 시각성이 대단히 높아 촉각성을 자극하고 몸의 일부인 눈을 긴장시킨다. 반드시 육체를 매개로 한 감각적 물질 행위를 통해서만 제작이 이뤄진다는 사실에서 그것은 성애적 속성을 강하게 간직하고 있다. 관조 혹은 명상적인 물질 행위와 성애적 속성은 서로에게 강렬하게 접혀져 있다. 성애적 속성은 우리의 삶과 미술에 쌓여져 온 온갖 물신들 즉 미신과 환상에 의거한 온갖 분리의 산물들에 근본적으로 저항하는 힘을 지닌다. 이 힘은 다분히 '영적'인 편이다. 뭐랄까, '영적인 질감 행위'라고나 할까?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