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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야콥 아감, 이주영의 오르피즘

김종근

한국의 야콥 아감, 이주영의 오르피즘

김종근 (미술평론가)

“나뭇잎들이 가볍게 흔들리는 바람소리 산새와 풀벌레들의 한가로운 울음. 나는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생명의 소리와 대자연의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오묘하게 조화된 아름다운 선율에 매혹당하고 어떤 음악의 리듬도 사랑하고 있다. 이 모든 소리의 울림을 어떻게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1983년 작가 이주영은 이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을, 울림을 어떻게 조형적으로 시각화 할 수 있을까 고뇌했다. 어떻게 그 자신에게 만이라도 공감 시킬 수 있을까? 를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작가노트에서 밝히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1910년경 독일에서 이와 똑 같은 생각을 했던 화가가 있었다. “ 왜 미술은 음악 같을 수 없는가?, 라고 물음을 제기 했던 사람이 바로 뜨거운 추상미술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였다.
그는 미술이 대상의 재현을 벗어나면 훨씬 더 재미있지 않을까?. 미술의 색채와 형태를 음악의 악보처럼 쓸 수는 없을까?. 그리하여 대상으로부터 해방시킬 수는 없을까?. 미술도 음악처럼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는 없을까? 골몰 했다.
물론 시간차가 있지만 이 동서양의 예술가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던지는 이러한 물음을 우리는 예술가의 취미와 근본적인 욕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주영은 그의 작품 속에 소리의 다양한 감정을 화폭에 옮기기를 끊임없이 시도 했다.
1978년 첫 개인전에서 발표한 <소리 1> 이라는 대작 속에는 추상화가 하인두가 지적 한 것처럼 ”꿈틀거리는 형상“과 곡선으로 뜨거움이 충만한 율동감이 가득한 음악성이 충만하다. 그러나 그의 자연의 소리와 음악과 선률의 조율은  그 이전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개인전에서 그는 자연의 소리가 소용돌이 파장을 통해 나타나는 다양한 움직임을 화폭에서 보여주었다. 실제 탁월한 성악가의 버금가는 노래실력을 지닌 그는 이후 <합주> 시리즈의 회화에서도 일관되게 회화 속에 절대적인 음악성을 부여한다. 
마치 1911년 뮌헨에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가 음악에 감동하여 칸딘스키가  <즉흥 III-음악회>라는 작품을 제작 한 것과 유사하다.
이주영은 자신의 작품이 순전히 추상적이면서, 듣기 좋은 울림이 있는 악보처럼 철저히 화폭에서 보이길 희망했다. 
칸딘스키가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색은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힘이다. 색은 건반, 눈은 현을 때리는 해머, 영혼은 여러 개의 현이 달린 피아노다. 예술가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이다. 그들은 건반을 눌러 영혼을 전율케 한다,“고 한 작업태도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이주영 작품의 흐름은 초기 회화의 음악성을 지키면서 1979년 두 번째 개인전인 파리의 유명한 마담 리아의 <그랑비아> 갤러리에서 더욱 그 회화에서의 음악성을 정착하고 극대화 시킨다. 
이미 1912년 시인 아폴리네르가 칸딘스키, 들로네, 클레 등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추상미술을 개척한 화가들의 운동을 그리스 신화 속의 음유시인이자 음악가인 오르페우스(Orpheus)에서 따서 ‘오르피즘(Orphism)’이라고 명명한 화풍에 이주영은 탐닉 한 듯 보인다.
소리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은 이렇게 소리의 파장이나 물결을 표현하기에 이르렀고 재료도 캔버스에서 작업이 용이한 종이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후에는 화폭에 그림을 그린 후 그것을 5미리 7미리 10미리로 아주 짧게 잘라 화폭에 다시 순열 조합하는 패턴으로 정교한 작품들을 질서 있게 그리고 독창적으로 완성했다. 
1992년 LA의 LACA 갤러리의 작품들은 이러한 세계를 정리하고 결집시킨 작품들이다. 
조합의 기법에 따라 다양한 색채들이 만들어내는 이 변화무쌍한 색채의 착시와 축제를 그는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처럼 드러냈다고 만족 할 만큼 그의 작업은 분명 풍부한 독창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의 작품은 훨씬 감각적이고 조형적으로 구성되면서, 선명한 색채의 대비와 원 형태들이 등장하면서 율동적인 화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소리를 시각적인 조형으로 승화시키는 독창적인 화풍을 시적인 색채와 리드미컬한  형태가 결합된 작품으로 탄생 시켰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1>이나 < 야상곡> <피아노 콘첼트>의 작품은 그가 얼마나 <소리는 색을 보게 해주고 색은 소리를 듣게 해준다> 라는 신념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그러한 절정은 아마도 <오 환희>시리즈에서 스케일과 짜임새에서 우주적인 세계의 탁월한 표현의 감동스러움을 주었다.
특히 원형의 형태들이 빚어내는 하모니와 입체적인 양감은 색다르고 보기 드문 공간감을 구축 했다.  2009년 테마로 삼았던 빛과 소리의 앙상블 전시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기하학적인 패턴에 수직, 수평이 일정한 공간으로 분할된 화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소위 옵티컬한 아트라고 선보이는 이주영의 새로운 작품으로 평가 되는 작품들이다. 
그는 정말 회화의 중요한 8가지의 조형요소, 수직선과 수평선,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 그리고 백색, 회색, 검은색의 3 무채색으로 우주의 불변하는 보편적 법칙을 포함하고 있다.
그의 기법 또한 단순하지 않다. 작가는 그의 비주얼한 시각적 작품으로 3.5.7미리의 크기로 각각 잘라 베를 짜듯이 작품을 만들어 냈다. 옵티컬한 우주와, 그 안의 모든 세계를 소리라는  음악 속에서 다루고자 한 것이다.
화면에서 오직 색채와 빛으로 전달되는 에너지를 옵티컬한 질서에서 보이는 그의 작업은 빛이야 말로 유일한 리얼리티라고 믿은 들로네처럼 그의 작품에는 색채와 리듬의 상호작용이 절대적으로 시각적 추상회화를 만들어 낸다. 
 “색채의 동시 대비를 통해 색채는 역동성을 찾게 되며 그림에서 색채의 구성이 이루어지게 된다. 또한 이는 현실표현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라는 들로네의 신념이 오르피즘이란 그림을 만들었듯이 그의 작품세계를 보면서 그가 40여 년 동안 외롭게 해온 이 옵티컬한 작품에 대한 관심과 평가가 너무나 편협했음을 반성한다. 
물론 그러한 평가가 우리 미술에 층이 얇은데서 비롯되지만 옵티컬 아트에 대한 작가 층이 너무 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주영의 작품을 프랑스 화가 야곱 아감 <Yaacov Agam>의 키네틱 아트와 비교될 정도로 한국의 야콥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아마도 그의 이러한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1960년 초반 시골 온양고등학교 시절 미술을 하고 싶어 무작정 그림을 싸들고 매주 서울대학교 교무실로 찾아가 문학진, 류경채, 서세옥 선생들에게 무료로 레슨을 받으면서 그림을 그린 그의 끈질긴 집념과 노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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