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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무법자

김종근

세 명의 무법자 


여기 세 명의 예술가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지구인에서 외계인의 거리만큼이나 달라도 정말 너무 다르다. 한 작가는 생명의 노래로 유명한 한국화가, 또 한 작가는 한국화가로 붓질을 시작 했지만 전혀 한국화 냄새를 풍기지 않는 천의 얼굴을 가진 작가. 마지막 조각가는 장르도 표현도 감각도 전혀 딴판인 설치 입체작가 이다.

1.천의 얼굴 –김지훈

두 번째 김지훈작가는 출발에서 이미 자신의 작품을 볼 때 <취급주의>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그 공지는 먼저 자신의 표현방법과 스타일은 규정하지 말고 보라는 메시지인 동시에 장르에 묶이지 않은 탈 경계 선언을 의미한다. 
그의 작업은 하나는 구상 또 하나는 추상, 이 두 가지 경향의 스타일을 동시에 벌리고 있다.
최소한 이 발언은 예의 차원으로 보이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엔 천의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다. 
보통 흔하게 작가는 자신의 작업스타일을 하나 설정 한 후 그 스타일을 집중적으로 
탐색, 구축해가며 작품세계를 열어 보이는 것이 지극히 일반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김지훈은 “구상은 직접적으로 추상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라고 공표하며 설치 사진 퍼포먼스 까지를 전 방위로 내달린다. 
이런 그의 작품에 모티브는 의외로 일상적인 주변의 현실 풍경에서 포착한다.
<고기 굽는 남자>,<기다리는 사람> ,<오락실>, <정암해변>의 풍경에서 때로는 거리의 공사장, 그리고 이젠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깨어지기 쉬운 <후라질 맨> 프로젝트 시리즈까지 작가는 주변의 이웃사람들의 상황에서 작품 원천의 이미지를 차용하며 거둬들인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상황은 매우 묵시적이고 시위 적이다, 뿐만 아니라 간결하고 방호복을 걸친 <후라질맨>들은 생략적이며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비근한 예로 2011년의 캐릭터는 알파벳 문자로 시작 했다면, 2015년의 거리 풍경들의 방호복 차림의 인물은 그 다양한 상황의 다룰 영역을 규정하고 있다. 
<레지스탕스>를 비롯한 이 시기의 회화작품들 특히 <다리가 긴 여자> < 내 눈으로 부터>의 작업들은 김지훈의 표현 감성과 작가적인 역량을 이처럼 확실하게 가늠케 해준 작품도 드물 정도로 강렬하다.
2016년 작업에서는 그 내용이나 형식에서 기하학적 선을 끌어들이는 등 과감한 표현양식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탈 형식 개방성을 발표 하였다. 
특히 2018년의 설치와 퍼포먼스의 사진들은 그의 시각놀이가 얼마나 아방가르드적인가를 파격적으로 제시했다. 
특정 공간에서 방호복 옷차림으로 경광등을 들고 연출 해내는 그 상황극의 집요함은 우리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유, 묘사한다.

김지훈 작가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것을 사람들 사이의 인간관계성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시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그의 작가정신이나 철학이 인간에 뿌리,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두고 있음을 그래서 난 주목한다. 그것은 예술가로서 가져야 할 할 화두가 무엇이고 어디로 향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나침판이기 때문이다.

2. 김지용- 구상화된 미니멀리즘 의자
 
이런 경계 없는 탈장르 표현에 카테고리의 벽을 허무는 김지훈에 비해 김지용은 놀랍도록 단순한 미니멀리즘의 패턴 화된 형식을 보여준다.
벽이 있다. 그 벽에 녹색 빨강, 노랑 등의 원색적인 컬러에 면들이 벽에 걸려 있다. 
그 벽들은 의자처럼 걸려 있고 마치 벽에 의자를 슬쩍 걸어 놓거나 기댄 것처럼 그 형태들은 의자의 모습을 빌리고 있다.  
일견 그가 보여주는 그는 외형상으로는 의자라는 옷의 형태를 빌리고 있지만, 그는 의자에 몰입된 평면 형태와 컬러들의 결합 혹은 조합에 마지막 목적을 두고 있는 듯하다.
마치 1960년대 미국 조각계를 풍미했던 미니멀리즘 계열의 조각가 토니 스미스(1912∼1980)가 직육면체 삼각기둥으로 건축적 요소가 강한 작품을 남겼듯이 육중한 인상의 도형들을 이어 붙여 보는 시선이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과 느낌을 준 것을 떠올린다. 
김지용은 그의 입체에서 우리는 그저 컬러로 칠한 가장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을 뜯어 맞춘 것만으로 이렇게 다양한 입체적 성과의 의자가 가능한가를 증명하고자 한다. 

이 의자 작품의 경우, 기울어진 오브제가 벽에 있는지 바닥에 놓여있는지 시선을 착각하게 하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의자를 빙자한 미니멀리즘 구조가 예사스럽지 않다. 
그의 사유 속에는 장식적인 오브제에서 형태의 본질에 회귀하려는 그의 동양적 사고나 심리에 난 눈길이 간다.
그것은 서양미술의 사유와 시선에 물들지 않는 극명히 대조되는 사물에 대한 인식이 때문이다. 즉물적인 미니멀의 작가 프랭크 스텔라 (Frank Stella)는 “당신이 보는 것이 보는 것의 전부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대로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김지용의 표현 방식이자 어법이다. 
벽에 있지만 바닥에 놓여있는 그 중의적인 통시적인 시각. 딱딱한 형태에 익숙하고 편안한 의자. 색면으로 관습적인 사고의 일탈을 강요하는 솔직함, 그것이 김지용 미니멀풍 의자의 매력이다.
약간 지루하지만 .

2.“ 생명의 노래 – 인간과 자연의 만남 ” 아버지 김병종 

1980년대 이후 한국 화가들이 길을 잃고 방황 할 때 김병종은 작가들이 한국화 기존의 표현 양식에 지나치게 묶이지 않고 “회화와 회화” 사이에 단계를 넘어서서, 장르를 벗어난 혼돈과 격랑의 파도 속에서 줄기차게 생명의 노래만 불러온 작가이다.
사람들은 그 기법에만 정통성을 부여하려 애썼고, 그것은 곧 표현의 가능성을 상실한 채 표현도 새롭지 못하고 그리하여 현대의 다양한 미의식을 수용하지 못한 “유행”속에서 한국화는 21세기를 맞이했다.
이것은 한국화의 답보적 상태가 되었고 현대 한국미술의 가능성까지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80년대 중반과 후반 패기만만한 30대와 40대에 의하여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이 싹트기 시작 했는데 
김병종의 생명의 노래는 여기서 처음 그의 목소리를 냈다. 
죽음의 문턱에 까지 다다른 그의 체험적이고 경험적인 이 생명의 예술노래는 어느 예술적 논리보다 견고했고 동양적 정신 위에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는 조형의식으로 꽃 피웠다.

이렇게 우리 시대의 흔들리지 않는 “한국성”은 초기 작업에서 화제를 뿌리며 등장했다.
역사적인 인물들의 이미지 만들기”(Image Making)가 그것이었다.
이른바 “바보 예수”나 “대지에 누운 황진이” 시리즈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미지의 변용은 역사성을 배제한 어린 성자 아기불로 그 이미지로 옮겨 갔다.
다양한 인물과 자연의 대상을 하나의 시각 형식으로 형상화 된 주제들은 자연풍경에 소나무, 구름, 새, 돌등도 “聖子” 시리즈의 인물을 지나면서 독창적 생명체로 정착 되었다.
김병종의 화폭 속에 스며든 깊은 여운과 서정적인 어휘들은 소재의 다변화에도 불구 공통적으로 동양적 혹은 한국적 이미지를 집약 시켰다.
그의 인물은 단순하게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자연이 하나의 생명체로 만나고, 화해하고, 공존하는 자연과 동화하는 물아일체의 형식으로서 인물인 것이다.
마치 자연이 존재하지 않으면 내가 존재 할 수 없는 동양 철학의 자연관의 반영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새와 구름, 나무 등은 인간과 분리 될 수 없는 소중한 생명체이자 살아 있는 자연의 인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와 생명, 그 영원을 담아내길 멈추지 않았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일체의 대화, 그 만남으로 승화되는 범신론적 사랑과 휴머니즘의 노래, 
바로 그것이 김병종 회화의 예술 정신이며 생명의 노래에 울리는 심장이었다. 
눈의 시각적 즐거움이나 기술만 보이고 끝나 버리는 21세기형 작품 앞에 그의 작업들이 한결같이 무엇인가를 다시 돌아보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 즉 그림 너머에 반드시 맑은 샘물처럼 깊은 마음과 영혼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은 김병종 회화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힘이다.
그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을 인식하는 능력과 이상향을 예술로, 글로서 표현하고 척박한 이 시대에 순수한 예술가로 살아가길 그치지 않았다. 
그의 그림들이 건네주는 이야기 속에 그런 숨결이 느껴지는 감동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술이 단지 눈만 즐겁게 한다든지, 무의미한 개념과 실험의 반복 속에서 흔들리는 그림들에 비해 “흑색 예수”,나  “어린 성자”, “아기불”같은 그의 그림들은 우리들을 평화롭고 깊숙한 천국의 세계로 안내 해주고 있다.
최근 그의 자연과 더 어우러진 그러나 비워두는 시리즈는 그가 추구한 생명의 노래와 그대로 만나진다.

이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그가 그려내는 자연과 꽃과 소년이 노닐고 있는 풍경에서 “인간의 마음을 떠나 버린 미술” 속에서 홀로 자연 앞에서 서서 생명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의 모습이 가장 빛남을 발견한다.
여전히 그는 우리에게 훨씬 더 감동적인 한편의 이름다운 서사시, 생명의 노래를 들판에 서서 홀로 부르며 그 울림을 우리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다. 

더욱이 이제는 더 이상  학교를 가지 않고 화폭 앞에서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를 수 있음을 나는 가장 
축하 한다. 
이 아버지 그리고 두 아들의 전시와 더불어.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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