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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와 루오, 위대한 시대의 화가들

김종근

지금 대형 블록버스터 전시 두 개가 서울과 지방에서 각각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두 개의 대형전시가 주목받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먼저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세기의 피카소전은 그 규모나 전시의 질적인 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 전시는 전시기획자와 신문사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전 시립미술관의 경우 루오전은 근래에 보기 드물게 시 자체와 미술관이 주축이 되어 지방전시의 설움이라는 한계를 무릅쓰고 대형 전시를 유치했다. 지방미술관이 재정문제로 서울 전시를 받기만 하던 관행에서 보면 이 전시는 여러 가지로 향후 열리게 될 지방미술관 시대의 가능성과 한계를 엿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전시들이 질적인 면에서 각광을 받는 데에는 두 전시다 해외의 중요한 국공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을 통하여 작품을 빌려왔다는 점이다. 개별 작품의 예술적 평가와 작품 세계의 조명은 덮어 두고 라도 이러한 전시가 유치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경제성장과 문화적 수준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피카소전시는 전 세계 23개 미술관을 통해 총 140여점을 빌려왔다. 전시 작품도 50호를 전후한 유화 50여 점과 데생 등이 30여 점, 그리고 그의 중요한 시기에 제작된 판화작품 60여 점으로 그동안 한국에서 열린 피카소 전시의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가장 우수한 전시로 평가된다.

이 전시작품 중 청색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5백억 원대의 솔레르의 가족과 3백억원의 거울 속의 잠자는 여인 등 100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들이 즐비하다는 것이 이 전시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 특히 이번 전시는 그의 생애에 걸친 작품을 시대와 주제에 따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전의 전시와도 구별된다.
감상자에게는 그 중에서도 ‘앉아 있는 여인’(1962),과 ‘프랑수아즈의 얼굴’(1948)등이 이 전시의 무게와 특별함을 더해준다. 이와 비해 루오전의 출품작은 유채작품 <베로니카> 등을 비롯한 84점과 판화 141점 그리고 루오의 유품 붓, 팔레트, 물감, 나이프와 동판 원본이 전시 되어 규모 면에서 최고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작품을 빌려 준 곳도 조르주 루오 재단에서 200여점, 퐁피두센터에서 12점, 파리 시립미술관에서 4점, 일본 이데미츠미술관에서 4점등으로 전시품의 질적인 면의 수준을 최고의 콜렉션 전시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피카소의 전시는 여전히 우리가 미술사에서 보아왔던 청색시대, 장미시대, 입체파시대, 고전주의 시대, 게르니카 시대의 대표작품 들이 망라되어 있지는 않다. 그리고 그러한 전시는 우리의 현실로보아 실제는 불가능 하다.

다만 첫사랑 올리비에 페르낭드를 만나면서 블루시대에서 장밋빛으로 넘어가며 고독한 인물 대신 가족의 모습으로 서커스의 곡예사들로 옮겨가는 특징적인 작품들이 있어 그의 세계를 더듬어 보기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다.

묘하게도 이번 루오의 전시와 피카소 전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를 이룬다. 피카소와 루오는 주제에 있어서도 아주 일치되는 테마와 주제를 다루었다는 점이 그러하다.

피카소가 여자라든가 고아, 그리고 피에로 등 불우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그렸던것처럼 루오 역시 광대와 같은 하층민의 삶을 더욱 진지하게 그려낸다.

피카소에게 그의 인생을 사로잡은 것이 여자라면 루오를 평생 사로잡은 테마는 단연 성스러운 예수의 초상 모습이었다. 또한 서커스의 광대 또한 이들이 공통으로 택한 주제였다. 파리의 외곽지역에 살던 루오에게 도시를 유랑하며 살던 곡예사들은 가난한 이웃에게 따뜻한 시선들은 ‘우울한 광대’뿐 아니라 판화집 ‘서커스’, ‘유성별 서커스’, 등에서 빛을 발했다. 그러나 피카소가 그들을 그리워했던 것과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다. 피카소가 1904년 몽마르트르에 체류하면서 청색에서 장밋빛 시대로 가는 과정에서 피카소는 독특한 단순화와 엄격성으로《공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소녀》 《광대》 《곡예사가족》 등에서처럼 어릿광대나 곡예사를 그렸지만 모두 무대 위의 모습은 아니다.
피카소나 루오에게 창녀의 테마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주제였다. 특히 루오가 가장 즐겨 그린 소재는 성경 속 풍경, 법정의 사람들, 부르주아, 매춘부등으로 그 중에서는 창녀를 소재로 한 20여 점이 주목된다. 루오가 이들 창녀들의 모습을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선택했다면 1907년의 영원히 기념할 명작으로 불리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는 아프리카 흑인 조각의 영향이 나타나는 큐비즘의 회화 속에서 창녀들이 모티브가 되고 있다.

루오가 창녀를 그린 내면에는 그들에게서 전율하는 듯한 내면의 고통을 느꼈다고 말했듯이 피카소는 “다른 사람들이 글로 자서전을 쓸 때 나는 그림으로 내 자서전을 쓴다.”고 할 정도로 그는 다양한 주제를 시시각각 형상화 했다. 이들은 각각 그들 삶의 역정을 그대로 그림 속에 담아내고 있는데 이점이 두 전시에서 확인 할수 있는 것은 주목 할 만한 사실이다.

전시의 구성도 우연의 일치 같지만 만년의 루오가 ‘사라’의 작품에서 풍부하고 과감한 터치와 투박하되 정갈한 질감을 생략적으로 형상화 했다면 피카소는 말년에 도자기작품을 통해 그의 새로운 예술적 세계를 꽃 피운것도 에술가들의 마지막 열정을 엿보이게 한다. 루오가 80살이 넘어 활동한 것과 70대의 피카소가 도자기 작업에 매혹 당해 제작한 작품앞에서 이 두 거장의 열정이 느껴진다.

또한 이들은 한결같이 어떠한 유파에 종속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루오가 야수파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고집하였듯이, 피카소 또한 입체파에 속해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거의 모든 표현 양식을 섭렵하며 최고의 세계에 도달 했다.

이 두 작가는 색채에서도 일치 된다. 공히 두 작가가 푸른 색과 검은 색을 선호하였다는 사실이다. 피카소가 청색에서 니그로 입체파 시기와 후기 작품으로 이어지는 색에는 검은색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루오의 전 작품을 가로지는 색채는 검정이었다. 특히 그에게서 나타난 짙은 검은색 윤곽선은 루오가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에서 머물렀던 어린 시절의 예술적 체험을 강렬하게 반영한다.

이 전시중에서 아주 특이하게 눈에 띄는 판화작품들이 있다. 그 모든 판화들이 두작가를 엮어주는 한사람의 소중한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프랑스의 전설적 화상이자 세잔느 등을 길러냈던 화상 앙브로와즈 볼라르이다. 그에 의해서 루오가 영혼의 자유를 지킨 화가로 부르게 되는 ‘미제레레(Miserere)’ 연작제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판화집은 직접 지은 시나 성서 구절에서 뽑아 제목만 붙인 것으로 애초에 앨범 형태로 제작 된 것이었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중요하게 각인 되는 또 하나는 전후 전쟁에 지친 프랑스 국민들에게 전쟁의 비참함을 가르쳐준 인간에 대한 성찰이다. 피카소가 제작한 수천점의 판화, 게르니카 시대의 도라 마르에 관한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얼마 전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열렸던 게르니카 시대의 도라마르와의 전시처럼 이 작품들은 피카소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라마르가 자신을 존중해달라고 고통스럽게 갈망 했던 모든 표정을 피카소는 게르니카와 울고 있는 여인으로 형상화 했는데 이 대표적인 작품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것도 피카소 전시가 주는 커다란 매력이다.

피카소 화화에 있어 말년의 작품이 흑백으로 제작한것에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검은 선과 거침없는 붓질이 루오와 크게 닮았다. 루오의 진정한 매력도 검은 윤곽선에 있다. 시인 김지하가 이 전시를 보고 “세계를 포착하고 요약하는 방법”으로 “우울에 젖은 세계의 핵심 신비가 윤곽선”이라는 사실은 그 어떤 지적 보다 루오의 작품을 강렬하게 대변한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루오는 “보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될 만큼 감동적인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했던 발언들이 모두 <베로니카>와 <성안>에서 밝게 빛나고 있어 감상자의 눈과 영혼 모두를 경건하게 하고 있다. 이 두 전시는 거침없이 인생을 살다간 피카소와 그 누구보다 겸허하고 자신에게 진지했던 루오가 우리에게 한 없는 깊이와 영혼의 울림을 주는 전시라는 점에서 2006년이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전시로 기록 될 것이다.

아트인컬쳐 2006년 8월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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