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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 / 허(虛)와 정(靜), 그 심연을 향한 수행

윤진섭


허(虛)와 정(靜), 그 심연을 향한 수행

윤진섭 | 미술평론가

Ⅰ.
 김현경은 수묵화 중에서도 특히 대나무(竹)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예로부터 선비들이 인격을 수양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군자(四君子)를 즐겨 그렸는데, 매화(梅), 난초(蘭), 국화(菊), 대나무(竹)가 바로 그들이다. 따라서 문인화에 속하는 이 사군자를 즐겨 그린 선비들은 나아가 시서화(詩書畵) 3절(三絶)을 풍류의 분위기 속에서 즐겼다. 

 사군자 가운데서도 김현경이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고 가꿔온 소재는 대나무다. 흔히 곧고 청정한 모습에서 연상되는 지조와 충절의 상징 대나무는 그런 연유로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 좋은 그림의 소재로 여겼다. 

 김현경이 대나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가 2002년이니 어언 20년이 다 돼간다.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대나무를 중심으로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시도하였다. 화면에 대나무를 그림과 동시에 바람, 물, 빛 등의 요소를 담고자 한 것이다. 그것들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심리상태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김현경은 어떻게 해서 대나무라고 하는 특정의 소재에 이끌리게 되었을까? 작가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연구자가 대나무를 소재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대나무의 곧고 강인한 성정에 의지하고픈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마다 각자 닮고 싶은 인생의 멘토가 있고 그 존재는 꼭 필요하다. 연구자의 멘토 중 하나는 대나무이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자신이 대나무를 그린 가장 큰 이유는 대나무와의 동화(同化), 즉 심리적 위안과 함께 대나무의 성정인 곧고 강인한 기질에의 이끌림에 있다. 그것은 비록 사람이 아니지만 자신이 평생 본받고 기댈 수 있는 정신적 멘토로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현경이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대나무를 그린 이유의 이면에는 이처럼 자아의 투사적(投射的) 대상물로서 대나무를 대하는 그의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소재 차원을 떠나 깊은 심리적 의존에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대나무에 대한 작가의 심리적 동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조형은 오로지 조형일 뿐이다. 그런 연유로 지난 20여 년에 걸쳐 김현경이 제작한 대나무 그림을 최근 10여 년간의 흐름을 중심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가? 

 
Ⅱ.
 지난 작품을 돌아보면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작업에 임하는 김현경의 실험정신이다. 특히 작품의 프레임을 비롯한 형식적 측면에 기울이는 실험은 주목할만 하다. 예컨대 김현경은 2017년의 작업에서 한지를 불에 태워 타다남은 부분을 전시했는데, 이는 한국화의 전통적 형식에 견주어 볼 때 매우 파격적이다. 원형의 한지에 적묵법을 사용하여 대나무 그림을 그린 뒤 부분적으로 불태운 행위는 일종의 퍼포먼스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전시장의 벽에 걸린 파편으로서의 그림인 것이다. 특히 자그마한 종이 파편들을 주 작품 주변에 나열하여 일종의 상황성을 드러내고자 한 실험도 한국화에서는 보기 드문 발상이다. 

 김현경이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시기는 한국 미술계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이 거세게 불던 때였다. 1990년대 중반은 광주비엔날레의 창설을 비롯하여 미술시장의 해외개방 등 한국 미술의 국제화가 진전되고 있었으며, 대중소비사회의 시대가 서서히 열리던 시기였다. 미술 또한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대립에서 벗어나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다원주의 물결이 화단을 휩쓸고 있었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김현경은 학교를 졸업한 후 화단 활동을 하면서 이러한 문화적 환경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국화란 무엇인가? 한국화는 국제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과연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물밀 듯이 밀려 들어오는 서양미술의 다양한 사조 앞에서 자칫 길을 잃기 쉬운 게 당시 미술계의 상황이었다. 문화적 정체성의 논의가 들끓는 가운데 이른바 ‘한국성 찾기’와 같은 논의들이 미술계의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2천년대 초엽이 되자 미술계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한 김현경은 대나무를 소재로 열심히 작업을 밀고 나갔다. 즐겨 사용한 기법은 적묵법(積墨法)이었다. 처음에는 연하게 시작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진하게 먹물을 종이에 입혀나가는 기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이에는 계조(gradation)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김현경은 이 적묵법을 사용하여 물에 비친 대나무 잎들을 그렸다. 2009년에 그린 김현경의 <기억-바람에게(Memory-to Wind)> 연작은 대나무를 매개로 바람을 시각화한 작업이다. 대나무 줄기들이 수직으로 쭉쭉 뻗은 가운데 잎들이 퍼져나가는 형국을 표현했다. 이 작품에 그려진 대나무 가지는 횡적 구조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선들이 위아래로 죽죽 그어진 가운데 좌우로 퍼져나가는 먹의 계조가 특징이다. 그 사이에 검게 표현된 댓잎들이 사선으로 뻗어있다. 그것은 작가의 심상을 표현한 것으로 본인의 말을 빌리면 “대나무 잎을 크게 확대하여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 누구도 바람을 본 사람은 없다. 바람은 형체가 없는 것. 그러나 흔들리는 댓잎을 통해 바람은 자신의 존재를 슬며시 암시한다. 김현경의 대나무 그림은 바로 이 바람의 시각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현경의 그림에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이른바 구도이다. 이는 전통적인 동양화론에서 경영위치(經營位置)로 풀이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화면에서 대상을 어디에 놓을 것(布置)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예컨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그리는 부감법(俯瞰法)이 그것이다. 

 비록 먹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고 있지만, 흑백 콘트라스트가 강한 김현경의 그림은 현대적인 미감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고답적인 느낌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현대적이며, 추상화된 형식을 통해 분절된 이미지로 나타난다. 궁극적으로 김현경의 그림들은 선적 요소로 이루어진 기하학 추상에 가깝다. 비록 대나무 잎이나 줄기를 연상시키는 형사적(形似的) 요소들이 잔존하고 있으나, 그것들마저 궁극적으로는 기하학적인 요소들 속으로 수렴된다. 


Ⅲ.
 ‘물’은 김현경이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소재이다. 물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한 때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물을 ‘생명의 원천이며 자연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로 파악한다.    

 김현경의 그림에서 물은 대나무 잎이 물 위에 어른거리는 것처럼 표현됨으로써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대나무-응시(The Bamboo-gaze), 2013>는 직경 45센티미터의 원형 그림으로 적묵에 의한 잎사귀 표현이 얼핏 흐리기(blurring) 기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마치 물 위에 비친 댓잎의 모습이 일렁이기 때문에 마치 존재에 관한 현상학적 질문을 유발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 잎사귀가 과연 잎사귀의 그림자로서의 이미지인지 아니면 단지 거무스레하고 끝이 뾰족한 얼룩들의 집합인지 하는 궁금증을 낳기 때문이다. 

 2016년 금호미술관에서 가진 개인전에서 김현경은 다양한 회화적 실험을 시도하였다. 그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공간분할에 관한 실험이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본 시점은 화면에서 대나무를 의미하는 직선을 긋되 아래는 폭이 넓게, 위로 갈수록 좁게 설정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밀집되는 효과를 나타냈다. 그런가 하면 화면의 중앙을 향해 모여드는 구도를 취한 작품도 있어서 매우 다양한 실험을 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다양한 실험의 중심에는 ‘비움’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화면이 점차 미니멀해지는 비움은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고 욕심과 이기심을 없애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행위는 곧 수행(修行)에 다름 아니다. 선(禪)에 있어서처럼 끊임없는 반복적 수행은 곧 비우는 행위인 것이다. 김현경은 적묵을 통해 이 수행의 방법을 실천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작업에는 ‘허정(虛靜)’의 개념이 자리를 잡는다. 

 “노자는 무욕을 내재적 의미로하는 ‘정’을 주장하였다. 동시에 노자 수양론의 ‘허정(虛靜)’ 즉 삶의 진정한 가치를 내포한 ‘정’을 한층 더 도의 의미로 끌어올렸다. ‘고요함으로 돌아감’은 바로 ‘본성에로의 돌아감’이며 만물 가운데 고요함(靜)에 귀결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 즉 노자에서는 덜어내고 또 덜어내는 것, 즉 비우고 비워내는 ‘허(虛)’의 과정을 중요시하면서 본래성을 회복하여 도를 직관하는 ‘고요함(靜)’의 경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허정의 개념을 좇아 김현경은 오늘도 화면과의 씨름을 계속한다. 그것은 쉽게 끝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우리네 삶이 실수와 반성의 반복이듯이, 그림 역시 실패와 성공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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