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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장 오산

하계훈

<잠시동안, 인간>은 문화공장 오산이 2012년 11월 개관한 이후 세 번째 기획한 전시로서 회화와 입체 등의 매체를 통해 표현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과 독일, 네팔의 작가 11명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오산원일초등학교 희망반의 지적장애아동들과 20명의 오산다솜지역아동센터의 어린이들이 작가들과 함께 참여하여 전시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평면 화가로는 권순철, 변웅필, 이광호, 최석운이 참여하였는데 권순철은 개개인의 역사를 '얼굴'을 통해 표현하고 그 안에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정신을 담고자 했다.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경험과 시간의 층위가 축적되어 그의 인생의 외모와 정신세계를 형성하게 된다. 모든 인생사가 '희로애락'의 반복과 교차를 통해 인간 개개인의 역사를 마치 씨줄과 날줄로 엮는 직조과정처럼 진행되며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생의 마감시간에 다가가면서 완성을 향해 진행된다. 인간의 ‘얼’을 드러내는 시각적 기표로서의 얼굴을 표현하여 개인의 사적인 역사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동시대의 시대정신을 화폭에 담아온 작가 권순철은 1988년 파리로 유학하여 그곳에 체류하면서 줄곧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작가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동시에 일관되게 한국적인 정서와 고유의 정신세계를 추구해오고 있다.


변웅필은 디지털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찍은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사실주의적인 회화로 재현해내는 작업을 한다. 대형 화면에 가득 찰많큼 확대하여 그린 자신의 거대한 얼굴과 상반신에 집중된 일련의 자화상에서 작가는 자신의 얼굴을 꼬집고, 일그러뜨리면서 자해에 가까운 포즈를 연출함으로써 인간의 얼굴 표정을 넘어서 그 속에 내재하는 다양한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광호는 보다 사실적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일련의 초상화 작업을 통해 모델역할을 하는 사람들과의 심리적 교감을 추구한다. 이광호는 직업적인 모델을 쓰지 않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 봐 온 사람들을 섭외하여 그들을 모델로 삼는다. 작가는 작품을 어느 정도 제작한 단계에서 모델과 얼마 동안 직접 대화를 나누며 최종적으로 그림을 완성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작품에는 모델의 사실적인 모습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 보다 심층적인 대상의 성격과 심리,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이 작가와 모델 사이에서 소통과 교류의 과정을 거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다. 결국 이광호에게 있어서 캔버스는 작가가 모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중매해주는 매체가 되는 셈이다.


최석운의 작품은 동화책의 삽화처럼 쉽고 평이하게 전달되는 이야기 형식이 주를 이루지만 그러한 가벼움의 이면에는 현실에 대한 냉소적 비판의 시선도 함께 담겨져 있다.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로부터 유머를 가미한 풍자를 이끌어낸다. 최석운은 인간의 관습이나 행동을 관찰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가동시켜 풍자와 해학으로 대상을 파악하고 거리낌 없는 솔직함과 진실함으로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관람객의 눈높이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보편적 정서를 건드려준다.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방법으로서 입체 작업을 선택한 작가는 김순임, 노진아, 최수앙, 안수진이다. 김순임은 실과 무명천, 목화 솜 이불과 같은 자연의 소재로 인물을 형상화하면서 그가 머물러 있던 공간과 관람객들이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작업에 도입한다. 예를 들어 작가가 뉴욕 체류 시절 건물 청소부로 만났던 동유럽 출신 이민청년을 양털과 바느질로 형상화하고 그를 중심으로 자연의 재료를 인공의 벽과 연결시키는 설치작업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모티브가 되는 대상만을 전시장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갖는 기억과 공간에 대한 추억까지 전시장으로 가져다 놓는 시간과 공간의 이동인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프로세스가 김순임의 작업을 단순한 오브제로서의 작품이 아닌 강한 시각적 인상과 내러티브를 간직한 작품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노진아는 우연히 높은 배율의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포착한 미생물에게서 발견한, 인간을 닮은 유기체적인 존재를 통해 작품의 모티브를 추출한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미생물들의 모습에서 마치 사람과도 같은 표정으로 움직이며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 돌기들은 그 하나하나가 마치 인간의 모습인 것처럼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작가는 거기에 우리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접합한다. 작가적 상상력이 관람객에게 시각적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노진아의 작품은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모습과 존재감에 대해 새롭게 자기관찰을 할 것을 유도한다.


인체를 주제로 작업해 온 최수앙은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과 숨기고 싶은 인간의 욕망, 현실의 굴레에 예속되면서도 탈출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상실감과 소외 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는 사실주의적 조형을 통해 인간으로서 누구나 갖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을 솔직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이러한 주제가 어렵지 않게 관람객들에게 전달되기를 희망하며 그로부터 소통의 가능성이 증폭되기를 기대한다.


안수진은 버려진 기계나 물건들의 부품을 추출하여 그것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한다. 작가에 의해 재구성된 작품은 원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제시되는데 이 때 작품들은 기계의 정밀성이나 기능의 효율성과는 거리를 둔 다소 기괴하거나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안수진의 작품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기계문명에 대한 비판적 조롱일 수도 있고 그러한 환경에 볼모로 잡한 인간에 대한 구원과 치유의 손길일 수도 있다.


인간에 대한 사유의 형태는 평면이나 입체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의 기록이나 설치에 의해서도 제시된다. 조선족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이주자들의 생활상을 기록해온 작업이나, 죽음에 대한 체험 등 흥미로운 행보를 보여온 이수영은 잠시 흉내 낸 이주의 경험을 통해 몸과 감각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 느껴보는 작업을 제시하고 있으며, 박남희&Nils Clauss는 사회의 최 하층민인 노숙자의 삶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네팔 출신의 작가 Floris Kaayk 실재와 허구를 모호하게 뒤섞어 인간의 신체가 보여주는 기괴함과 유머를 그려내고 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11명의 작가들은 이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공을 초월한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두고 접근한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상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것과 함께 문화공장 오산에서는 이번 전시에 앞서서 지난 1월부터 오산원일초등학교 희망반(자폐 등 지적장애아동) 학생들이 참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안수진 작가와 함께 워크샵을 진행한 결과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등지에서 다년간의 어린이 미술교육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안수진 작가는 이번에 참가한 아동들의 미술교육에 참여하여 총 8회의 미술교육 워크샵을 진행하였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아볼 기회가 없었던 참가 학생들은 이번 워크샵을 통해 자신들의 숨겨진 감각과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재능기부 형식으로 학생들을 지도한 안수진 작가는 '지적장애아동 미술교육은 처음 해본다지만 보람은 훨씬 크다'며 '아이들의 그림을 통해 새로운 창작활동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작가와 지역의 일반인이나 학생들 사이의 협업과 교류는 미술의 사회적 기여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프로젝트가 일회성으로 그친다면 그 효과보다 프로젝트 종료 후의 후유증과 역기능을 감당해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다행히도 이번 기회를 계기로 문화공장 오산에서는 오산시 전역의 초등학교 희망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교육 워크샵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하니 희망을 갖고 지켜볼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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