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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사랑과 꿈,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예술의 역할

하계훈

정영한의 작품에는 사실적 재현 방식으로 그려진 꽃이나 과일, 또는 하늘과 바다 등의 이미지가 화면을 압도적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꽃잎 하나하나와 껍질의 신선도까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랗게 그려진 꽃과 과일은 화려하고 탐스럽게 화면을 지배하고 있어서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고, 배경의 바다와 하늘은 밀려드는 파도 소리와 불어오는 공기의 냄새가 화면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시각과 청각 뿐 아니라 후각까지도 활짝 열리게 만들어주는 이러한 이미지들은 마치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서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우리들의 감각 경험에 호소하여 작가가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정영한의 작품을 살펴볼 때, 우리는 사실적이고 재현적인 이미지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몇몇 단어들이 같은 화면 안에 공존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대상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분명한 이미지 위에 굵고 명암이나 색상을 달리하면서 선명한 글씨체로 새겨진, 제목을 가장한 추상적 단어들은 그 뒤에 배경처럼 드러나는 사과, 바다, 꽃과 같은 자연의 요소들이 지닌 사물의 속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들이며, 그것들은 오히려 대조(contrast)를 이룸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이미지는 그 단어에 함축된 의미와 정서를 강조해주고, 단어는 다시 이미지의 사실적 형태와 감각을 더욱 강조해주고 있다. 조형적으로도 평면적인 글씨체와 입체적인 이미지는 하나로 어우러지기보다는 각각의 요소가 서로의 속성을 도드라지게 해주는, 일종의 상호 촉진작용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정영한은 이러한 이미지들과 단어들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걸까? 작가는 지난 몇 해 동안 <우리 시대의 신화 - 아이콘>, <이미지, 시대의 단상>과 같은 제목으로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신화라고 하면 우리들은 쉽게 고대 그리스나 우리나라의 단군의 시대와 같이 아득하게 먼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지만,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리스 신화나 단군신화의 시대처럼 우리의 의식과 사고를 지배하는 신화적 우상이 여전히 존재함을 일깨워주고자 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메시지를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확대된 이미지와 그러한 이미지들을 사실적이고 돌발적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북유럽 낭만주의나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해주는 복합적인 방법으로 묘사하고, 다시 그러한 이미지 위에 추상적인 개념을 담은 단어들을 제시한 작품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시대의 단상> 시리즈에서 작가가 제시하는 화면 안에는 사실적인 사물의 이미지와 함께 lost, dream, memory, love와 같은 단어들이 커다랗게 쓰여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단어들은 이미지를 배경으로 레터링(lettering)되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대부분 회고적이고 사유적이다. 작가는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사유하면서 우리의 의식과 감성을 지배하는 어떤 것, 그러한 것을 우리들에게 다시 상기시켜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꿈과 기억, 사랑과 같은 정신작용과 감정 상태는 시대를 관통하면서 인간의 삶에서 중심적인 화두로 자리잡아왔으며 그러한 기능과 역할은 시대의 흐름과 관계없이 크게 변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산업사회와 후기산업사회를 넘어 정보화 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개념들은 점차 잃어버린(lost) 것이고 되찾고 싶은 것, 혹은 과거와 다른 형태로 새로운 세대에게 받아들여지는 정서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실감으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하여 어쩌면 우리에게는 신화의 시대에 우리가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아이콘(icon)을 다시 소환하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정영한은 동시대의 의식과 감수성이, 지나간 시대의 그것들과 부정교합을 이루는 현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다시 그것을 하나로 교합하고 소통시키려하는 행위로서 이러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용면에서 이러한 교합과 소통을 지향하는 작가는 이러한 작품들을 일정 규격과 형식의 프레임에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프레임은 작가가 청년시절을 보내던 우리사회에서, 당시로서는 시대를 선도하는 지식과 정보 제공의 대표적인 매체 가운데 하나인 잡지의 형식을 띠고 있다. 정영한의 작품들은 그 가운데에도 (지금은 전자출판의 시대를 맞아 지면 출간이 상당한 정도로 위축되었겠지만) 영어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며 발간되던 <Time>지(誌)나 <National Geographic>지의 표지를 연상하게 해준다. 이러한 정영한의 작품은 작가와 시대적 경험을 공유하는 관람자들에게는 작품의 내용에 접근하기 이전에 프레임 그 자체로서 이미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신뢰성과 당위성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게 만들어준다.


마치 오늘날 스마트 폰과 SNS의 시대를 사는 세대들이 이러한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별다른 검증 없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과거 <Time>지나 <National Geographic>지와 같은 잡지의 세대가 표지의 제목이나 그와 연관된 기사를 신뢰하고 추종하는 태도는 어쩌면 그것이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신화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우리 삶의 곳곳에 우리가 때때로 감각과 의식을 기댈 수 있는 것, 즉 각각의 시대의 신화가 존재함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 같다. 작가가 의도하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정영한의 작품은 작가의 시대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던 대표적인 미디어로서의 잡지와 사회적 설득과 마케팅 전략의 도구로서의 그러한 잡지(화면)에 담긴 이미지와 단어들이 그 시대의 가치와 감수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지금 이 시대의 정신과 물질적 가치관을 대변하고 있지 않다는 역설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예술의 역할, 즉 사랑과 꿈,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예술의 역할에 대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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