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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왕지에展 / 홍콩(香港)에 헌정하는 ‘소리 도자기(響缸)’

김성호

홍콩(香港)에 헌정하는 ‘소리 도자기(響缸)’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I. 응원가, 애도사 혹은 비가     
중국 작가 왕지에(王皆, WANG Jie)가 한국에서 새로운 개인전을 개최한다. 작년 여름 개최했던, 갤러리 세인(Gallery Sein)에서의 개인전은 무명의 남북한 민초들을 탁인화(拓印畫)의 기법으로 탐구했던 ‘전각 인물화전’이었다. ‘탁인화’란 전각(篆刻)으로 낙관(落款)을 만드는 방식, 즉 도장을 찍어가며 작품을 만드는 회화로, 왕지에가 직접 작명한 것이다. 작년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한반도의 목걸이-북위 38’이라는 의미심장한 주제는, 애한파(愛韓派)인 그가 중국인으로서 한국과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만났던 그야말로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분단 한국’의 현재를 직시하면서 민족과 국가의 의미를 성찰한 것이었다. 
올해 ‘갤러리 진선’에서의 개인전은 이러한 민족과 국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최근 홍콩에서 격화된 반정부 시위와 더불어 중국의 진압으로 야기된 위태로운 정치 상황에 대입한 것이다. 그의 개인전 제목인 ‘HK’는 그렇게 태어났다. 
왕지에의 개인전 ‘HK’는 오늘날 홍콩(香港, Hong Kong)이 처한 민족과 국가 상황에 대해서  진중하게 성찰한다. 3점의 탁인화와 1점의 영상 그리고 1점의 설치작 등 총 5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는, 중국인으로서, 시대를 발언하는 작가로서, 최근의 홍콩과 홍콩 시민을 바라보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심경을 담았다. 그것은 홍콩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에 반대하면서 시작한 시위를 통해 열망하고 있는 자유와 민주적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이자, 중국 본토의 탄압이 야기하고 있는 현재의 불안한 정치적 상황을 같은 중국인으로서 심각하게 인식하고 염려하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왕지에의 전시는 현재의 정치적 억압에 저항하는 홍콩 시민의 시위에 박수를 보내고 힘을 보태는 응원가이자 동시에 자유와 평화를 잃어가는 홍콩의 위태로운 현재적 상황에 대해 목을 놓아 읊조리는 한 편의 애도사(哀悼辭) 혹은 한 곡의 비가(悲歌)가 된다. 

왕지에, HK, 중국 선지 위에 탁인화(광물색채안료, 주사), 2019

왕지에, HK, 중국 선지 위에 탁인화(광물색채안료, 주사), 2019


왕지에, HK, 중국 선지 위에 탁인화(광물색채안료, 주사), 2019




II. 하나의 소리  
저마다 결연한 표정으로 얼굴에 붉은 마스크를 쓰고 있거나, 안대를 하고 있는 무명의 홍콩 시민을 등장시킨 3점의 탁인화 작품은 작금의 홍콩이 당면한 시국 해결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다. 탁인화가 드러내는 조형 언어는 ‘텍스트로 된 회화’이다. 그것은 『금강경(金剛經)』 속 한자(漢字) 텍스트를 첨정석 위에 일일이 새겨 넣어 만든 무수한 전각을, 중국 선지(宣纸) 위에 하나씩 정성을 담아, 주사(朱砂)로 찍어 가는 지난한 노동으로 완성한 회화이다. 정면을 응시하는 무명의 홍콩 시민의 얼굴(이미지)에는 ‘완전한 지혜’를 설파한 금강경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홍콩 시민들의 세계를 향한 메시지(텍스트)가 녹아 있다. 관객은 금강경 텍스트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홍콩 시민의 얼굴들에서, 오늘날 홍콩 시위를 바라보는 중국 작가 왕지에의 시각적 발언들을 읽어 낸다. 그것은 홍콩에 대한 지지이자 응원이며, 홍콩에 대척하는 중국 정부의 군사적 개입이 일촉즉발인 상황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국에 대한 염려’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영상 작품’과 ‘설치 작품’은 일명 ‘소리 도자기’라 칭해지는, 한 덩어리의 다른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상 작품’은 청(淸)나라 도광(道光) 시기의 ‘청화향항(青花響缸)’이라는 이름의 도자기를 손바닥으로 문지를 때 내는 웅장하고도 요란한 소리를 영상으로 기록한 것이고, ‘설치 작품’은 영상 작품에 사용한 청화자기를 그대로 전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이 ‘청화향향’이란 이름의 자기는, 내부에 물을 넣고 손으로 자기 입구를 문지를 때 공명 현상을 통해 굉음과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해서, ‘소리를 들려주는 도자기’라는 별칭으로 회자된다. 소리를 통한 정화(淨化)와 유희를 동시에 해결하는 이 청화향향은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완구용, 관상용으로 인기를 끌었던 도자기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도자기 이름인 청화향향에서 ‘향향(響缸)’은 글자 그대로 소리 향(響), 항아리 항(缸)이라는 두 글자가 합쳐져서 ‘소리가 나는 항아리’라는 뜻을 지니는데, 도시 ‘홍콩’의 한문적 표현인 ‘향항’(香港)과 발음이 똑같다는 것이다. 즉, 홍콩을 한문으로 표기하면 향기 향(香)과 항구 항(港)이 합쳐져서 ‘향기가 나는 항구’라는 뜻을 지니는데, 청화백자를 지칭하는 ‘향향(響缸)’과 홍콩을 지칭하는 ‘향항(香港)'이라는 두 글자 모두 중국어로 ‘시앙강(xianggang)’으로 발음이 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도자기 ‘청화향향’은 홍콩을 지시하는 지표(index)가 되는 동시에, 홍콩과 청화백자를 하나로 간주하는 메타포(metaphor)로 해석되기에 제격인 셈이다. 달리 말해, 서구에서 중국의 도자기를 차이나(china) 혹은 차이나웨어(chinaware)라고 지칭하고, 중국을 ‘도자기의 나라’인 차이나(China)로 소개했던 역사를 상기한다면, 홍콩과 발음이 같은 청화자기 ‘향향’은 홍콩에 대한 대표적 상징이자 동시에 홍콩의 훌륭한 메타포가 된다. 
그러나 항아리 입구를 손가락으로 강도 높게 마찰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지속하는 3분 길이의 영상 작품을 계속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윙윙거리는 소음에 가까운 공명 소리가 관객의 귀를 거스르고,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비언어의 소음에 가까운 소리이지만 중국 정부에 저항하는 홍콩 시민의 목 놓아 부르짖는 외침으로 비유된다. 왕지에의 진술을 들어보자. 
 
“6월 홍콩에서 한 가지 소리가 났다(나는 그것을 하나의 소리로 간주한다). 나에게 홍콩은 현대의 삶을 여는 하나의 문이다. 80년대 홍콩의 유행 문화의 유입, 그에 따라 세계와 우리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개혁 개방 40년, 중국 본토의 문화 경제 수혜와 홍콩의 발전과 공헌. 오늘날 홍콩의 이러한 목소리는 국가적 의미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하나의 소리로 간주한다.” 

‘홍콩’발(發) 외침의 메시지는 중국 본토의 민초들이 염원하는 메시지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중국 국민 또한 자유, 평화 그리고 인민이 주인이 되는 세계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 본토의 국민은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실마리는 물론 전후 맥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국민의 눈을 막고 귀를 막는 중국 공산 정부의 음험한 은폐 속에서 사실이 왜곡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다면, 중국 본토의 국민도 분명히 홍콩 시민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외침에 동조하고 ‘하나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래서 작가 왕지에는 홍콩 시민의 부르짖는 외침 소리와 항아리 안에서 웅얼거리며 생산되고 있는 소리를 ‘하나의 소리’로 간주한다. 강압 없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적 사회를 건설하려는 홍콩 시민의 외침과 그것을 은폐하여 웅웅거리는 소음으로 만들고 마는 중국 정부의 억압 속에서 현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는 중국 본토의 민초들의 평화를 위한 염원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왕지에, HK, 영상, 184초, 청(淸) 도광(道光)시기 청화향항(淸道光青花響缸), 물, 2019





III. 에필로그 
중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작가 왕지에에게 ‘공산주의는 이상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품어 안는 신앙’과 같은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현재 그는 ‘공산주의의 궁극적인 목표가 중국 국민의 이상과는 거리가 있음’을 고백한다. 작가 왕지에는 귀를 막고 눈을 가리는 중국 정부의 교육에 의해서 ‘판별이 용이한 것을 판별할 수 없었던’ 유소년기와 더불어 머리가 굵어지면서 ‘판별을 해도 감히 말할 수 없었던’ 청년기를 이미 거쳐 어느덧 중진의 세월에 이르렀다. 
이상은 다를지라도, 그에게 중국은 결코 버릴 수 없는 사랑하는 조국이다. 그는 국민의 염원이 ‘하나의 소리’로 모여 변화되는 그의 조국인 중국의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고 희망’한다. 중국인으로서 홍콩 시민들의 시위에 담긴 자유와 민주적 삶에 대한 갈망을 지켜보는 작가 왕지에는 이제 자신의 소리를 더 담대히 내기로 한다. 그렇다. 예술가란 자신이 발 디딘 채 직립하고 있는 현실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또 내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목소리를 내고, 내야만 하는 예술가’ 왕지에는 ‘탁인화’와 ‘청화향향’을 통해서 ‘하나의 소리’를 수렴하고 그의 조국 중국의 빛나는 미래를 상상하며 기대한다. 1978년 덩샤오핑의 지도 아래 추진했던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뿐 아니라, 1990년대 이후 확대된 경제 정책과 더불어 1990년대 중국의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리는데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해왔던 홍콩의 오늘날 상황이 점차 나아지길 간절히 염원하면서 말이다. ●

출전/
김성호, 「홍콩(香港)에 헌정하는 ‘소리 도자기(響缸)’」, 카탈로그 서문, (왕지에展, 2019. 8. 24~9. 11, 갤러리 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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