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심포니 – 공명하는 물의 파동, 공생의 자연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작가 홍나겸은 자연으로부터 소리와 빛을 추출, 채집하고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그릇으로 삼아 자신의 독특한 조형 언어를 담은 미디어아트를 지속해 왔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서울의 한강으로 표상되는 ‘자연으로서의 물’에 집중한 이번 전시가 주목하고 있는 작품 세계는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그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떠한 미학적 함의를 품고 또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가?
강서한강공원습지생태공원, 한강, 서울, ⓒ 홍나겸, 2023
I. 자연으로서의 물 - 한강이 전하는 도심 속 자연의 생태 미학
홍나겸의 이번 개인전은 서울시 시민청의 공모 기획전 ‘웨이브2023 수도 서울‘의 ‘사운드 미디어아트’ 부문에 선정되어 개최한 것이다. 홍나겸은 서울시민청이 내세운 ‘웨이브’와 ‘수도(水道) 서울’-‘수도(首都) 서울’이 아닌-의 물길이라는 한자 의미를 충실히 담은 영문 워터웨이(waterway)’에서 물결로 심화하는 영문 워터웨이브(water wave)를 취하고 그것의 이니셜 W를 핵심 키워드로 삼은 ‘W 심포니’를 전시 주제로 내세웠다. 풀어 말하면 ‘물길과 물결의 심포니’이고 간단히 말하면 ‘물의 심포니’인 셈이다. 홍나겸은 이번 개인전을 통해서 “파동의 에너지가 울려 퍼지면서 모든 생명체의 삶이 하모니를 이루는 자연 원음의 교향곡”을 관객에게 선사하고자 한다.
홍나겸이 서울의 물길과 물결로 주목한 곳은 한강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관통하면서 유유히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 한강이 끼고 있는 한강공원 특히 생태습지공원은 그녀의 미디어아트 구현을 위해 소리와 빛을 채취하기 적합한 대상지이었다. 구체적으로 망원한강공원, 잠실한강공원, 잠실탄천낚시터 및 행주산성 역사공원은 물론이고 강서습지생태공원, 고덕수변생태공원, 암사생태공원 등 생태습지공원은 그녀가 자연의 빛과 소리의 변화를 채집하는 로케이션을 위해 최적화된 현장이었다.
고즈넉한 주위 풍경을 깨뜨리는 한강의 물결 소리와 반짝이는 윤슬, 또는 일출과 일몰로 강변 풍광을 물들이는 빛의 색,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는 바람결과 그것이 스산하게 내뿜는 소리, 바람과 빗방울에 잔잔히 흔들리는 풀잎이 만드는 평화로운 풍광과 그것에 어우러지는 풀벌레들의 바스락거림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작가의 마음을 뺏기에 족하다. 이처럼 홍나겸은 한강 주변에서 발견되는 미시적 세계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통해서 한강이 품은 원초적 생명 에너지와 물이 함유한 무경계의 생명성을 탐구함으로써 한강, 나아가 자연의 근원적인 물성이 무엇인지 표현하고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홍나겸의 이번 개인전은 한강이 전하는 도심 속 자연의 생태 미학이 무엇인지를 사유할 뿐만 아니라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 문명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 관한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관객에게 제안한다.
따라서 홍나겸이 선보인 전시, 《W 심포니》는 한강으로 표상되는 ‘자연으로서의 물’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이다. ‘자연으로서의 물’이라니? 이것은 ‘한강 〈 물 〈 자연’처럼 한강에서 출발한 물이 넓게는 자연의 부분이기에 ‘한강=물=자연’처럼 물을 자연과 등가의 존재로 보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유한다. 이것은 빵이 곧 식량이고, 백발이 곧 늙음이라는 비유처럼, 물이라는 부분을 통해서 자연 전체를 이야기하는 제유법(提喩法)적 전략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즉 홍나겸은 이번 개인전에서 ‘물’이라는 보조관념에 집중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탐구하려는 ‘자연’이라는 원관념에 대한 근원적 성찰에 한 걸음 더 다가서고자 한다.
주지하듯이, ‘물’이란 화학적으로는 산소와 수소의 결합물이다. 즉 물이란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로 구성된 H2O의 물 분자들이 무수히 뭉쳐서 액체 상태로 응집이 된 물질이다. 상온에서 무색, 무취, 무미의 특징을 지닌 까닭일까? 물은 여러 가지 물질과 결합하는 용매(溶媒)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도맡는다. 다른 물질과 달리 커다란 극성을 가진 유극성 용매(polar solvent)인 까닭이다. 분자 내부에 고정적으로 전기 쌍극자를 갖는 이러한 극성 용매는 용질을 쉽게 받아들여 자신의 정체성을 유연하게 변화시킨다. 예를 들어 용매로서의 물이 소금, 설탕이라는 용질을 취해 만든 소금물, 설탕물은 원래 물의 속성인 ‘무미’를 변화시킨다. 찻잎이라는 용질을 취한 물이 ‘무취와 무색’를 벗고 우리에게 전하는 갖가지 향취나 안료라는 용질을 취한 물이 ‘무색’을 벗고 우리에게 전하는 오색찬란한 발색의 효과는 또 어떠한가? 그만큼 물은 넉넉한 자연의 본성을 품어 안으며 자연의 위상을 대리한다.
게다가 물은 바닷물, 강물, 지하수, 우물물, 온천수뿐만 아니라 수증기, 비, 눈, 빙원(氷原) 등 다양한 형태로 지구상에 존재한다. 또한 얼음이라는 고체와 수증기라는 기체의 상태를 오가는 중간계에서 자연의 순환 미학을 어떤 물질보다도 효과적으로 잘 드러내기도 한다. 그뿐인가? 생명체의 체액 및 혈액으로 스며 들어간 물은 생물체 중량의 대다수(인간 70%, 어류 80%, 미생물 95%)를 차지하고 지구 표면적의 3/4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물=자연, 달리 말해 물이 곧 자연이라는 제유의 생태 미학을 너끈히 실천한다.
그렇다. 물은 기체와 고체 사이를 오가며 변신하는 물리학적 변화의 주체이자, 다수의 용질을 가리지 않고 만나 제 몸을 뒤섞는 마음 넓은 용매이다. 또한 물은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몸을 싣고 순환하는 자연의 정수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홍나겸의 작업에서, ‘자연으로서의 물’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한 채 순환의 흐름을 지속하는 운동체로서, 가히 도심 속 자연의 생태 미학을 드러내는 적극적 주체라고 표현할 만하다.
II. W 심포니 – 공명하는 ‘춤, 빛, 화음’
홍나겸의 개인전 《W 심포니》는 물길(waterway)과 물결(water wave)의 내용과 형식을 아우르는 오디오비주얼의 미디어아트를 선보인다. 비디오 영상뿐만 아니라 사운드가 주요한 지점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관현악(orchestra)으로 연주되는 다악장 형식의 교향곡’으로 풀이되는 음악 용어 심포니(symphony)를 전시의 주제어로 제시했다. 따라서 ‘W 심포니’를 간단히 풀어 말하면 ‘물길과 물결의 교향곡’이라고 할 수 있겠고, 또 달리 말하면, ‘물길과 물결을 시각화, 청각화한 여러 악장으로 구성된 소나타 형식의 교향곡 같은 분위기의 미디어아트’라고 풀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왜 심포니인가? 영어 심포니는 이탈리아어 신포니아(synfonia)에서 유래한 것으로 17세기에 주로 축제의 도입 음악과 오페라의 서곡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점차 독립된 연주회용 신포니아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기에 이르렀고 18세기 후반에 교향곡의 형식을 갖추고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신포니아의 어원인 그리스어 심포니아(symphonia)는 원래 “다양한 음들이 함께 울린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말로, “동시에 울리는 음 또는 완전협화음”을 의미했다. 의미의 핵심을 한마디로 언급한다면 ‘하모니(harmony)’인 것이다.
홍나겸의 개인전 ‘W 심포니’는, 실제의 심포니가 대개 3~4개의 커다란 악장으로 구성되고 그것의 1악장 이상은 소나타 형식을 취하는 특징을 반영하듯, 터널처럼 기다란 ‘서울시민청 소리갤러리’ 공간을 순차적인 동선에 따라 마치 악장 구성처럼 세 파트로 구획했다. ‘Part I. 물은 춤’, ‘Part II. 물은 빛’, ‘Part III. 물은 화음’이 그것이다. 여기서 관객은 ‘춤(공감각, 2채널 비디오 + 5채널 사운드) - 빛(시각, 2채널 비디오 + 5채널 사운드) - 화음(청각, 1채널 비디오 + 2채널 사운드)’으로 연결되는 독특한 악장의 형식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물=춤, 물=빛, 물=화음’이라는 ‘자연으로서의 물’이 전개하는 순차적인 내용의 스토리텔링을 만나게 된다. 그 형식과 내용이 무엇인지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Part I. 물은 춤 : 기다란 터널과 같은 전시장 초입에 마련된 ‘대칭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두 개의 스크린’에 투사되고 있는 것은 홍나겸이 한강 생태공원에서 채집한 사운드와 비디오를 믹싱한 영상이다. 이 작업은 오래된 수령의 나무들이 강가로 몸을 드리운 채 나뭇잎을 길게 늘어뜨린 장면을 중심으로 한강 변의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평화로운 자연 이미지와 더불어 출렁이는 물결 소리,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 청아하게 지저귀는 새소리, 잔잔한 풀벌레 소리 등 현장감 넘치는 사운드가 혼성된 그녀의 쌍방향 영상은 그 자체로 자연을 옮겨 놓은 것만 같다. 실감 나는 오디오비주얼과 공감각적 체험을 도모하는 연출로 인해, 관객은 도심의 전시 공간에서 익숙한 자연을 낯설게 맞닥뜨리는 놀라운 경험을 체험하기에 이른다.
Two-Channel Video Installation, With Five-Channel Sound, Full HD, 4120X2200
Pixels, Color, 48000 kHz 12min 30sec, Loop, 2023.
Part II. 물은 빛 : 영상 터널을 지나 안착한 중간 존에서 한쪽 벽면과 바닥에 함께 투사하는 ‘같은 듯 다른 영상’은 홍나겸이 한강의 일렁이는 물결을 가까이 포착해서 촬영한 영상이다. 주위의 풍경을 밀쳐 내고 한강의 수면에 집중한 이 영상은, 바람의 세기에 따라 달라지는 물결의 다양한 일렁임과 그 형상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여 선보인다. 물결의 일렁임이 전하는 에너지의 파동, 매번 달라지는 물결의 표면이 반사하는 다양한 빛의 색, 그에 따른 신비로운 윤슬의 반짝임과 같은 시각적 효과는, 관객을 두려운 경외감이 깃든 숭고미뿐만 아니라 추억을 소환하는 잔잔한 명상의 세계로 이끌기에 족해 보인다.
Two-Channel Video Installation With Five-Channel Sound, Full HD, 2720X2000 Pixels,
Color, 48000 kHz, 12 min 30 sec, Loop, 2023.
Part III. 물은 화음 : 터널과 같은 전시장 끝 벽면의 작은 스크린에 홍나겸은 녹음이 우거진 숲의 풍경과 함께 그것을 배경으로 한 채 꽃가루가 눈꽃처럼 날리는 서정미 가득한 풍경을 선보인다. 이 파트는 이러한 평화로운 자연 이미지와 더불어 파트 1부터 파트 3에 이르는 공간에서 지속되고 있는 소리 간섭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청각적 작업에 집중한다. 빛의 흐름과 바람, 공기, 물이 한강 변의 풍경과 상응하면서 만드는 사운드가 소제목처럼 화음(harmony)을 이루도록 각별히 신경을 쓴 작가의 수고스러운 노력을 엿보게 한다.
Single-Channel Video Installation With Two - Channel Sound,
Full HD, 2210X1240 Pixels, Color, 48000 kHz 15min, Loop, 2023.
이처럼, 홍나겸은 ‘물’이라는 주어를 내세워 각 파트마다 그 결론을 내리고 있는 ‘물은 춤, 물은 빛, 물은 화음’이라는 세 주제어와 그것에 부합하는 영상 작업을 통해서 이번 개인전 ‘W 심포니’가 함유하는 생태학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우리는 그것을 ‘공명하는 춤, 빛, 화음’이라고 정의해 볼 만하다. 간단히 ‘맞울림’이라는 말로 대치되기도 하는 공명(共鳴)은 “진동계가 그 고유 진동수와 같은 진동수를 가진 외력을 주기적으로 받아 진폭이 뚜렷하게 증가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진동수가 같은 소리굽쇠를 나란히 두고, 한쪽을 때려 소리를 내게 할 때 옆에 있던 소리굽쇠도 잠시 뒤 울리게 되는데 이것은 공기를 매체로 한 공명 현상 때문이다. 이처럼 양쪽 진동수가 같으면 공명에 의해서 에너지를 서로 쉽게 교환한다고 할 때, 우리는 홍나겸의 ‘W 심포니’가 추구하는, 자연의 약한 부분과 개체가 서로 합쳐 만드는 하모니와 공명의 효과를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다. 심포니의 어원이 “동시에 울리는 음 또는 완전협화음”으로부터 기인했음을 상기해 본다면, 그녀의 개인전 ‘W 심포니’는 자연의 개별체들이 협화음을 이루는 세계, 즉 ‘공명하는 생태적 질서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III. 파동의 심포니 - 미디어아트로 탐구하는 공생의 생태미학
이 글에서 필자는 홍나겸의 ‘W 심포니’를 ‘파동(波動)의 심포니’로 해설하고자 한다. 이러한 해설은, 그녀가 전시에서 ‘물길과 물결’을 함께 시각화하려고 골몰하는 것과, 파동 자체가 웨이브(wave)로 번역되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일정 부분 타당하다. 따라서 앞 장에서 해설한 ‘공명하는 춤, 빛, 화음’의 개념은 이 장에서 ‘파동을 만드는 춤, 빛, 화음’으로 확장한다.
주지하듯 파동은 파장(波長, wavelength)이 모여 만드는 움직임이다. “같은 위상을 가진 서로 이웃한 두 점 사이의 거리 혹은 주어진 시각에 같은 모양이 반복되는 최소 길이”를 파장이라고 할 때, 파동은 “어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파장들의 연속을 만들면서 에너지를 전달하는 운동”이다. 파동은 빛, 소리, 전자와 같은 존재가 공기, 진공, 물, 사물과 같은 다양한 매질을 거쳐 전달되면서 에너지의 진동하는 움직임을 만든다. 작가 홍나겸이 ‘빛’뿐만 아니라 ‘춤’(빛과 소리가 연동하는 개념의 은유)과 ‘화음’(소리의 지속이 만드는 상응과 조화)과 같은 키워드로 제시한 개인전 《W 심포니》는 이러한 차원에서 ‘파동의 심포니’라고 할 만하다.
홍나겸의 작품에 나타난 물결을 보라! 그곳에는 골과 마루와 같은 대립적 요소들이 연속적으로 중첩되면서 물이라는 자연 사물을 동물이나 식물과 같은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로 만들어 나간다. 강의 물결이 만드는 파동은 피상적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골과 마루라는 네거티브와 포지티브가 끊임없이 부딪히는 ‘정중동(靜中動)’의 쟁투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그녀가 탐구하는 워터 웨이브를 ‘마음의 파동, 혹은 마음의 결(mind wave)’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겠다. 우리의 ‘마음결’이 희로애락의 상반된 감정들이 끊임없이 생채기를 남기며 싸우는 운동 과정에서 남긴 흔적인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홍나겸의 ‘W 심포니’, 달리 말해 ‘파동의 심포니’는 한강의 물결과 같은 ‘보이는 것’의 운동을 탐구하면서도 인간의 마음결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성찰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다.
한편, 이번 개인전에 특별히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의 영상 작업은 강물과 빛, 소리, 운동과 같은 자연의 정수를 모델로 삼아 자연의 원형과 생태성을 탐구하면서도 자연과 자연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은유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공존과 공생(共生, symbiosis)의 생태미학을 드러내고자 한다.
공생의 생태미학이라니? 공생이 “서로 다른 종의 개체들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할 때, 홍나겸이 그리는 공생의 생태미학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생물학적 개념의 상리공생(相利共生)’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어찌 서로에게 이익만 주는 관계가 있을까? 자연을 정복한 이래 인간은 자기에게 많은 부분 이익이 되는 편리공생(片利共生)의 입장에서 동식물을 대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홍나겸은 질문한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서, ‘한쪽이 늘 손해를 보는 편해공생(片害共生)’의 입장을 취하면 안 되는 것일까? 환경 대재난의 시대에서 이제 인류는 공생의 생태미학을 실천하기 위해서 ‘인간 중심주의’와 ‘인간 중심주의 환경 결정론’에 대한 반대에 나설 필요가 있다. 생태철학자 캐럴린 머천트(Carolyn Merchant)가 언급하는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이나 정신생태학(Spiritual ecology)의 관점이 그러한 것이다. 전자가 자연에 대한 ‘인간 중심주의 환경 결정론’을 반대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공생과 통합’을 지향한다면, 후자는 ‘전체 우주의 상호 연관성, 지구에 대한 경외심, 모든 창조물에 대한 인식’과 같은 자연에 대한 종교적, 영적, 정신적 인식에 기초한 윤리적 생태학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아서라! ‘자연과 인간의 공생과 통합’이란 이기적인 인간에게 요원할 일일 수 있다. 홍나겸은 실천 자체가 어렵지만 이러한 공생의 생태미학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안다. 실천은 생각이 낳은 결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는 실천은 사유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사유는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가 언급하는 ‘살의 전환성(réversibilité de la chair)’ 혹은 ‘키아즘(chiasme)’과 같은 것이리라. ‘서로 대립되는 두 항을 엇갈려 교차 배치하는 수사법’인 키아즈마(chiasma)를 실천하는 키아즘이란 주체와 대상 사이의 교차, 전환성을 실행하면서 상호작용과 소통의 세계를 구현한다. 따라서 키아즘의 세계에서 자연을 늘 대상으로 보았던 인간의 위상은 역전되고 재편된다. 즉 키아즘의 사유에서, 인식의 주체는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무엇보다 상호작용의 세계관이 주요하게 부상한다. 인간의 몸 혹은 ‘살(chair)’만이 아니라 사물에도 살이 존재하며 세계는 이러한 ‘자연 사물의 살’로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퐁티의 철학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더 이상 인식 대상이 아닌 소통하는 또 다른 주체가 된다.
공생의 생태미학에 골몰하는 홍나겸의 작업은 미디어아트를 통해서 이러한 퐁티의 키아즘을 실현하고자 부단히 애를 쓴다. 그녀의 작업은 자연의 이미지를 상상으로 왜곡하고 변형한 표현에 힘쓰기보다, 비교적 야생의 모습을 많이 간직한 자연 현장으로 들어가 ‘자연 사물의 살’을 채취하고 ‘실재하는 자연’을 재현하는 데 더 집중한다. 이때 커다란 마이크와 무거운 촬영 장비와 같은 첨단의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인간이 보는 방식’을 돕는 장치로 기능하기보다 ‘자연이 보는 방식’을 이해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살의 키아즘’이라는 퐁티의 사유를 실천하려는 듯, 그녀는 ‘보이는 대상’으로서가 아닌 ‘보는 주체’로서의 자연의 입장에 들어가, 자연이 보고 인식하는 방식을 경험하고자, ‘자연 사물의 살’ 또는 ‘자연 실재’를 오랜 시간 동안 롱테이크 방식으로 기록하고 또 기록한다.
여기에 수많은 로케이션을 위한 발품과 수고스러운 노동은 이러한 작업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오랜 시간 동안 촬영한 영상과 채록한 사운드를 스튜디오에서 지난한 노동을 투여해서 편집하고 여러 버전으로 정리하는 일 또한 ‘자연이 보는 방식’을 더욱더 이해하는 데 있어 긴요하다. 로케이션에서 보이지 않던 것을 비로소 새롭게 볼 수 있게 되는 후속 작업인 까닭이다. 따라서 이글은 그녀의 작업을 ‘자연 사물에 내재한 살의 키아즘’과 ‘공생의 생태미학’을 탐구하는 미디어아트로 정의하고자 한다.
홍나겸, W심포니, 17 Screen, video Installation, H265, 48Ki
IV. 에필로그
인간 중심주의를 떨치고 자연의 입장에서 ‘자연의 소리내기와 보기’를 소개하려고 부단히 애썼던 홍나겸의 전시 《W 심포니》는 2023년 12월에 대규모의 단일 작업 〈W 심포니〉로 통합, 확장되어 대중에게 전격적으로 소개되었다. 《2023서울미디어아트위크(Seoul Media Arts Week, SMAW)》에 출품작으로 선정되어 삼성동 무역센터 일대 옥내외 미디어 71기에 그녀의 또 다른 작품 〈ONE〉과 함께 동시에 소개된 것이다. 홍나겸은 이 행사 첫날인 ‘서울문화재단 DAY’에 참여하는 5명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옥외 지상 17기에 〈W 심포니〉와 옥내 지하 54기에 〈ONE〉을 선보였다. 특히 작품 〈ONE〉은 ‘강원도의 산불과 자연 재난으로 동해안까지 떠내려온 거대한 나무에서 포착한 영롱한 윤슬의 아름다움’을 주요 소재로 삼아, 인간의 욕망이 야기한 자연 파괴, 자연의 생태적 복원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이라는 주제 의식을 탐구하는 영상 작업이었다. 홍나겸의 두 작업은 이제 도시 문명의 공간으로 깊이 들어와, 인간과 상호 작용하는 또 다른 소통의 주체로서 자연의 본성을 드러내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이라는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전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글을 마무리하자. 홍나겸의 개인전 《W 심포니》는 ‘물은 춤, 물은 빛, 물은 화음’이라는 세 파트의 작업을 묶어 ‘다양한 것이 함께 어우러지는 심포니’로 대비한 작업이다. 홍나겸은 이 전시를 위해, 한강 생태공원 및 시민공원을 찾아 ‘자연으로서의 물’의 의미를 추적, 채집하고 ‘한강이 전하는 도심 속 자연의 생태미학’이 무엇인지 탐구했다. 아울러 ‘인간 중심주의’를 탈주한 ‘자연 중심주의’의 입장에 서서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의 보는 방식에 주목하고자 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홍나겸의 전시 《W 심포니》는 ‘물의 길’과 ‘물의 결’이 전하는 파동과 공명의 작용이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작가 스스로 ‘자연이 되어 소리를 내고, 세계를 보는 방식’에 관한 답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홍나겸의 작업은 이제, 발전적 작업을 위한 새로운 버전의 변곡점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설명할 장이 부족하지만, 아래의 작가 노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그것은 분명코 ‘인간과 자연의 공생 그리고 생태미학’에 관한 것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저는 자연을 포착하기 위해 자연의 일부가 되어 긴 시간 동안 렌즈와 마이크를, 세상을 향해 열어두는 방식으로 작업을 합니다. 저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오랜 시간 기다리고 대화하는 이 방식은 ‘롱테이크’라는 ‘시간의 길이를 지닌 시각적인 이미지’로 구현되는데요.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제가 자연에서 느낀 ‘시간’과 ‘공간’의 연장선에 두고자 함이며,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자연과 나 그리고 작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기 위함입니다.”
(20240325)
출전 /
김성호, 「W 심포니 – 공명하는 물의 파동, 공생의 자연」, 『홍나겸』, 카탈로그, 2024.
(홍나겸 개인전 – W 심포니, 2023. 07. 03~09. 30, 서울시청 시민청 소리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