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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속에서 예술가를 말하다_다니엘 크리사『방황하는 아티스트에게 CREATIVE BLOCK』

윤지수

『방황하는 아티스트에게 CREATIVE BLOCK』-다니엘 크리사, 아트북스』

 

무의미의 축제 속에서 예술가를 말하다

 

무의미의 의미
인생은 가치 있는 일을 찾는 여정인 동시에 하찮은 것과 함께하는 여정이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를 하찮게 여긴다. 심지어는 강아지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 상황은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쓸모 있게 느껴지지 않을 때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예술가의 경우는 어떠할까? 창작을 생명으로 하는 예술가는 창작의 신작로를 벗어나 길을 잃을 때, 자신을 하찮게 느낀다. 그리고 스스로가 훌륭한 작가인지 의문을 품을 때나 완성한 작품이 형편없을 때 자신을 발톱의 때만도 못한 존재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이러한 무가치함을 인정해야 한다. 늘 영감이 떠오를 수는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매일같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과정을 사랑해야 한다.

 

‘창작의 벽’, 이 짓궂은 존재에 대하여
우리 모두는 창작을 할 때, 창작과 등을 대고 선 둔탁한 벽을 만나곤 한다. 이 벽은 무엇인가? 창작 과정에서 불쑥불쑥 침입하여 우리 생각에 급브레이크를 밟는 존재이다. 이 존재는 너무나 짓궂어서 우리의 생각을 갉아먹는 것 이상의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희망에 부풀어있을 때는 희망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자꾸 우리의 생각을 과거에 머물러있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짓궂은 존재로 인하여 자신이 정말 재능이 있는 작가인지 계속해서 스스로 물어보고 자신을 질책한다. 그리고 창작이 벽에 막힐 때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곤 한다.
  저자 다니엘 크리사(Danielle Krysa)는 자신이 예술가로써 질투하는 예술가 50인을 책에서 소개한다. 저자는 이들을 ‘창작의 벽 극복 프로젝트’라는 동일한 주제로 인터뷰하고 책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50인의 예술가들은 작품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잘 풀리지 않을 때의 생각, 그리고 그 해결책을 이야기 한다. 이들은 국적, 성별, 출신 학교, 자신의 작품세계, 그 모든 것이 제각각 다르다. 그러나 창작의 벽에 늘 부딪힌다는 사실만은 같다. 우리는 책에서 이들이 ‘창작의 벽’에 부딪힐 때의 대처법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질문1. 창작의 벽, 존재 탐구 신호의 매개체
모든 사람은 단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고군분투를 한다. 그 질문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이다. 필자는 인생을 이렇게 정의내리고 싶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답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따라서 스스로의 상像을 만들고 그 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개인의 몫일 것이다. 자신을 예술가라고 정의내리고 그 길을 걷기 시작하더라도 훗날 내가 계속 예술가일지는 알 수 없다. 예술을 하는 과정 중에 신호가 울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를 다시 탐구하라는 신호이다. 이 신호는 창작이 벽에 막힐 때 찾아오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창작의 벽과 마주할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예술가인가?”라고. 나는 이 질문으로 기존에 내가 정의 내렸던 나의 존재를 재설정하게 된다. 혹은 내 존재가 더 확고해 진다. 

 

 



 

질문2와 3. 창작의 벽, 자존감, 질투 그리고 예술적 성공.
필자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부류는 기준을 세상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두 번째 부류는 기준을 자기 자신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전자는 세상이 어느 면에서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에 순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자존감이 낮다. 자신의 내면이 굳건하지 않기에 바다에 표류하는 배와 같다. 기준을 세우기 위해 바다에 닻을 던지지만 고정되지 못하고 늘 파도에 의해 흔들린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내면의 의지에 따라 산다. 이런 사람은 자존감이 높다. 이들은 세상과 내면의 의지가 충돌할 때 자신의 목소리를 따른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을 잃지 않도록 세상과 싸우기도 한다.
  세상에 기준을 두는 사람은 남과 다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그래서 그들은 훌륭한 작가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그들을 질투한다. 그리고 그들은 예술적 성공에 목을 맨다. 예술가의 길을 걸어 나가는 과정에서 가끔 보상처럼 따라오곤 하는 예술적 성공을 그들은 전부로 여긴다. 또한 종종 찾아오는 창작의 벽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들은 누구나 마주하는 창작의 벽을 자신에게만 오는 시련이라고 느낀다. 그들에게 창작의 벽은 자신을 더욱 절망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기준을 두는 사람은 바깥에 눈치를 보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생각에 의지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도 물론 다른 작가들을 질투한다. 그러나 그 질투는 그들에게 긍정적인 촉매제로 작용한다. 그들은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을 보고 영감과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작품을 더욱 뛰어난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예술적 성공보다 스스로가 계속해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그냥 꿋꿋이 자신이 하던 작품 활동을 계속 해나간다. 그들에게는 창작의 벽이 창작 과정에서 당연히 만나야 하는 존재이다. 그들은 창작에서 마주하게 되는 벽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하찮음, 그것의 중요함에 대해서
배꼽이라는 존재에 주의를 기울여본 적이 있는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난 이래로 변하지 않았을 신체구조를 꼽는다면 그것은 배꼽이기 때문이다. 변하는 것에는 눈길이 쏠리기 마련이다. 변화는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배꼽은 변화하지 않기에 우리에게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
  그런데 소설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4.1.~)는 이렇게 존재함에도 그 존재가 인식되지 않는 배꼽을 그의 책 「무의미의 축제」에 첫 장부터 등장시킨다. ‘알랭은 배꼽을 곰곰이 생각한다.’ 가 그의 책 첫 장의 제목이다. 배꼽은 주인공이 자신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도 곰곰이.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밀란 쿤데라-「무의미의 축제」 中

 

  『방황하는 아티스트에게 CREATIVE BLOCK』는 가볍고 단순하다. 필자가 위에서 말했듯이 저자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작가 50인을 뽑았고 그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이 자신을 예술가로 느끼는지에 대해서, 창작의 벽을 마주하는 순간에 대해서, 그리고 창작의 벽을 극복하는 방법에 관해서. 그리고 그 내용을 엮어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필자는 이 책이 그래서 좋았다. 필자는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작가들에게 던진 질문을 곱씹어 보았다. 저자의 질문은 하찮았다. 그러나 필자는 하찮기 때문에 좋았다. 하찮은 것은 매 순간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이며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질문은 우리가 예술가의 길을 걸어 나갈 때 늘 스스로에게 던지게 될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존재를 재탐색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우리의 존재를 더 확고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저자의 하찮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서 하찮음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필자는 50인의 작가들의 이야기로부터 “창작의 벽이란 창작과정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것이므로 그것과 마주했을 때 낙담하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들었다. 우리는 이 메시지를 통해 다소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창작의 길을 걷는 것은 어렵다. 창작의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엔 이 불청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한다. 필자는 무가치함을 포용하고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예술이고 삶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의 예술적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리고 삶의 본질에 더욱 접근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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