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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본 미술, 미술을 사랑한 경제_최병서『경제학자의 미술관』

윤지수


『경제학자의 미술관』-최병서』


 

경제로 본 미술, 미술을 사랑한 경제

 

만남
우리에겐 각자의 고유성이 있다. 개인마다 외모나 성격이 다르고 생활하는 방식과 영역도 각기 다르다. 우리는 각각 하나의 점이 되어 자신만의 공간속에 존재한다. 그 공간들이 모여 만나면 씨줄과 날줄이 되는데 교차하는 씨줄과 날줄이 많아지면 짜임새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이다. 우리는 개인만의 공간에 존재하지만 사회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다른 이들과 교감한다.
  우리의 일상에는 수많은 인연이 모이고 흩어진다. 김환기金煥基(1913~1974)는 그의 작품〈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서 점과 네모난 공간으로 우리의 삶을 이야기 한다. 점들은 각각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이는 우리와 꼭 닮았다. 우리처럼 고유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점마다 고유성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같으면서도 다른 만남 때문이다. 점을 그릴 때 붓, 물, 물감 그리고 종이가 만나는데, 이 네 가지 요소는 똑같이 만나지만 똑같이 만나지 않는다. 점이 그려질 때마다 붓에 묻는 물감의 양과 수분의 양이 다르고 그 붓과 종이가 만나는 지점 또한 다르다. 그리고 종이의 얽히고설킨 표면에 물감과 물이 차지하는 자리도 다르다. 그렇게 때문에 각기 다른 점들은 개성을 가진 독특한 존재가 된다.
  필자는 화가의 작품에서 우리의 인간사를 읽어냈다. 우리도 점처럼 각자가 다른 만남을 경험하기 때문에 모두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각기 다른 개인이 만나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형성하기 때문에 모든 순간이 다른 것이다. 이 세계는 장구한 역사 속에 단 한명도 같은 사람이 없었고 같은 시대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만남 때문이다.  
                                     

 

가만히 작품을 들여다보자. 무수히 많은 점을 훑어보면 한 점에서 눈길이 멈출 것이다. 그 점과 대화를 시도하자. 점과 나의 교감이 느껴지는가? 필자는 느꼈다.
  저렇게 많은 점 중에 하나와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한명이 서로 쳐다보고 대화를 나눈다. 점과 나는 어떠한 인연으로 만났을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궁금해 하지만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우리가 닮았다는 것을. 닮았기에 서로가 눈길을 주고받고 닮았기에 교감할 수 있다.

 

경제학과 미술의 만남
경제학자인 저자는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하는 지적 흥분을 가끔 체험한다고 한다. 두 학문이 만나는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경제학과 미술은 교감할 수 있다. 전혀 다른 두 학문의 교차점은 무엇일까. 필자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교차점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 아름다움을 향유하고자 하는 차원 높은 노력
둘째, 현재에 맞닿아 있는 학문
셋째,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

 

첫 번째 교차점- 아름다움을 향유하고자 하는 차원 높은 노력
인간의 영혼에는 아름다움을 향한 본능이 잠재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계속해서 추구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처음엔 반짝였던 것도 일상이 되면 그 반짝임의 빛은 꺼진다. 이성복李晟馥(1952~) 시인의 에세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일상적인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1).”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료함을 느낀다. 아름다움이 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일상을 벗어나려고 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여행을 가고 좋은 전시회를 보러 가고 음악회에 가는 노력을 통해 무뎌진 것을 날카롭게 만들고자 한다. 이러한 것은 우리를 안전의 세계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의 세계, 그리고 느낌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플라톤의 『향연Symposion』에는 아름다움의 단계가 나온다. 가장 기본단계는 이성에게 느끼는 육체적 아름다움이다2). 그보다 상위에는 영혼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더 높은 단계의 아름다움은 앎의 세계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 고차원적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 일평생을 바친다.
  경제학자와 예술가는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경제학자는 경제학이라는 이론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해 고심한다. 이들은 경제 현상을 관찰하고 일관된 법칙이나 논리체계를 발견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3).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된 경제 현상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경제학자를 탄생시켰고 역사 속에서 그들은 다양한 경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분투해왔다4). 그들의 경제학에 대한 집념은 다양한 이론을 만들었고 많은 경제문제들을 해결했다.
  한편, 예술가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창작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과 마주하는 훈련을 통해 내면에 잠재된 생각들을 꺼낸다. 그리고 그것들을 표현한다. 표현을 통해 세상과 내가 만나는 지점을 계속해서 설정해나간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때론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빚어낸 결과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기 때문에 값지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와 만나는 기회의 장을 열어준다.   

 

바그너: 오, 맙소사! 예술은 길고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비판적인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때면, 종종 머리와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을 터득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요!
그 길을 절반도 채 가기 전에 저 같은 멍텅구리는 죽어버리기 십상이겠죠.
(괴테의『파우스트』중에서)

 

『파우스트』에 나온 이 대사처럼 앎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어려운 여정이다. 어쩌면 지식을 얻기 전에 삶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여생을 바쳐 이러한 길을 걷는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결과물이 너무나 매혹적이어서는 아닐까. 

 

두 번째 교차점- 현재에 맞닿아 있는 학문
경제학은 가장 우리의 현실과 닿아있는 학문이다. 경제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양한 경제 현상을 설명하고 경제 현상이 현실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더불어 내가 느끼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중국 농민공의 빈곤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빈곤이 내 현실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입문서’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인기를 얻고 있는 조정래趙廷來(1943~)의 『정글만리』에는 농민공 부부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가난 그리고 이로 인한 남편의 자살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이 부부를 통해 중국 하층민의 장인정신과 그 장인정신이 이룬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이야기 한다. 실제로 중국이 세계 경제학자들의 예상을 뒤집고 40년이나 빠르게 G2가 된 것은 농민공의 덕일 것이다. 그들의 노동력과 장인정신이 이와 같은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다5).
  농민공의 노동력은 중국을 G2로 만들었다. 그래서 중국은 세계 경제에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인 관광객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국제적 차원의 경제문제는 국가에 영향을 미치며 더 나아가 개인의 사회·경제·문화 활동까지 지배한다. 따라서 경제학은 가장 나와 먼 것 같지만 가장 나와 가까이 있는 학문이다.
  예술도 마찬가지로 현재와 맞닿아있다. 예술가는 자신이 현재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작품에 담는다. 순간을 영구히 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 작품이다. 따라서 작품은 예술가의 현재를 포착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작품이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감상자와의 소통이 필요하다. 예술가와 작품 그리고 감상자가 같은 코드로 동일선상에서 소통할 때 작품은 비로소 가장가치 있다고 인정받는다. 따라서 감상자와의 소통이 언제 이루어지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감상자의 현재와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교차점-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
필자는 모든 창조는 애정 어린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들 수 있다. 그는 백성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쉽게 쓸 수 있는 문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이 한글이라는 글자의 창조로 현실화 되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혹은 남에 대한 사랑이 있을 때 더 나은 생각을 하고 그 나은 생각은 창조를 만든다. 사랑하다의 어원이 사량(思量)인 것을 보면 사랑하기에 생각하고 생각하기에 사랑함을 알 수 있다.
  경제학과 예술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경제학은 어떻게 하면 나와 우리 가족이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범위가 커지고 세분화되면서 더 큰 경제문제를 해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금까지 국제적 차원에서부터 개인적 차원까지 다양한 범위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이론이 만들어졌다.  
  예술 활동은 나를 표현하는 것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은 나에 대한 사랑이 남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미술을 보다  
이 책은 미술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학 서이다. 경제학자인 저자의 독특한 역할은 책이 속한 지점의 경계를 흐린다. 필자는 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경제학과 미술의 만남을 어떻게 풀어냈을까? 그의 역할에 따라 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나뉜다.

 

<첫 번째 역할 - 있음을 ‘있는 것’으로 변모시키다. >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976)는 ‘있음’과 ‘있는 것’의 차이를 주장했다. ‘있음’은 모든 ‘있는 것들’ 보다 우선하는 토대이지만 우리에게 ‘있음’은 반드시 ‘있는 것’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때론 ‘있는 것’이 사라지면 ‘있음’도 함께 사라진다고 착각 한다6).
  첫 번째 두 번째 챕터는 미술작품을 통해 본 경제학 이론을 다룬다. 저자는 있음을 있는 것으로 변모시키는 과정을 통해 경제학과 미술이 만나 교감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 둘의 교감지점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 그 교감지점은 있다. 그는 경제학자의 시선을 통해 그 교감지점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의 글을 통해 우리가 생각지 못한 교차점이 있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1) 점묘파와 완전경쟁시장
저자는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보고 점묘파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는 점묘파 화가들이 점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 이유와 점묘파 기법의 장점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점묘파 작품을 통해 완전경쟁시장과 개별 기업을 떠올린다. 쇠라Georges Pierre Seurat(1859~1891)의 그림에서 한 개의 독립된 점은 경제학에서의 개별 기업과 같고 한 폭의 그림은 경제학에서의 완전경쟁시장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경제학과 미술의 교감지점을 발견해내고 이를 자신의 시선을 통해 드러낸다.
 

2) 초현실주의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저자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1898~1967)의 초현실주의에 대해 말한다. 초현실주의의 탄생배경과 그들의 목표지점을 설명한다. 특히 그는 마그리트에 주목한다. 추상적인 느낌의 작품을 추구했던 초현실주의자와는 달리 마그리트는 구체적인 사물을 활용했다. 대신 그 사물을 ‘데페이즈망 기법’, ‘고립’, ‘이미지의 중첩’과 같은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낯선 무언가로 만든다. 저자는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한 것이며 이러한 시도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초현실주의기법의 작품을 보고 애덤 스미스Adam Smith(1723~1790)의 ‘보이지 않는 손’을 연상한다. 보이지 않는 의미를 보려했던 미술적 시도와 ‘보이지 않는 손’이 교차함을 느낀 것이다. 
 

 

 

<두 번째 역할- ‘있는 것’을 보여주다.>
마지막 챕터는 미술과 경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미술 산업은 경제적으로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할까? 미술에 자본이 투자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저자는 책을 통해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미술과 경제학이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말한다.

 

3) 대량생산과 상업미술가
자본주의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생산비용은 계속해서 하락했다. 그러나 예술의 경우 대량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인 공급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예술을 자본주의적 가치와 연결 지어 작품을 만든 작가들이 있다.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1472~1553)와 앤디워홀Andy Warhol(1928~1987)이다. 루카스 크라나흐는 고객의 주문을 받으면 원하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업했다. 그리고 공방 체제를 유지하여 그림을 생산하였으며 고객 관리도 철저히 했다. 앤디워홀은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하여 작품을 대량으로 찍어냈다. 그리고 공장을 세우고 조수들을 시켜 다량의 작품을 빠르게 만들어냈다. 그의 작품은 20세기 미국의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부합했다. 따라서 그는 미국적인 작가라고 평가되었다. 

 




 

만남과 인연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은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녁에」 김광섭>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광섭金珖燮(1905~1977)의 「저녁에」라는 시로부터 모티브를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그의 시처럼 만남은 저렇게 많은 별 중 하나와 이렇게 많은 사람 중 하나가 서로 쳐다보는 것이다. 필자는 일상이 만남의 연속이며 그런 일상이 쌓인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많은 만남 중 일부만이 인연이 된다. 인연이란 무엇일까? 단어의 뜻을 그대로 해석하면 관계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저렇게 많은 별 중 하나와 이렇게 많은 사람 중 하나가 서로 바라보고 정다움을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무엇인가가 되어 다시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관계되는 것이다.
  만남이 혼재하는 세상 속에서 인연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필자는 만남이 잦아질수록 인연을 찾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쉬운 만남에 익숙해지다 보니 정다움을 나누고 관계되는 것을 잊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노력을 안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만남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가 교감되는 지점을 바라보는 노력에 있다. 그러한 노력이 뒷받침해 줄 때 비로소 우리의 만남은 헛되지 않은 것이 된다. 
  저자는 제3의 눈으로써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하는 과정에 참여한다. 그리고 더불어 이 모든 만남의 결과물 위에 제 4의 눈을 입혀 경제학이라는 밑바탕에 찍어낸다. 또한 그는 붓을 들고 점을 찍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김환기가 붓의 작용을 통해 물감과 종이의 만남을 보여준 것처럼. 점찍는 행위를 통해 그는 미술과 경제학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을 통해 미술과 경제학의 만남을 어떤 정다운 것으로 바꾼다. 그의 노력 덕분에 우리 머릿속에는 지나칠 뻔했던 이 둘의 만남이 헛되지 않은 하나의 관계로 자리 잡게 된다.

 

 

 

주석

1) 이성복, 『네 고통은 나뭇잎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문학동네, 2014년

2) 강신주, 고미숙, 김상근, 슬라보예 지젝 외, 『나는 누구인가』, p.160참조, 21세기북스, 2014년

3) 최병서, 『경제학자의 미술관』, p.68참조, 한빛비즈, 2014년

4) 두산백과-‘경제학’(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60443&cid=40942&categoryId=31819)참조

5) 조정래,『조정래의 시선』, pp.85~90참조, 해냄출판사, 2014년

6) 이동섭,『반 고흐 인생수업』, p.108참조, 아트북스, 2014년


                                               윤지수(yoonsar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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