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일 ‘모두와 함께하는 문화정책 포럼’의 문을 여는 자리로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문화예술 전문가들 100여 명이 모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주관하여 마련된 이 포럼은 대개 발제와 질의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참가자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공유할 수 있는 원탁회의로 경직된 모습을 탈피한 모습이었다. 이 포럼은 연말에 가질 결과 포럼까지 9월부터 11월에 걸쳐 권역별로 참여자를 직접 모집하고 포럼과 세션을 구성하면서 지역마다 새 정부의 문화정책과의 방향을 맞춰볼 예정이고, 자체 웹사이트(cultural-forum.com) 개설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 누리집(mcst.go.kr)에 ‘국민 참여 문화정책 제안’ 코너를 3개월 간 운영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10월 13일부터 열릴 ‘2017 미술주간’은 행사를 앞두고 작가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창작 환경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자 한다.
사실 이러한 움직임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의례적으로 하는 ‘푸닥거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계 역시 일종의 정치적 영토로 자리 잡으며, 문화정책이 정부의 기조를 내세우는 방편으로 이용당하는 것을 그동안 자주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3년 설립된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은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정 방침으로 발표한 문예 중흥의 계획에 따라 문화공보부에서 마련한 문예 중흥 5개년 계획(제1차: 1973-78, 제2차: 1979-84)을 추진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시작됐다.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연구가 좀 더 체계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부터다. 1990년 문화부가 창설되고, 1994년 현재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꾼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을 개원하여 조사 및 연구를 통해 정책을 개발하고, 문화 산업의 육성을 지원하고자 했다. 그리고 현재에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외에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하여 각 지역의 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 문화예술 정책 지원과 관련하여 보다 세분화되어 발전을 이룬 듯하다.
2004년 문화관광부가 발간한 자료집 『새로운 한국의 예술정책-예술의 힘』(총 654페이지)
그런데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예술인이 관료주의(Bureaucracy)의 벽에 부딪히는 크고 작은 사례들이 산재하고, 정치적 이슈에 따라 미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경우도 수없이 봐 왔다. 정권에 따라 기관장도 바뀌고, 문화정책의 방향 역시 언제나 바람따라 이리저리 휘날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술에 대한 지원 체계는 그것을 만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마다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적극적인 문화 정책이 취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하여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4년 영화감독 이창동이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발간됐던 정책자료집 『새로운 한국의 예술정책-예술의 힘』을 떠올려 본다. 일명 ‘새 예술정책’이라고 불리던 이 자료집은 600페이지가 넘는 ‘전화번호부’ 같은 볼륨뿐만 아니라, 1년여 동안 각 예술 분야의 전문 연구원 200여 명이 참여하여 만든 문화정책의 비전과 추진 과제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자료집이 나온 지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그 책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며 참조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당시에는 공공미술만 도드라져 보이긴 했지만, 이 책에서 개인의 창의성을 중요한 가치로 상정하고 실험적인 기초예술 진흥과 공공재원을 현장 중심으로 전환하는 정책의 기반을 다진 바 있다. 앞으로 진행될 문화정책 포럼과 더불어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해 ‘새 예술정책’ 이후, 보다 호흡이 길고 묵직한 비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