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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기, 민족의식과 가족 사랑을 대변한 한국 대표작가 이중섭

김달진

격동의 시기, 민족의식과 가족 사랑을 대변한 한국 대표작가 
이중섭 (LEE JUNGSEOP  李仲燮 1916 -1956)



이중섭하면 '천재화가' '국민화가' '요절화가'라고 표현한다. 이중섭은 1916년 평남 평원 태생으로 1940년 일본 문화학원을 졸업하고 40-43년 일본 미술창작협회전에 출품하였고 42-43년 신미술가협회를 결성 활동하였다. 처음 다닌 오산학교에서 일찌기 미국과 유럽에서 유학한 임용련 미술교사를 만나 큰 영향을 받았으며 화가의 꿈을 다졌다. 그가 공부한 문화학원은 다른 학교와 달리 진취적이고 자유분방한 학교였다. 그리고 참가했던 미술창작협회전는 당시 새로운 미술운동의 추진체로 서구의 새로운 조형사조를 따랐으며 두차례의 상을 수상하였다.


황소 1950년대

한국전쟁 때 남하했고, 부산, 서귀포, 통영에서 피란생활을 하다 일본인 야마모도 마사꼬(한국명 이남덕)부인과 어린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다. 그 후 고독으로 인해 자학 및 정신분열 증상이 오기도 했으며 1956년 40세에 타계했다. 

     가족 1950년대

그의 대표작 <소>시리즈 연작에는 그의 드높은 화가적 성취와 시대적 절망감이 진한 조형언어로 담겨져이다. 거친 숨소리라도 들릴 듯이 격력한 동세를 보이며 저항하는 황소, 분노를 풀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시 질주할 곳을 찾고 있는 듯한 지친 소, 고통과 갈등, 절망을 가득 남은 눈으로 클로즈업된 슬픈 소도 있다. 소재로 즐겨 다룬 가족, 부부, 어린이, 닭, 물고기, 복숭아 속에는 환상적인 농원, 평화로운 자연풍경, 자전적인 요소도 많이 담고 있다. 

                                                            부부 1950년대

작품들은 힘차고 대담한 터치, 단순화된 형태, 강열한 개성으로 인간 내면을 표현했다. 전쟁으로 재료의 극심한 궁핍속에 태어난 독특한 그림이 은지화였다. 담배갑 속의 은종이에 철촉으로 그어 그림에 대한 열정을 담아내었다. 또한 엽서 위에 많은 드로잉과 가벼운 수채화를 남겼다. 뛰어났던 데생력과 풍부하고 자유로웠던 생동감의 필력이 특출하였던 화면 구성과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의 민족적 수난과 가족적 비극 속에서 파란 많은 고통이었다. 초기에는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향토적인 주제, 후기에는 가족 이산의 고통을 상황적 리얼리즘의 절실한 연작시리즈를 발표했다. 그러나 민족적 화가로 평화 염원의 간절한 구체적 심정을 담은 인간적 순수함이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남았다. 


                                                  낙원 1950년대

1955년 미도파화랑 개인전 이후에 1972년 유작전(현대화랑), 1986년 30주기 회고전(호암갤러리), 1999년 문화인물 선정 특별전(현대화랑), 2005년 드로잉전(삼성미술관 리움), 2016년 탄생100주년전(국립현대미술관)등이 대표적인 전시였고 관람객이 많이 몰려 연장전을 갖는다. 이중섭을 기리기위해 조선일보사에서는 1989년 이중섭미술상을 제정해 시상하며 2002년 제주 서귀포에 이중섭전시관이 개관하여 2004년 미술관으로 확대하여 발전해왔다. 순진무구한 천성과 작가적 정신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으며 문학, 전기, 연극, 오페레타로 극화되었다. 김달진 박물관은 7권의 이중섭 기사 스크랩북과 A4 26장 분량의 소장 목록을 가지고 있다.



                                                   서귀포의 환상 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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