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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 | 민정기&김성룡 / 은유의 뼈

김종길

은유의 뼈


민정기와 김성룡의 회화는 눈앞의 현실이면서, 그 현실이 지금 이곳에 당도하도록 시간이 쌓은 ‘배경(背景)’으로서의 역사요 신화다. 마술적 판타지의 신화적 세계가 펼쳐지는 꿈이고, 이 현실의 삶을 좌우지하는 주술적 세계관의 신념이다. 그들의 놀라운 직관과 인지능력은 풍경과 풍경의 너머를 관통하면서, 비밀스런 세계의 실체라는 것이 사실은 이 현실의 앞뒤에 붙어서 만들어 낸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창조한 이미지는 그러므로 앞뒤가 없는 현실이면서 동시에 앞뒤가 붙은 현실일 수 있다. 은유의 탄생은 바로 그 ‘앞뒤’라는 초현실적(혹은 비현실적) 리얼리티에서 비롯한다. 민정기의 회화에서 이미지의 은유는 ‘앞’을 아름답게 그리되 ‘뒤’의 서사를 풍부하게 함으로써 발을 떼지 못하도록 잡아두는 신묘한 매력을 가졌고, 김성룡은 ‘뒤’의 서사를 마치 ‘앞’의 풍경인양 극진하게 묘사하되 사물/인물 하나하나에 상징의 언어를 덧씌워서 우리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매력을 풍긴다. 둘 다 회화에 은유의 뼈를 심었다.      
   


화엄의 풍경


민정기의 캔버스는, 그 캔버스를 채운 이곳저곳의 풍경들은 색비늘로 찬란했다. 수천수만 개의 붓 터치는 그가 그린 풍경보다 먼저 눈을 사로잡았다. 이색저색 겹겹이 쌓여서 흩날렸다. 그렇게 흩날리는 색들이 나무가 되고 바위가 되고 강이 되고 산이 되고 집이 되고 길이 되었다. 온 천지가 형형색색으로 황홀했다. 산 너머 산인가 하니, 색 너머 색이면서 풍경 너머 풍경이었다. 하나가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여서 만물이 서로 걸림 없이 원만하게 융합된 회화적 세계! 2016년 10월의 금호미술관 전시 이후 꼬박 2년을 그는 이렇듯 잡화엄식(雜華嚴飾)의 현실계를 그리고 완성한 듯하다. 


그림 속의 현실계는 화엄일지 모르나, 화엄을 걷어낸 자리의 현실은 불국토도 아니고 연화세계도 아닐 것이다. 제 아무리 이 세계가 거대한 연꽃이고 그 가운데에 모든 나라와 풍경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사직단 묵안리 청렴포 인왕산 백악산 수입리 화암사 옥순봉 세검정…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실제 이름의 산과 사찰과 마을과 지명은 그가 그리는 곳이 단지 어떤 풍경이 아니라 ‘구체적 장소’로서의 풍경임을 지시한다. 화엄의 회화적 상상과 민낯의 현실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어쩌면 그는 회화 속 현실과 지금 이곳의 현실을 동시에 사유하면서 그 ‘현실’이라는 실체가 무엇인지 궁리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민정기의 눈은 자주 뒤집혀야 했을 것이다. 그가 보는/보이는 현실과, 못 보는/보이지 않는 비현실을 동시에 마주하기 위해서 말이다. ‘보는/보이는 현실’로서의 풍경이 변화무쌍한 이 세계의 한 순간으로서 ‘지금, 이곳’의 살아있는 현재라면, ‘못 보는/보이지 않는 비현실’은 숱한 시간의 순간들이 수억 년으로 누적되어 쌓인 역사로서의 과거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거는 역사거울(혹은 우물) 너머에서 구조주의를 탄생시켰던 언어학과 인류학의 기호 상징 신화 정신 등으로 가득 차 있을 테고. 그의 회화는, 풍경 너머에서 그런 기호와 상징과 신화를 자주 엿보인다. 그것들이 구조화 되어서 풍경의 골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는 회화의 표면에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현상학, 두 개의 인식론을 섞었다. 그리고 그 표면에 새긴 풍경들이 드러내는 다층적 언어의 심미성을 숨기지 않고 노출시켰다. 옛그림 속 풍경이 현실과 오버랩 되고, 다시점의 공간성이 동시에 표현되며, 부감과 평원, 근대와 현대, 옛 집과 새집이 들러붙었다. 흥미롭게도 그것은 ‘하나의 세계’였다. 사실 예부터 우리는 이 땅이 그것들을 구분하지 않는 일원론의 세계라고 믿지 않았던가! 불국(佛國)이나 도원(桃源)은 극락정토요 무릉도원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이 현실에서 이루고자 했다. 비현실과 초현실의 관념이 궁궁처(弓弓處) 혹은 십승지(十勝地)라는 이름으로 이 현실에서 거룩한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굶주림 싸움 재앙 질병이 없는 피난처, 하늘과 땅의 신령이 내려와 숨 쉬는 곳으로서.


국제갤러리에 펼쳐 놓은 그림들은 “고지도는 물론이요, 신화적 서사와 민화적 상상력, 게다가 하늘과 땅과 물의 흐름으로 인간의 삶의 이치를 따졌던 주역의 풍수지리 역술과 그것의 술수(術數)까지”를 펼쳐서 ‘(우리)풍경’의 미학적 구조를 파고들었다. 겸재 정선의 <청풍계> 속 화풍이 들고나고, 1980년대 초반 그가 처음 시도한 이발소 화풍이 들고나고, 고산자 김정호의 지도 화풍이 들고나고, 여러 그림을 지그재그로 이어붙인 병풍의 구조가 들고나고, 옛 지세와 산세가 어떻게 깎이고 뚫리는지, 도시 건물이 세워지면서 땅과 산이 어떻게 부서지는지를 증언한다. 그런데도 한 작품 한 작품이 크기나 주제, 또 그리는 형식들이 조금씩 다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의 세계를 이루듯 어떤 구조 안에서 완결성을 이루는 것이 참으로 신묘하다.



풍경의 영혼


김성룡의 전시는 때때로 문맥을 상실한다. 여러 개의 작품을 하나의 주제로 엮기에는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나 다른 언어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니 그의 작품은 온전히 ‘하나’로서만이 존재할 뿐이다. 서로 다른 문장들을 이어 붙여서 시나 소설을 지으면 난독(難讀)일 수밖에. 그러니 문맥을 따지기 보다는 ‘하나’를 온전히 읽어야 한다. 그런데 그가 최근 제주에서 작업한 것들 중에는 같은 주제의 작품을 여럿으로 제작한 것이 눈에 띈다. ‘섯알오름’ 시리즈가 그것인데 ‘가을’ ‘새벽’ ‘저녁’ ‘노을’을 부제로 붙였다.

 
<섯알오름-가을>(2016)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석류나무를 그린 것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나뭇가지에 붉은 석류가 알을 터트리고 있다. 그런데 가로의 큰 줄기는 죽어 말라비틀어진 듯 검고 거칠다. 그 줄기를 사선으로 내리 뻗은 가지들도 죽은 가시나무처럼 처연하다. 그런 나뭇가지에 새빨간 석류 열 개가 달렸다. 푸른 하늘, 검은 나무, 붉은 열매, 날카로운 가시들의 조합은 마치, ‘시간-죽음-피-총’의 은유를 상상케 한다. 서귀포 대정읍 상모리 1618번지. 높이 40미터, 둘레 704미터의 이 작은 오름은 학살터였다. 4.3이 진정될 무렵 6.25전쟁이 터지자 내무부 치안국은 불법적인 예비검속을 벌여 수차례에 걸쳐 210명을 이곳에서 죽이고 암매장했다. 그는 큰 줄기 위에 어슬렁거리는 흰 표범 한 마리를 그렸다. 어깨에 해골이 문신처럼 박힌 표범은 그렇게 죽어간 영혼들의 표상일 것이다. 같은 제목인데 2017년에 그린 것은 죽은 옥수수이다.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옥수수대에 매달린 옥수수는 흰 해골 알갱이를 틔우고 있다. 역시 푸른 하늘이 배경이고 그 배경을 가시 넝쿨로 채웠다. 수확의 계절 ‘가을’을 부제로 단 <섯알오름>은 되살아나는 영혼들의 환한 부활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에 그린 <섯알오름-새벽>, <섯알오름-저녁>, <섯알오름-노을>의 주인공은 매이다. <공의 뜰>, <바농오름-깊은 잠>도 그해에 그렸고 동일하게 매가 등장한다. 이렇게 보면, ‘섯알오름’에서 비롯한 주제의식이 몇 개의 장면들로 이어지면서 ‘제주’와 ‘4.3’을 엮은 독특한 상상계의 긴 문장을 새겼다는 생각이 든다. 표범이나 옥수수와 달리 매라는 이미지는 현실과 비현실이 동시에 작동하는 상징물이다. 제주에 살고 있는 매는 한반도 전역에 사는 해동청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제주에서는 한라산의 산신이기도 하다. 해안 절벽에 살면서 백록담까지 먹이 사냥을 나서는 것이 매의 현실이라면, 차귀도(遮歸島) 앞바다에 폭풍을 일으켜 송나라의 풍수지리가 호종단의 배를 침몰시킨 건 매의 신화다.


김성룡은 이 매를 주인공으로 제주 섯알오름의 여러 풍경들을 보여준다. ‘새벽’은 환하게 타오르듯 일렁이는 숲과 나무를 그린 생령이 깃든 풍경화이다. 여명으로 어둠이 걷히는 하늘과 그렇게 걷히는 어둠을 응시하는 매의 당당함이 그 풍경화를 역사화로 읽게 만든다. 반면, ‘저녁’은 을씨년스럽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과 검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죽은 나무 한 그루가 해안가에 서 있다. 그 나뭇가지에 매가 앉아서 화면 밖을 날카롭게 응시하는 중이다. 땅도 바위도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였으나, 그곳에서 어린 소나무가 힘차게 자라고 있다. 푸른 솔잎을 가시처럼 틔우면서. ‘노을’의 이미지도 그와 유사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돌담에 앉은 매가 이곳을 노려본다. 하늘은 어떤 불길한 징조를 엿보이는데, 돌담에 뿌리내린 푸른 선인장이 자라고 있다. 그늘과 죽음, 빛과 삶[生]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매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신의 대리자일 것이다. ‘저녁’과 <공의 뜰>은 마치 한 쌍처럼 이어진다. <공의 뜰>은 푸른 소나무, 아니 생령이 깃든 나무들로 숲이 환하다. 그 환한 숲을 마주하고 앉은 매 한 마리가 고개를 돌려 여기, 이곳의 우리를 본다. 푸른 영혼들이 이곳에서 다시 싹트는 순간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아트인컬쳐_201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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