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
새 홀림의 창조적 술수
2017년 익산창작스튜디오에서 만나고 4년이 흘렀다. 매칭 크리틱에 참여해서 평론을 썼으나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그의 잔상은 근대화로 파고든 시선(근대화를 ‘역사’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여성주의 시선(오브제의 배치와 색으로 ‘남성성’의 욕망을 도발적으로 드러내거나, 나혜석을 호명하는 방식에서), 그리고 ‘미학’의 뒤집기다. 예술가는 늘 미학을 뒤집어야 새로워진다.
1970년 11월 13일, 스물두 살의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2020년은 그로부터 50주기가 된 해였다. 전태일기념관에서 청계피복노동조합 사료전 <청계, 내 청春, 나의 봄>이 열렸고, 이 전시 아카이브북에 「전태일 정신의 민중미학적 사유-예술행동은 ‘바깥 사유’의 실천이다!」를 기고했다. 글에는 “근대사회는 계급을 타파하고 삶의 직종을 분파시킴으로써 빠르게 ‘현대’를 성취했으나 그런 연유로 생래적인 예술가는 거의 다 사라져 버렸다. 현대미술 작품이 대학이라는 아카데미에서 ‘학습된’ 미술의 결과물이라 할 때, 나는 ‘탈학습’의 경로를 따르는 미술가를 추궁한다. 그 이탈의 경로에서 자주 신명의 흔적들을 발굴 할 수 있기 때문”이라 쓴 부분이 있다. 김민혜의 이번 작업이 딱 그랬다. 그는 여전히 1)근대화로 파고든 시선, 2)여성주의 시선, 3)미학적 뒤집기의 시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 시선으로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활예술’의 형식을 새롭게 변용한 그의 미학적 실험은 흥미로웠다.
그의 작업에 대해, 알레고리와 상징이 기묘하게 얽혀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얽힌 것들의 메타포가 한 인간의 욕망은 물론이요, 한 사회와 그 사회의 역사, 또 그 역사에 내재된 일그러진 근대화의 초상 따위가 저변에 깔려 있으며, 그것들의 대부분은 우리 사회가 강제로 잊게 만들었거나 혹은 우리들 스스로가 잊어버린 것이라 판단한 필자의 관점은 유효해 보인다. 아니, 유효할 뿐만 아니라 더 심화된 듯 보인다. 그는 이제 의사과학((擬似科學, pseudoscience)처럼 의사전승자/의사전수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 근대화/산업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전통’을 현대미술로 수용하고 뒤집고 다시 확장하기 위한 그의 유사 노동예술 작업은 그래서 미래 예지적인 어떤 예술의 한 장르를 상상케 한다.
#1. 마주하기 ; 손님과 아저씨
“이미지를 복제하는 사람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 제목은 <사랑방 손님과 아저씨>이다. 그는 2019년부터 서울시 종로구 예지동의 광장시장 내 한복 제작 기술자들과 인연을 맺었다. 인연을 이어서 이 근대 산업화의 그늘진 제조업 세계로 파고들었다. 가까스로 남아있는 봉제 노동의 생태계를 발견했으나, 이미 나염(捺染)-자수-돌금박 기술의 제작 과정은 위태로웠다. 생태계의 첫 단추인 나염사 공방은 이미 일이 거의 끊겼다. 월세는 커녕 스스로의 인건비도 버거웠다. 투잡을 뛰어야 겨우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나염사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는 시장의 한복 제작 생태계가 단순히 봉제 노동 시스템을 넘어 무언가 기록할만한 ‘문화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 한복의 제작 과정을 시스템으로 분화시켜 ‘삶의 직종’으로 쪼개고 나눈 것은 다분히 근대 산업화의 자본 수익성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각각의 노동 효율성은 한복 생산성을 극대화 시켰을 터이고, 그만큼 제작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수익도 커졌을 테니까. 그런데 그가 주목한 것은 그런 자본 수익이 아니라 분화된 직종의 노동 숙련성이 보여주는 일종의 ‘장인정신’이었다. 근대 산업화의 제조업 노동자들은 그들 나름의 ‘근대 인간문화재’로 자리 잡았고 빼어난 기술과 예술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제 한복 제조업은 중국 시장에 자리를 내 준지 오래다. 광장시장의 나염사는 그런 우리 현실의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증거한다.
김민혜는 나염 공방으로 들어갔다. 나염 공방은 그가 설정한 ‘사랑방’이다. 실제로 나염을 주문하러 오는 이들이 마치 사랑방처럼 이곳을 들락거린다. 그도 ‘손님’으로 이곳을 찾아 기웃거리다 아예 사랑방 손님을 자처한다. ‘아저씨’는 나염 공방의 나염사 김기현이다. 두 달 동안 사랑방 손님으로 오가면서 나염사로부터 나염기술을 전수받는다. 견습생으로 나염 공정을 익힌다. 자수를 놓기 위한 밑그림를 그리고, 그것을 칼로 파내는 투각(透刻), 그리고 비단에 투각 이미지를 올려놓고 에어 콤프레셔로 물감을 뿌리는 것까지.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밑그림 이미지를 칼로 파내는 투각과정이다. 칼 선이 살아서 이미지의 꼴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면 완성도가 뚝 떨어진다.
#2. 탈학습의 경로 ; 의사전승의 미학
나염사 김기현은 칼 하나로 온갖 이미지를 창조하고 새기고 투각한 이 시대 최고의 산업화 장인이다. 사실 나염(捺染)은 무늬를 새긴 본을 대고 풀 섞은 물감을 발라서 물을 들이는 방식이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이런 전통방식은 사라졌고 그 대신 투각한 무늬에 에어 콤프레셔로 물감을 뿌려 제작한다. 이렇게 비단/천에 새긴 무늬는 그대로 봉제 과정으로 넘어가 미싱으로 재탄생한다. 나염이 사라지는 것은 한복에서 무늬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 어떤 무늬도 없는 한복을 상상해 보라. 그것은 그저 밋밋한 민복일 뿐이다.
작가는 사랑방 손님으로 파고들어 ‘의사전수자’로 나염을 전수 받는다. 이 전승의 과정에 국가나 지자체, 문화재청 등이 관여할 수 있는 공공적 틈은 없다. 중요무형문화재 기능ㆍ예능 보유자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근대 산업화 장인들의 무형 문화적 산물은 역사적ㆍ예술적ㆍ학술적 가치에 대한 논의도 시작된 바 없다. 그들의 기술은 아카데미에서 학습된 경로를 통해 습득되거나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롯이 그들 스스로의 엄청난 노동과 반복과 감각으로 그것을 틔워냈다. 수많은 시간이 그들의 몸을 높은 수준의 통감각적 예술가로 키워낸 것이다. 이 탈학습의 경로는 육화전승의 체득을 통해서 이어질 수 있다.
김민혜는 이 기능-기술-예능의 원형을 체득하기로 결심했다. 보존하고 재현할 수 있는 ‘전수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보여준 작품들은 이 의사전승의 과정에서 그가 획득한 나염 이미지, 이미지의 아름다운 꼴, 그 꼴을 칼로 새긴 투각, 그리고 의사전승의 새로운 미학이다.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은 시공의 간극이나 문화적 차이 따위를 편협하게 축소시키지 않는다. 다원적이고 다공적인 목소리가 가능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익숙한 듯 낯설고, 오래된 듯 새롭고, 지역적이면서 동시에 인류학적이다.
사실 근대화/산업화 과정을 겪은 20세기의 거의 모든 인류는 이와 유사한 수많은 장인들을 길러냈다. 그러나 3차 산업혁명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의 이행은 산업화 장인들을 빠르게 몰락시켰다. 그들이 가진 예술적 가치는 잊혀지고 있다. 봉제 노동 시스템에 종사한 노동자들의 가치를 아카이브 하거나 재조명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김민혜의 전시에서 느끼는 것은 이처럼 다공적이다. 나는 전시를 보면서 미래 예지적인 근대미술의 상상력을 엿보았다.
#3. 새 홀림의 술수 ; 미래 예지(叡智)의 모던아트
매혹(魅惑), 그 뜻은 도깨비 홀림이다. 굳이 한복이 아니더라도 김민혜가 보여준 염사 작업은 매혹적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미지의 꼴이 반투명 비단에 나염되어 드러난 작품들은 어떤 술수적 상태의 감각을 드러냈다. 옛 것과 새 것이 그물코로 이어져서 일으키는 창조적 술수는 무엇이라 규정하기 어려운 장르였고 형식이었다. 조선 후기 민화에 포스트 모던한 감각이 투영되어 있듯이 그의 작품도 미래 감각의 미학이 담겨 있었다.
그 감각의 실체는 ‘홀림’과 무관치 않다. 한복에 새긴 이미지들은 삶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기복적 상징은 물론, 그 자체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과거엔 바느질로 새겼고 지금은 미싱으로 새길 뿐이다. 나염은 그 이미지들이 태어나는 잉태적 순간이다. 나염사의 칼 선이 극치의 한 경지를 이뤄야만 아름다움은 완성된다. 김민혜는 칼 선이 이룬 매혹의 순간을 비단에 새겼다. 그리고 비단은 그 매혹을 담아서 ‘홀림’의 감각으로 상승한다. 전통이 동시대 현대미술의 미학으로 돌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미래는 ‘오래’라는 샘으로부터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