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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테레사 학경 차의 시대를 앞선 예술적 비전 | 김현주

현대미술포럼




테레사 학경 차의 시대를 앞선 예술적 비전




테레사 학경 차(Theresa Hak Kyung Cha, 1951∼1982)는 시대를 앞선 예술적 비전을 남기고 요절한 한국계 미국 작가다. 그녀는 1974년부터 8년의 짧은 기간 동안 문학, 영상, 미술 분야를 자유롭게 월경하며 비디오 아티스트, 퍼포먼스 아티스트, 개념미술가, 영화감독, 작가, 시인으로서 다재다능하고 급진적인 예술 활동을 펼쳤다. 시각예술 작업으로는 오브제, 아티스트 북, 종이 작품, 메일 아트 등 개념성이 강한 탈모더니즘 작품들과 필름 두 점, 비디오 여섯 점, 아홉 개의 퍼포먼스 등 대략 50점의 작품이 남아 있다. 평면에서부터 멀티미디어까지, 그리고 비디오와 필름을 결합한 설치, 또는 슬라이드를 배경으로 이뤄진 퍼포먼스 등 그녀의 미술은 시각예술 장르 간 경계를 위반하고 자유로운 교배와 혼성으로 인해 단일한 장르로 분류하기 힘든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장르적 성격을 예고하였다. 테레사 학경 차가 남긴 모든 분야의 작품 가운데 사망 직후 출간된 소설 『딕테(Dictée)』(1982, Tanam Press)는 작가가 추구했던 예술의 결정판으로서, 『딕테』를 언급하지 않고 차학경에 대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작가가 사후에 빛을 보게 된 것도 『딕테』의 힘이라 하겠고, 지금까지도 이 책은 그녀의 다원적인 예술세계를 이해하고 그것들을 이어주는 중심고리가 되고 있다. 

차학경은 1951년 부산에서 다섯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나 1963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그녀는 카톨릭 신자였던 부모가 지어준 이름 ‘차학경’에 카톨릭 세례명 테레사를 붙여 ‘테레사 학경 차’라는 새로운 이름과 정체성을 가진 이민자로 살아갔다. 그의 가족에게 샌프란시스코 정착은 구한말부터 시작된 부모님의 자의 반 타의 반의 유랑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만주 생활, 해방 전 고국으로의 귀환, 1960년대 초 불안한 국내 정세와 박정희 정권의 출범 후 또 한 차례 가족의 미국 이민은 한국의 근대사와 복잡하게 얽힌 작가의 가족사이며, 그런 가족사는 작품의 내용의 원천이 되었다. 그녀는 모국어인 한국어를 잊지 않았지만 카톨릭계 사립학교에서 영어와 불어를 수준급으로 습득해 다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멀티미디어 작품인 <망명자(Exilée)>(1980)에서 청자는 세 개의 언어로 말하는 작가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테레사 학경 차는 이와 같은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미 서부에서 예술가로 성장했고, 1980년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러던 중 1982년 11월 저녁 무렵 맨하탄의 리모델링하는 건물의 사진 기록을 맡은 남편의 작업실을 방문했다가 건물 경비원에게 강간, 살해되고 시신이 유기되며 32세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녀의 갑작스럽고 끔찍한 죽음에 대해 발설하는 것은 고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으로 여겨져 오랫동안 금기시 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녀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예술적 성취를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보는 것은 문제라는 의식에서 출발해서 그녀의 작품과 죽음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Cathy Park Hong, 2020). 차학경의 사후에 그녀의 가족은 ‘테레사 학경 차 기념재단’을 설립해 유작과 관련 자료들을 보관해 오다 1991년 작가의 모교인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 캠퍼스 소속의 ‘버클리미술관/퍼시픽 필름 아카이브’(BAMPFA)에 일체를 기증했다. 이것을 토대로 BAMPFA에 ‘테레사 학경 차 아카이브’가 설립되었다. BAMPFA는 그 아카이브를 충실히 관리하고 수년에 걸쳐 디지털화하는 한편, 국내외 차학경 연구자들에게 공개해 다양하고 지속적인 연구를 촉진하였다. 필자가 차학경의 작품과 육필 자료들을 처음 접한 것도 1998년 작가 연구를 위해 방문한 그곳에서였다. 사후 차학경의 미술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사람은 1990년 이곳의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로렌스 린더이다. 그는 1990년 유족에게서 대여한 작품들을 가지고 BAMPFA에서 소규모 유작전을 열었다.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로 자리를 옮긴 린더는 1992년 휘트니미술관에서 차학경의 미술전과 부대행사를 기획하며 미술가로서 테레사 학경 차를 처음으로 조명했다. BAMPFA는 차학경의 소장품과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주요 전시를 기획해 왔다. 2003년 9월 쌈지스페이스에서 개최된 《관객의 꿈: 테레사 학경 차 1951-1982》은 2001년 BAMPFA가 기획한 작가의 첫 번째 유고전으로서, 미국의 5개 도시를 순회하고 그녀가 태어난 한국에서 마무리되었다. 2018년에는 《테레사 학경 차, 딕테 이전에(Theresa Hak Kyung Cha, Avant Dictée)》라는 기획전을 열어 딕테와 다른 미술작품들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테레사 학경 차 아카이브’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 캠퍼스는 테레사 학경 차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1969년부터 10년간 비교문학과 미술 공부를 하며 문학사, 미술학사, 미술석사 등 세 개의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0년대 말 버클리 캠퍼스는 아시안 아메리안 인권 운동의 요지였다. 아시안 아메리칸이란 새로운 정체성을 일컫는 용어가 등장하고 페미니즘 미술이 발아하는 시기에 차학경은 아시안 아메리칸 여성으로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대안적인 미술 언어를 찾아갔다. 차학경은 버클리에서 재미작가 민영순 등 여러 작가와 평론가 및 문화계 인물들을 만나 교류하였고, 1982년 5월 그녀와 결혼한 사진작가 리차드 반스 역시 거기서 만났다. 그 대학 소속기관인 ‘퍼시픽 필름 아카이브’에서 안내원과 매표원으로 짬짬이 일하는 동안 수많은 고전 영화와 실험 영화들을 보았고, 모더니즘을 벗어난 예술을 구상했다. 1976년에는 해외교육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아 파리에 유학하며 현대 영상이론가들의 수업을 직접 듣는 기회를 가졌다. 따라서 작가의 영상 작업에는 고다르 등의 실험 영화, 말라르메의 문학과 프랑스 현대영상이론에서 받은 영향들이 반영되었다.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미묘한 명암의 변화, 느린 장면 이행, 시간의 점진적 추이, 현실도 꿈도 아닌 듯한 모호한 시간과 공간의 연출에서 연관성이 발견된다. 영상 이론에 대한 관심은 전위적인 이론가들의 글을 모은 앤솔로지 『영화장치론』(1980)의 편집, 발간으로 이어졌다. 

차학경의 예술의 근간이 된 것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위에서 설명한 바처럼 1960년대 말∼1970년대 미국의 진보적인 문화 운동과 서구의 새로운 예술이론과 실천들이다. 차학경은 여기서 아시아 아메리칸 여성이란 의식과 새로운 미학적 형식을 발전시켰다. 다른 하나는 이주의 경험으로서 그 경험은 작품의 소재와 내용의 원천이 되었다. “나의 주된 작업은 언어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차학경에게 이주의 경험은 언어의 문제와 직결되었다. 그녀의 작품에서 언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생성되고 변화되는 것으로서 구조적인 분석의 대상이 되고, 모국어를 상실하고 낯선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완전하고 불편한 영어가 이민자들의 가능한 표현 형식일 수 있음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컨대 8분짜리 비디오 작품 <입에서 입으로>(1975)에서 한글 모음소와 그것을 발음하는 입술 모양은 전파 장애로 인한 흰 반점들과 흐르는 물소리의 배경음으로 인해 거의 가려지고 들리지 않게 되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모국어 상실의 고통이 전해진다. 대표적인 퍼포먼스인 <눈먼 목소리(Aveugle Voix)>(1975)에서는 ‘눈이 먼’이란 불어 단어가 적힌 흰 천으로 입을 막고, ‘목소리’라는 단어가 적힌 천으로 눈을 가려서 단어의 위치를 바꿔치기하는 역설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이민자가 놓인 역설적 상황에 대한 비유다. 1979년 한국을 떠난 지 17년 만에 한국을 재방문한 차학경은 한국과 미국,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유동적인 정체성을 깨닫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망명자>와 『딕테』를 창작했다.    

『딕테』는 ‘받아쓰기’를 뜻하는 불어로서 말을 배우기 위한 중요한 과정의 하나다. 그것은 유관순과 작가의 어머니, 성 테레사,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 뮤즈 등 시공을 초월하는 여성 화자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불완전한 서사, 한국의 역사와 관련된 사진, 발성 기관을 그린 도표, 한국 지도, 여백 등의 몽타주 방법으로 쓴 독특한 소설이다. 자전적 서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출간 이후 소수의 백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실험 문학의 한 사례로 읽혀 왔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다문화주의와 탈식민주의 논의가 진전되는 상황을 맞아 1991년 아시안 아메리칸 여성학자들이 『딕테』의 가치를 재발견한 뒤로 이 책은 다문화주의와 탈식민주의, 여성주의 담론이 교차하는 대표작으로서 미국 대학의 주요 교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딕테』의 한글 번역본은 1997년 재미 언어학자 김경년에 의해 출간되어 가뜩이나 어려운 원서를 읽어야 하는 국내 독자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1999년에는 극단 미토스가 『딕테』를 각색한 <말하는 여자>를 연극 무대에 올리고 이듬해 세계 여성극작가대회에서 한국 대표작으로 발표했다. 2013년에는 비상업적인 대안 영화를 추구하는 영화 분야 관련자들이 차학경의 영상 작업을 연구한 모음집 『차학경예술론』이 발간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해외에 오랫동안 거주한 미디어 아티스트 이수진이 차학경의 예술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발표하였고, 국내외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차학경의 예술을 재해석한 작업과 전시가 종종 열리고 있다. 이처럼 차학경이 남긴 급진적인 예술적 비전은  『딕테』를 매개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김현주(1958∼),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 추계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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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학경, 문학작품 『딕테(Dictée)』의 표지, 1982, Tanam Press




차학경, <망명자(Exilée)>, 1980, 2000년 5월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한미한국전》 설치 및 상영 모습을 필자가 찍은 사진




차학경, <눈먼 목소리>, 1975, 퍼포먼스 사진 © BAMPFA




차학경, 《Theresa Hak Kyung Cha, Avant Dictée》 설치모습, 2018, BAMPFA © BAMP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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