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중인 <기억술 記億術>(2.14-4.3)을 보고왔다.
전시는 현대사회에서 '버려진 것들, 침묵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감각을 깨우고자 기획되었다.
이때의 '기억술'은 과거의 기억을 잊지 않고 기록하는 방법적 태도를 함의하는 것으로써,
어떤 것을 기억하려는 적극적인 상태 혹은 반응을 말하기도 한다.
권순영 <Love 14> 50×50cm 한지에 채색, 아크릴, 2019
권순영 작가는 외형이 매우 곱게 느껴지는 그림을 그려왔다. 미키마우스, 토끼, 캔디가 등장하고 배경도 화이트 크리스마스, 별이 빛나는 밤하늘 등 다채롭고 아름다운화면들이 많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그림을 보면 그림 속 형상들 대부분이 혐오스럽고 때론 추하게 그려져 있음을 알게 된다. 신체가 절단되었거나 몸이 기형적으로 부풀어 올라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형상이다. 하지만 그림들 속에서 그런 존재들은 피해야 할 대상이나, 위협적 대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림 속 존재들은 성인과 어린이의 구분이 무의미할 만큼 매우 미성숙해 보인다.
권순영 작가는 힘없고 나약한 존재들의 고통과 상처를 기억하며 화면에 그리지만, 처연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원형은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기에 작가의 그림 속 존재들은 구멍이 나서 상처 깊은 형상이지만, 공포가 아닌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현재의 화면에 불러오면서도 소외된 이들을 위한 미래적 희망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권순영 <비나이다 비나이다> 한지에 채색, 37×35cm, 2017
권순영<편지> 한지에 채색, 37×35, 2017
권순영 <3개의 조각상> 194×130cm(each) 한지에 채색, 2017
<3개의 조각상>에도 혐오스럽게 여겨지는 3개의 형상이 등장한다. 각각 창살이 꽂힌 채 웃고 있는 눈사람 형상, 머리 부분만 나무에 매달린 캐릭터 풍선 형 상, 바비 인형을 연상케 하나 팔과 발목이 절단된 채 뒤 돌아 서있는 인간 형상이 그려져 있다. 세 존재들은 하나의 시야에 잡히는 거리를 두고 서 있지만 서로의 고통은 깊게 바라볼 수 없는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세형상이 서 있는 곳은 평화로워 보이는 꽃밭이지만 모두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정재호 <동면> 104×150cm 한지에 목탄, 2019
정재호 작가는 오랫동안 재개발 대상이 된 아파트들을 그려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그림들은 이전의 작업들과는 조금 다르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 성석동을 배경으로 하는데, 성석동은 작가에게 단순한 관찰의 장소가 아니라 직접 오랫동안 거주해 온 삶의 장소이다. 성석동에 관한 작가의 기록을 보면, 어머니에 대한 형언하기 힘든 마음이 있고, 질식해 죽은 새, 한파와 폭설을 맞은 풀들, 허물어진 벽돌집들 같은 어두운 단상들이 있다. 그렇게 죽음을 가까이 느낀 동네, 성석동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굴뚝, 물류창고, 철거된 주택가에 홀로 남은 가옥' 등을 그렸다. 이전의 작품과 달리 이번 작품들은 15년 간 성석동을 오가며 쌓인 작가의 기억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에, 작가의 주체성이 얼마나 급진적인지를 떠나서 '성석동'에서 보여지는 작은 단면들이 현대사회의 상황을 증언한다 한다.
정재호 <어제의 노래> 144×76cm 한지에 먹, 2019
정재호 <어제의 노래> 한지에 먹, 144×76cm 2019
'망가진 과거는 광경이나 기억으로서, 도망칠 수 없는 것'
O.K Werckmeister
교보아트스페이스 <기억술 記億術> 리플렛 참고
글, 사진 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