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AND THINGS : 물아일체》
2022.01.05.-2022.02.23.
우란1경
우란 1경에서 전통, 민화, 책거리/책가도와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시, 《BOOKS AND THINGS : 물아일체》가 지난 1월 5일부터 시작하여, 2월 23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제목의 ‘BOOKS AND THINGS’는 그림 속에 그려진 책과 물건을 뜻하며, ‘물아일체’는 바깥 사물과 나,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책과 진귀한 물건들을 그리는 ‘민화, 책거리/책가도’가 유행하였고, 그 안에는 그려진 대상과 그림을 소비하고 감상했던 주체 사이에 구별 없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가 담겨있었다. 조선은 정신문화를 높이 샀던 나라였지만, 후기에 들어서는 현실적인 물질문화에 대한 욕망이 표출되었다. 그 욕망이 응집된 그림이 바로 책거리였다. 이는 ‘이념의 시대’에서 ‘물건의 시대’로 옮겨가는 단계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전시 초입
전시 전경
책거리는 도시 문화의 발달과 문화적 물품의 생산, 그리고 자본의 발달 등 사회적 배경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다. 19세기 이후 사대부 외에 신흥 부유층이 생겨나면서, 그들 또한 책거리 그림에 대해 열망하게 되고, 책거리는 민중의 그림인 민화의 영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민화 책거리는 궁중 책가도와 비교하여 훨씬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기존의 책가도처럼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반영하기 보다는 전통적으로 출세와 신분 상승, 부위영화의 기복적 상징으로 쓰인 것들이 주를 이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형록, <궁중 책가도>, 19세기 후반
작가미상, <책거리>, 19세기 후반
하지만 책거리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그 안에 녹아있는 정신문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에는 하찮은 물건에 집착하면 자신의 의지를 잃는다는 완물상지(玩物喪志)의 정신이 존재했다. 선비들은 이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자신을 다스렸다. 그런데 이러한 취향의 추구는 세상의 불평등을 변화하고 완화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취향이 시대와 산업과 경제를 뒤흔들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지금, 한 개인이 선택한 대상과 이를 마주한 주체인 나는 하나로 귀결되는 ‘물아일체’를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물의 물질과, 그에 대한 정신이 녹아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후기의 궁중 책가도 1점, 민화 책가도/책거리 3점 그리고 이를 변용한 6명의 작가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책거리/책가도의 새로운 가능성과 현재의 가치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전시 전경
먼저,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그레이트마이너(정도이, 정재나)는 주류가 아닌 것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으며 디자인과 예술 사이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그룹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피규어 플랜트> 플라스틱 비즈와 석고 베이스로 제작되어, 새로운 시대의 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그레이트마이너, <피규어 플랜트>, 2021
그레이트마이너, <피규어 플랜트>, 2021, 근접 이미지
반면, 김덕용 작가는 주로 동양화 기법으로 나무 위에 작업을 진행해왔다. 작가의 작품은 나무를 손으로 다듬고 파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오브제를 붙이는 과정을 겪는다. <결-形形色色>은 나무에 자개를 활용한 작품이다. 작가가 재해석한 책가도는 자개로 탄생하여, 전시장 내에서 영롱한 빛을 내뿜는다.
김덕용, <결-形形色色>, 2019
김동해 작가는 일상의 자연과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공간을 장식하는 모빌이나 쓰임이 있는 물건을 만든다. 식물의 형태가 가진 조형적 가능성을 탐구하여 이를 작품 주변공간과의 관계적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특유의 얇은 금속 선재나 판재의 마디와 마디를 연결해 완성되는 구조의 작업은 재료와 사물, 사람과 시공간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며 확장되기도 하며, 물질적 요소와 비물질적 요소를 수반한 대상의 총체적인 아름다움을 사물에 담는다.
김동해, <연결>, 2020
김동해, <또 다른 풍경 Ⅰ>, 2021
첨단 기술을 교차시키며 기존 책거리/책가도를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시킨 작가는 이예승이다. 그는 동양 사상을 기술과 접목시켜 드로잉, 설치, 인터렉티브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QR코드를 촬영하면 형성되는 증강현실과 디지털프린트 오브제를 제시한다. 기술로 인해 확장된 인간의 감각, 인간과 사물의 관계성이 확장되는 경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예승, <구곡소묘>, 2021
이예승, <구곡소묘>, 2021, 증강현실 화면
조성연 작가의 <식물아카이브>은 쌓인 책들 위로 갈대들이 자라난 형상이다. 또한 <My own library>는 책과 사물을 촬영한 사진을 다시 하나의 오브제처럼 선반 위에 나열한다. 작가는 일상 속의 환경과 풍경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작업 안으로 끌어들여 화면 안에 펼쳐 두고 다시 보면서 작가 자신과 대상 사이에 잠재되어 있던 내적 교감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관객으로 하여금 사진 속 대상과 장면을 인식체계 안으로 불러와 새로운 관계성을 형성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조성연, <식물아카이브>, 2020
조성연, <my own library>, 2021
마지막으로 채병록 작가는 그래픽 작품을 선보이다.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포스터라는 매체를 통해 개념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일종의 시각 실험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문방청완 만첩구성도>에서 작가는 책가도가 갖는 주요한 사상과 가치들을 텍스타일 기반 그래픽 작업을 통해 확장해간다.
채병록, <문방청완 만첩구성도>, 2021
전시장에는 이들 6명의 작가들과 조선의 민화 책가도/책거리들이 배치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 시대까지 계승되어 온 물질에 대한 욕망과 그 안의 정신적 가치에 대한 공통점 또는 차이점들을 경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종로구의 OCI미술관에서는 해당 전시와 비슷한 맥락의 전시, 《완상의 벽》이 진행 중이다. 조선시대의 완상(玩賞) 문화를 알리는 전시이며, 조선시대의 도자기와 책가도, 민화 그리고 관련 회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완상문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싶다면 《완상의 벽》을, 조선시대 책가도/책거리와 이를 재해석한 동시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우란1경의 《Books and Things 물아일체》로 발걸음하길 바란다, 물론, 더 풍부한 감상을 원한다면 두 전시를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현재 해당 전시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쾌적한 관람을 원한다면, 사전예약 시스템을 이용해보도록하자.
관람 시간 : 10:00-18:00(일요일, 설 연휴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