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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의 논문에 대한 질의

이선영

양은희의 논문에 대한 질의 

 

이선영(미술평론가)

     

양은희의 논문 [텍스트와 실천사이에서: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미술 이론의 수용, 전개, 그리고 전망]은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미술 이론의 전개와 전망에 대해 진단, 평가해야 하는 과제’(논문 p2)를 다룬다. 그간 페미니즘과 관련되어 한국에서 발표되었던 논문은 물론, 번역서, 잡기기사, 인터뷰까지 망라된 꼼꼼한 조사는 페미니즘에 대한 저자의 신념과 의지를 느끼게 한다. 애정을 가지고 자료들을 들춰보아도 답답한 현실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기에, 그녀가 아무리 페미니스트라 할지라도 연구가 신나게 진행되었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논문은 80년대 이후를 다루고 있는데, 저자 역시 그 시기를 학생으로 학자로 통과해 왔다. 그것은 페미니즘이 단순히 어떤 대의적 명분이나 희망사항을 넘어서, 역사적 사실에 바탕 한 주장과 의미로 검증되고 설득되어야 할 때가 왔음을 알려준다. 이론은 단지 이론이 아니라, 강한 의지에 의해서 추동되고 이를 통해 의미심장한 결실을 맺는다. ‘텍스트와 실천 사이’에는 자명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저자의 실존적 토대로부터 출발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학자에게 의지란 담론을 통해 관철되고 실천된다.

 

논문 말미에 인용되었듯이, 외국에서 ‘1980년대 이후 페미니즘이 주제어로 사용된 미술사 관련 에세이와 논문의 숫자가 정신분석, 기호학, 시각 이론, 해체 등 최근 유행한 어느 주제어보다 월등히 많은 900여개이며 2위를 차지한 정신분석보다 2배에 달하는 논문, 비평들이 등장했다’(p12)는 통계는, 페미니즘이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이미 주류라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이다. 논문에서도 상세히 조사되었듯이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페미니즘 관련 글이 발표되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어떤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논문의 실천적 문제의식이다. 많이 있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어떤 여성작가의 작품에서 페미니즘적 내용을 지적했을 때 10명 중 9명에게 ‘아니다’라는 즉답을 받는다. 그러나 작품 속에는 분명히 그러한 요소가 발견되기에, 필자도 고집을 꺽지 않고 페미니즘과 관련된 문헌을 참고해서 평문을 쓴다. 그러나 굳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페미니즘이란 말을 안 쓰고서도 여성성을 말해보는 것이 필자의 야심이기도 하다.

 

그것은 필자의 전략이기 보다는 이미 확립된 명칭에 대한 유보적 입장과 취향, 글쓰기 스타일 때문이지만, 어쨌든지 이 경우 이미 작품 속에, 그리고 평론 속에 페미니즘은 있지만, 그 용어가 억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내 작품이, 내 글이 페미니즘이 아니어도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만큼 그 이론이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은 전혀 좌파적이지 않은데, 좌파적인 듯이 말하는 작가가 적잖이 발견되는 것과는 사뭇 반대이다. 논문에도 ‘이러한 반응은 2000년대 한국에서의 미술, 미술비평, 미술사에서 과거 페미니즘의 업적이 여성지식인들에게 널리 수용되어 있거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p8)하며, ‘한국 여성주의 미술로 수렴되지 못하고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p10)고 지적된다. 예술이란 특수성 속에서 보편성을 길어 올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페미니즘 하면 ‘보편적’이지 못하고 ‘편파적’이라는 통념이 있다. 페미니즘은 어쩐지 ‘여자’자 들어가는 신파조의 노래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기야 이 땅에서 제대로 사용되지도 못하고 호명만 된 채 고갈된 ‘이즘’들이 페미니즘뿐이겠는가.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글 또한 그것이 기성의 현실 속에 하나쯤 있으면 좋은 여러 이론중의 하나일 수 있다는 절충적이고 온건한 태도가 이러한 편견에 한 몫 한다. 자못 어떤 이론을 주장할 때는 그것이 기성의 이론에 첨가될 뿐인 또 하나의 항목이 아니라, 이를 통해 기존의 관점을 완전히 재배열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입장과 그것을 실증적으로 받쳐줄 수 있는 연구로 고양되어야 한다. 양은희는 이 논문 뿐 아니라, 전시기획이나 비평 활동에서도 페미니즘을 강조하는데, 필자는 페미니즘을 출발로 보지 말고 도달해야 할 미지의 가치로 보고, 그것에 접근하는 이론적, 실천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 뿐 아니라, 질료와 형식, 사물과 말, 현실과 허구, 자연과 문화, 몸과 담론, 객체와 주체, 육체와 정신, 감성과 이성, 회귀와 진보, 무의식과 의식, 사적영역과 공적영역 등 많은 대립 항 사이에 걸쳐서 연동되는 복잡한 문제이다. 부정적 주변화를 넘어서 긍정적 가치로 고양되어야 하는 여성은 단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어야 한다. ‘되기’란 존재와 달리 미지의 개념이다. 그것은 기존의 구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많이 페미니즘이 논구되었어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면, 페미니즘은 무명의 영토에서 다시 시작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조사한 방대한 담론들이 대부분 논문 및 논문이라는 모델을 가지고 서술된 것이라 할 때, 여성이 상징적 언어중의 언어라 할 수 있는 논문의 방식으로 제대로 말해질 수 있는지의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페미니즘을 말하는 그 주체는 누구인가? 이론 수입국으로서 한국의 지식인은 온통 제 1세계의 언어로 된 상징적 구조 속에서 재갈을 물린 채 말한다. 우리에게 페미니즘은 이중의 의미에서 타자의 언어로 다가온다. 현대의 정신분석학이 말하듯이, 상징적 언어로 진입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 여성성의 핵심인 모성과의 절연이라고 할 때, 널리 인정되는 ‘객관적’ 방식과 다른 말하기의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점에서 본 논문의 시작이 3인칭 관찰자적 시점이 아니라, 작가의 학창시절 체험부터 서술되는 점은 친근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페미니즘 이론의 존재감이 부족한 원인에 대해 ‘전반적인 미술비평의 약세’(p11)를 지적한다. 이는 정확한 판단이다.

 

페미니즘은 무엇보다도 미술계와 여성적 삶의 현장과 밀접하다고 볼 때, 이론이 아무리 화려한들 현장에서의 작품과 작가에서 실례를 발견할 수 없다면 괴리만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인 가부장 문화가 아직 남아 있는 한국에서 여성들이 목적의식적으로 페미니즘 이론을 실제에 적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미술계에도 여초 현상은 지배적이지만, 여성인력 과잉이 자연스럽게 여성에 우호적인 미술환경을 조성하지는 못한다. 예전에 주로 여성에게 해당되었던 무보수 노동(그림자 노동)--이반 일리치의 [젠더]에 의하면, 그림자 노동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제활동, 현물이전의 경제, 비 화폐 시장, 셀프 서비스, 자조 자발적 활동의 영역’이다—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처지가 한 계급이 처한 상황, 또는 운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학자적 엄밀함과 열정을 겸비하고 꾸준히 실천되어야 할 이론이 예술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그림자 노동화 되고 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다. 

 

예술 자체가 타자화 되어 있다면 페미니즘 예술 또한 무슨 소용인가? 그림자 노동의 영역에서조차 여성은 주변화 되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 점에서 저자의 ‘다행이라면 작년에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선출되어 향후 여성과 관련된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p13)는 말은 다소 낙관적인 진단은 아닌가. 육아나 생계문제 같이 여성이 처한 전형적 현실의 벽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지식인들에게도 불어 닥친 불안정한 고용시장을 극복하고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이제 타자의 담론으로 간주되며,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유한계급의 장식물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문화예술 부문에서 여성의 수적 강세에 비해 페미니즘 담론 및 실천이 지지부진한 원인의 하나이다.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실천해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먼만큼 적당한 균형 감각이 아니라, 과도함이 요구된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동일시하기 싫은 반쪽의 진실을 넘어서 더 전반적인, 더 근본적인, 더 주관적인(그래서 객관적일 수 있는) 연구와 실천이 필요하다.     

     

출전;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여름 학술대회-[페미니즘을 다시 생각 한다; 한국 근현대 미술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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