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평론 일반〕
베르그송, 들뢰즈의 철학에 내재한 가상현실 (1편)
김 성 호*
| <차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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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Ⅰ. 베르그송_‘잠재적 기억’과 ‘물질로서의 이마쥬’ Ⅱ. 들뢰즈_‘시뮬라크르 이마쥬’와 ‘물질의 운동' Ⅲ. 디지털 가상현실_특이성을 통한 비트의 전환 Ⅳ. 반투명한 가상현실_운동성의 이마쥬와 다중감각의 주체 Ⅴ. 반투명성과 새로운 신체를 요청하는 디지털 가상현실 체험 결론 |
서론
오늘날 언급하고 있는 가상현실réalité virtuelle은 인간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의 개념으로부터 유발되는 디지털 가상현실이다. 즉 컴퓨터를 매개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서 창출되는 ‘현실처럼 구성된 가상환경’이자, ‘현실화된 가상환경’이다. 디지털 가상현실은 우리에게 인터랙션과 커뮤니케이션을 미리 가상 체험케 하고 그것이 현실계에서 가능하도록 돕는 역할(비행기 조정 시뮬레이션이나 의학 임상 실험, 아파트 모델 하우스 가상 체험과 같은 경우) 뿐 아니라 유희와 놀이의 측면(디지털 영상 게임 및 테마파크의 시뮬레이션 장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현실’에 깊이 잠입해 있는 ‘또 다른 현실’이다. 이것(이곳)은 이제 우리의 유용성을 위한 테크놀로지로 인식되는 것을 넘어서 이제 그것(그곳) 자체가 우리의 ‘신체화된 사건’으로 현실 도처에 편재한다. 그것(그곳)은 이미 실재이다.
디지털 시대에 살지 않았던 베르그송과 들뢰즈가 사유한 철학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어떤 철학보다 명쾌하게 디지털 가상현실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유의 바탕이다. 특히 들뢰즈의 사유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여기서 베르그송으로부터 촉발되고 들뢰즈로부터 완성된 존재에 관한 사유의 눈을 빌어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가상현실과 관련한 문제들을 꼼꼼히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무수한 세부적 담론들을 꿰뚫어 사유할 수 있는 ‘성찰의 바탕’을 고민해 보기로 하자.
I. 베르그송_‘잠재적 기억’과 ‘물질로서의 이마쥬’
베르그송에게서 이마쥬는 철학을 위한 하나의 단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존재론적이다. 그는 심상, 상상작용을 거친 추상적 영역이나 실재와 별리된 가상의 영역에서 이마쥬를 파악하기 보다는 그것을 존재론적으로 파악한다. 즉 그에게서 이마쥬란 사물에 대한 주관적 심상이나 관념의 영역도 아니고 사물의 실체를 재현하거나 지시하는 객관적 표상도 아니다.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이마쥬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은 ‘존재의 본성'을 파악하는 것에 집중되기 보다는 다음처럼 ‘존재의 양상 혹은 양태'을 성찰하는 것에 집중된다.
“이마쥬는 관념론자가 표상이라고 부르는 것 이상의 존재, 실재론자가 사물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덜한 존재, 즉 사물과 표상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존재.”1)이다.
베르그송이 이마쥬의 존재론을 이처럼 정의한 까닭은 이전까지의 관념론과 실재론 사이의 대립을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관념론자들은 주관에게 주어지는 관념 즉 표상의 확실성만을 인정할 뿐이며, 실재론자들은 주관 밖에 위치한 사물의 실재성만을 인정할 뿐이기 때문에 양측의 입장을 해결하는 방법이 사유된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물질matière로서 존재하는 이마쥬이다. 베르그송에게 이마쥬는 이 세상에 현상하는 모든 물질이다. 따라서 “물질은 이마쥬들의 전체”2)이며 물질로 된 이 세상은 곧 이마쥬들의 총체이다.
그런데, 베르그송에게서 이마쥬는 잠재적인 기억mémoire virtuelle으로부터 현실화되어 나타나는 존재이다. 그러니까 우리들 지각perception으로 촉발되지 않는 모든 기억은 그것이 현실화되지 않는 가능태3)로 존재할 뿐이다. 그것들은 무의식이 아니라 아직 의식화 되지 않은 상태, 의식이 관여하지 않은 상태로서의 가능적 존재인 잠재성의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실재이다. 지각으로 촉발되지 않는 모든 기억들은 잠재적 상태에 존재하는 ‘잠재적 실재’인 것이다. 모든 이마쥬들은 지각이 작동할 때 비로소 기억으로부터 건져 올려져 현실화actualisation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이마쥬들은 전적으로 자유로운(우리의 기억과 지각의 열고 닫음 그리고 실행과 실행하지 않음과 상관없이) 잠재성의 존재인 기억으로부터 출발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지각은 기억이라는 잠재성의 존재를 이마쥬로 구체화하는 도구이다. 그런 면에서 지각은 기억과 공존한다. 이러한 기억과 지각의 공존성을 재현하는 베르그송의 원뿔 모형4)을 잠시 살펴보자.
여기서 원뿔은 현재의 지각(꼭지점S)과 과거의 기억(구역 AB, A'B', A'B')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3단계로 간략히 고찰하고 있는 기억의 구역들은 무수히 많은 깊은 수준을 대표적으로 표상한 것이다. 여기서 기억의 수준들은 현재적 지각 S가 맞닥뜨리고 있는 어떤 특정 관심에 따라 응축하면서 그 관심 주변에 모여든다. 관심의 정도에 따라 그 응축의 정도는 달리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이 의식처럼 무수히 다양한 잠재적인 것들이 내부에서 상호침투하며 변화 생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5) 베르그송은 현재적 지각과 공존하고 있는 잠재적 과거의 전체가 기억의 깊이에 따라 혹은 그 포괄성에 따라 늘었다가가 줄었다가 하는 고무풍선과 같은 현상을 지속화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지각과 기억의 공존을 가시화하고 있다. 들뢰즈는 이러한 베르그송의 지속은 연속보다 공존으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조차 한다. 여기서 이마쥬는 지각을 통해서 기억으로부터 끌어올려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잠재적 기억으로부터 끌어올려져 이마쥬로 전환되는 현실화의 과정 자체가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 연구자들에게 디지털가상현실에 대한 연구의 한 주제로 진지하게 성찰되고 있다는 점이다.6) 즉 가상현실 연구에 있어, ‘가상현실réalité virtuelle'을 실재와 대비되는 부재 혹은 허구의 차원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잠재'로 이해하는 것이자, 아울러 ‘가상현실 체험’을 현실화의 과정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다. ‘가상’의 사전적 의미가 ‘잠재성 혹은 사실과 다름없음'인 것처럼, 가상현실이란 베르그송의 잠재적 기억과 같은 것이다. 기억이란 ‘현실화된 실재'는 아니지만 ‘잠재적 실재réalité virtuelle'인 것이다.
가상과 현실을 부단히 오고가며 둘 사이의 문제를 모호하게 정체화identification시키는 잠재적 상태 즉 잠세태virtualité란 실상 베르그송의 철학을 계승한 들뢰즈에게서 보다 구체화된 것이지만, 그 근원은 위와 같은 베르그송의 존재론적 성찰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베르그송 철학의 ‘기억’과 가상현실의 ‘가상’은 잠재적 실재라는 공통항으로 묶이는 지점이 된다. 또한 베르그송 철학에서 ‘기억’은 ‘지각’을 통해 ‘이마쥬’로 현실화되고, 가상현실의 ‘가상’은 ‘지각‘을 통해 ‘가상현실 체험’으로 현실화된다. 물론 가상현실이란 말 자체가 ‘가상이 이미 현실화된 존재’임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지각’을 통해서 경험될 뿐이다. 즉 지각이라는 ‘가상현실 체험’을 통해서만 현실화되는 것이다.
한편, 베르그송에게서 이마쥬의 존재론은 들뢰즈에게서 시뮬라크르라는 운동성의 이마쥬로 보다 더 구체화되면서 오늘날 가상현실 체험에 관한 풍부한 논의의 바탕을 제공한다.
II. 들뢰즈_‘시뮬라크르 이마쥬’와 ‘물질의 운동’
들뢰즈는 앞서 살펴본 베르그송의 ‘기억과 이미지’에 관한 잠재성과 가능성possibilité 사이에 존재하는 문제의식을 계승하고 있다. 들뢰즈는 베르그송의 사유를 분석하면서 잠재성은 “차이가 분화되면서 현실화되는”7) 방식으로 실존하지만, 가능성은 “실재가 생산되었을 때 그것의 이마쥬를 과거로 투사하는 정신행위”8)로서 존재하는데 그침을 피력한다. 이처럼 들뢰즈의 철학의 핵심은 잠재성에 의미에 방점을 찍는데 있다. 이전의 동일성과 표상의 철학으로부터 소외받았던 잠재성이 베르그송을 이어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에서 주요하게 부상하는 것이다.
그는 잠재성이 이미 실재임을 피력하는 베르그송의 견해를 다음처럼 계승한다.
“잠재적인 것은 실재적인 것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현실적인 것에만 대립된다.” 9)
베르그송이 설명한 잠재적 기억으로부터 물질적 이마쥬로 현실화되는 과정은 들뢰즈에게서도 매우 주요하다. 특히 들뢰즈는 이마쥬를 ‘현실화된 것’으로 바라보는 베르그송의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여기에 이마쥬가 ‘물질의 자격으로서 벌이는 현실화의 운동의 차원’에 보다 더 주목한다.
“잠재적인 것은 현실화되는 조건에서 잠재적인 것이며 현실화되면서 그 현실화의 운동과 분리될 수 없다.” 10)
들뢰즈는 한발 더 나아가 베르그송이 바로보는 이마쥬를 시뮬라크르simulacre로 재정의하면서 이것을 무수한 차이를 생성하는 역동적인 “운동-이마쥬image-mouvement”11)로 해석한다. 가상현실을 살피는 우리의 논의에서, 들뢰즈의 철학의 유의미성은 이러한 시뮬라크르 이론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전까지 저평가되었던 시뮬라크르의 ‘복제성'을 긍정적 개념으로 부상시키고 시뮬라크르 이마쥬를 역동성의 존재로 정초해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시뮬라크르는 원래 플라톤에 의해 정의된 개념이다.12) 즉, 원형인 이데아, 이데아의 복제물인 현실, 그리고 현실을 복제한 이마쥬로 나뉘면서 이마쥬 중에서도 가장 하급의 것으로 평가된 것이 바로 시뮬라크르simulacre이다. 이처럼 플라톤의 형상이론théorie des Idés은 최상의 형상인 이데아라는 원본과 그것과 유사성을 지니는 복제물, 그리고 최하의 시뮬라크르의 순서로 중요도를 매기면서, 원본을 특권화시키는 형이상학적 이분법을 창출한다. 여기서 이데아적 원본의 형상을 물려받은 순수 혈통인 복제물은 유사성의 차원 때문에 후계자의 지위를 견지하지만, 시뮬라크르는 그렇지 못하다. 복제의 복제를 통해서 원본과의 유사성을 상실한 시뮬라크르는 “타락, 곁가지를 함축”13)하는 서자가 될 따름이다. 즉 플라톤에게서 시뮬라크르는 궁극적으로 유사성을 끝없이 위협하며, 부조화, 차이, 비상사성을 유발시키는 하등의 존재일 따름이다.
그러나 들뢰즈에게서 이러한 시뮬라크르는 타락한 서자의 지위를 벗고 새롭게 해석된다. 이데아의 유사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플라톤의 시뮬라크르의 특성 자체가 오히려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긍정적 존재로 부상하게 하는 철학이 들뢰즈로부터 고안된 것이다. 플라톤의 ‘유사성 논리’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허물어뜨리며 새롭게 정체화시킨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다름 아닌 ‘오직 차이들만이 서로 유사’할 따름인 “개념 없는 차이différence sans concept”14)로서의 존재로 변환된다. 즉, 그것은 유사성에 근거하는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동일성을 지니는 세계이자 차이라는 동일자가 스스로를 차이로 만드는 ‘사건의 세계’이다. 차이만이 동일성을 지니는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그 어떤 것도 원형이 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복제물이 될 수 없는”15) 세계를 형성한다. 그런 면에서 들뢰즈에게서 시뮬라크르는 “원본과 복제물, 모델과 재생산을 동시에 부정하는 긍정적 잠재력'16)을 소유하게 되면서 모든 이분법적 사유를 일순간에 무너뜨린다. 따라서 들뢰즈에게서 시뮬라크르의 본성은 새로운 원본의 위상을 강탈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차이를 생성하는 것에 존재한다.
따라서 들뢰즈의 이마쥬로서의 시뮬라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관건은 오직 차이만을 생성한다는 ‘차이의 반복'17)에 관한 것이다. 그에게서 ’차이를 생성하는 과정인 반복répétition‘은 결국 동일성의 비반복non-répétition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렇듯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동일성이 일자의 동일성이나 전체의 통일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강력한 다양체와 형태 변이의 능력을 위해서 상실되는 그리고 잠재력의 관계들이 서로에게 작용을 가하는 매혹적인 세계”18)로 정초된다. 들뢰즈에게 그것은 모든 이분법적 사유를 무너뜨리는 “긍정적이고 즐거운 사건”19)의 철학인 것이다.
유념할 것은 들뢰즈에게서 ‘차이의 생성’과 ‘사건의 철학’은 시뮬라크르 이마쥬를 ‘운동성의 것’으로 정초시킨다는 것이다. 들뢰즈에게서 이마쥬, 즉 시뮬라크르는 규정되지 않은 혼돈의 상태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어떤 발생적인 근원의 힘이자, 생성을 지향하는 “가능한 운동mouvement possible”20)이다. 그것은 아직 의미론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무의미’의 상태이지만, 점진적으로 의미를 부여받는 영역으로 계열화되기를 기다리면서 스스로 운동하는 존재이다.
들뢰즈는 운동mouvement을 “전체 속에서의 질적 변화changement qualitatif dans un tout”라고 정의한다. 21) 그것은 물론, “지속은 불가분의 멜로디의 연속성으로, 과거가 현재 안에 들어와 불가분의 전체를 형성한다.'22)는 이질성hétérogénité이 연쇄되는 '베르그송의 지속durée의 철학'을 계승한 것이다. 베르그송이 이마쥬를 잠재적 기억으로부터 현실화된 물질적 존재로 파악하고 있듯이 들뢰즈 역시 이마쥬(=시뮬라크르)를 현실화된 존재이면서 현실화의 운동을 지속하고 있는 물질적 존재로서 파악한다.
한편, 들뢰즈에게서 운동성의 시뮬라크르 이미지는 “특이성의 표현의 특질을 지닌 채 지속적으로 변주하고 있는 물질의 흐름”23)이다. 그런 면에서 “운동-이미지image-mouvement와 흐름-물질matière-écoulement은 완벽히 같은 것이다.”24)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들뢰즈의 시뮬라크 이마쥬의 위상과 그 존재론과 관련하여 다음처럼 정리해볼 수 있겠다. : ‘시뮬라크르simulacre = 이마쥬images = 운동mouvement = 물질matière’
III. 디지털 가상현실_특이성을 통한 비트의 전환
이마쥬는 베르그송의 관점에서 ‘잠재적 기억의 현실화된 물질적 존재’로 정리된다. 즉 현실화 작용, 물질들로 축약된다. 한편, 들뢰즈의 관점에서, 그것은 ‘시뮬라크르, 이마쥬, 운동, 물질’로 정리된다. 우리는 두 철학자의 이러한 관점들을 앞으로 이어질 디지털 가상현실 논의에 있어서도, 다양한 형식으로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구현된 오늘날의 가상현실을 베르그송과 들뢰즈의 눈을 빌어 바라보는 이 지점에서, 혹자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0과 1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비물질성의 비트가 만들어내는 디지털 정보가 어떻게 물질적인 이마쥬와 조우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앞서의 베르그송의 이마쥬론에서 우리의 지각이 잠재적 기억으로부터 현실화된 이미지를 건져올리는 것을 검토했듯이, 이 역시 물질이자 현실화된 이미지로 정의된다. 즉 디지털 정보인 잠재적인 디지털 비트 역시 지각을 통해 아날로그 이마쥬라는 물질로 현실화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가상현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가상현실은 베르그송의 기억과 같은 공간이며 그것에 대한 체험은 지각이 창출하는 이마쥬의 존재론과 같은 것이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고찰을 위해서 우리는 ‘가상현실을 이루는 디지털 테크놀로지'25)에 대한 이해를 먼저 검토할 필요성에 직면한다. 오늘날 가상현실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한 몸처럼 인식되는 까닭은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전의 어설펐던 형태로 존재했던 가상현실의 이상을 현실의 장에서 극적으로 성취하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비물질성의 디지털 정보와 물질성의 이마쥬의 조우에 대한 고찰을 위한 이 장에서, 가상현실을 이루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핵심은 이마쥬뿐만 아니라, 소리, 텍스트 등 어떠한 자료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이 수(數)에 기초한 전자적 정보로 전환 가능하다는 점이다. 디지털 어원인 디지트digit가 라틴어로 손가락 혹은 10개의 숫자를 의미하듯이,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하고 셈을 하듯이 ‘이산(離散)적으로 변화하는 신호’26)로 모든 것을 전환시킬 수 있다. 디지털은 아무런 임펄스가 없는 상태를 0, 임펄스가 가해지는 상태를 1로 인식하는 0과 1의 이진법 체계인데, 이 체계를 통해 어떠한 정보도 숫자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을 둘러싼 기본적인 특성인 아날로그 정보를 디지털 전환 과정, 즉 숫자로 표현하는 수적 재현numerical representation의 과정을 거쳐 프로그램화 해야만 한다. 강연, 음악 연주, 바람 소리와 같은 현실계의 연속적인 아날로그 소스를 프로그래밍을 통해 0, 1 혹은 on, off 등과 같은 2진수, 즉 비트bit로 된 수치로 전환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트로 된 디지털 정보는 당연히 비물질성의 존재이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는 “비트가 크기도 무게도 색깔도 없으며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특징을 지녔다”27)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비트는 ‘존재’가 아니라 ‘상태’이며 참 또는 거짓, on 또는 off, up 또는 down, 흰색 또는 검은색처럼 서로 짝을 이루는 상대개념이다. 모든 디지털 매체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비트의 추상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비트의 조합상태가 바로 디지털 세계이며 이 디지털 세계는 결국 “0과 1로 조각된 가상의 세계'28)이자 비물질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생산되는 이마쥬는 어떠한가? 예를 들어 아날로그 자연 풍경 이마쥬를 수적 정보로 입력, 저장한 디지털 비디오녹화기에서 우리가 촬영한 동영상을 다시 재생했을 때 그 움직이는 이마쥬는 어떠한 것인가? 물론 그것은 물질로 현실화된 이미지이다. 구제척으로 그것은 비물질의 디지털 비트가 물질화된 아날로그 이미지로 재생된 동영상 이마쥬인 것이다. 피상적으로 이것은 디지털 카메라 안의 메모리에서 초당 수백만 번 비트 시퀀스가 갱신되면서 입력했던 디지털 정보를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동영상 이미지로 순식간에 ‘DA전환’(디지털정보로부터 아날로그정보로의 전환)을 이루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가상현실 체험이란 이처럼 간단히 말해 ‘비트가 이마쥬로 전환된 가상현실’에 대한 체험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베르그송이나 들뢰즈의 이마쥬 존재론의 차원에서도 검토되었듯이, 비물질적이고 잠재적인 상태로부터 물질적 이마쥬를 불러내는 과정이 인간의 ‘지각’이 작동하면서 비로소 가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이나 들뢰즈에게서 이마쥬를 지각한다는 것은 우리의 눈, 귀, 몸과 같은 감각으로 대면하는 물질에 대한 경험이다. 특히 들뢰즈에게 있어서 우리의 ‘지각’이란 흐르는 유동체 속에서 실행되는 거의 순간적인 ‘절단coupe’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파악되는 이마쥬란 정지하는 절단면들coupes immobiles이기 보다는 ‘움직이는 절단면들coupes mobiles’29)로 드러난다. 들뢰즈에게 있어 이미지란 끊임없는 물질의 운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의 논의인 가상현실 체험, 특히 디지털 가상현실 체험은 들뢰즈 식의 ‘움직이는 절단면들’을 지각하는 경험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그것은 HMD와 같은 영상 디스플레이 장치 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디스플레이 장치들이 유저user의 시공간인 현실계에서 작동함으로써 비물질적인 디지털 정보를 다시 물질적인 아날로그적 이마쥬로 전환시켜 놓는다. 즉 디지털 가상현실 체험이란 디지털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필연적으로 현실계에서 가상현실(또는 가상현실의 시뮬라크르 이마쥬)을 경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가상현실은 여전히 인간 주체의 지각에 의해서 경험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상현실 체험은 하나의 ‘사건’이다. 그것은 들뢰즈 식으로 사건의 철학이 내포하고 있는 ‘특이성singularité’으로부터 기인한다. 특이성이란 ‘개체적이거나 인칭적인 것이 아니라 개체들과 인칭들의 발생을 주도하여 가능하게 하는’ 중성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개별적으로 구체화된 사건 이전의 순수한 사건과 같다.30) 아울러 특이성은 계열들의 각 항들이 우발점point aléatoire 31)(사건의 발생)을 만나 분화를 거쳐 현실화될 때 그 작용을 주도한다. 우발점은 각각 물→얼음, 물→수증기로 변모시키는 0 C와 100 C라는 변환점과 같은 것으로 비교될 수 있는데, 끓는 물이 100 C라는 변환점(또는 임계점)에 이르러 비로소 기화되듯이, 특이성은 계열들의 연속체 속에 숨어서 존재하다가 우발점에 이르러 계열체로부터 솟아오른다.
“현실화의 규칙이란 더 이상의 유사나 한정이 아니라 갈라짐 그리고 창조”32)라는 들뢰즈의 진술에서 엿볼 수 있듯이, 가상현실에서의 현실화 경험, 즉 운동-이마쥬를 대면하면서 관객들은 가상현실 체험이라는 ‘특이성으로부터 유발되는 창조적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특이성을 통한 비트의 전환’이다. 풀어 말하면 비트라는 디지털 비물질이 물질화되는 현실화에 대한 우리의 참여이자, 우리의 지각이 특이성을 통해 작동하는 사건이 된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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