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
새로운 기대의 지평을 향하여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화가 곽훈의 작품세계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어쩌면 한국 현대미술의 숙명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입에 닳도록 회자되는 소위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단어, 그것의 내면에 담겨있는 의미가 무엇이건 간에 한국미술은 세계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상명제가 일찍이 곽훈이라는 한 선구적 작가에 의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역으로 예술에서의 세계화․보편화는 문화 수출이라는 측면에서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곽훈을 비롯하여 구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출신 작가들의 활동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썩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국에서 청년시절을 보낸 뒤 구미 제국을 찾은 해외작가들은 풍부한 조국의 문화적․정신적 유산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견지하고 있는 ‘문화적 정체성(cultural identity)’의 내용이야말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전령의 핵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곽훈은 한국에서는 서양을, 서양에서는 한국을 배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이 말은 해외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한국작가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이리라. 그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에서 미술 수업을 받을 때 한국의 문화나 예술보다는 서구의 문화․예술에 경도됐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것을 알고자하는 열망보다는 서구의 것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많았고, 그런 까닭에 한국 현대미술은 고작 서구미술의 변방 정도로 치부돼 왔던 것이다. 한국의 작가들 사이에서 자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해외 유학의 열풍이 일기 시작한 70년대 이후이다. 곽훈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미국에 온 이후로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의 배경과 기억이었습니다. 나는 내 상상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난 수 천년 전의 조상들이 남긴 유물의 파편으로부터 현재의 내 작품 속으로 생명감을 불어넣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곽훈, 작가발언 중에서)
1975년, 서른 다섯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미국 땅을 밟은 그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더욱 조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문화적 정체성의 참 가치에 대해 눈뜨게 되면서 비로소 ‘한국적인 것’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미술공부를 할 때는 항상 유럽미술을 공부했지 한국이나 동양미술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그의 술회 속에는 일말의 아쉬움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는 미국에 정착한 뒤 ‘동양미술과 한국미술, 그리고 불교’를 공부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 그는 극심한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그의 말처럼 “한국에서 전시회를 가지면 미국화가로 취급받고 미국에서는 한국화가로 취급받는” 의식의 분열 현상이 찾아왔던 것이다. 이처럼 한 바탕 홍역을 겪은 그는 비로소 한국의 문화․역사적 배경을 견지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곽훈은 8.15 해방 이전인 1941년 생이다. 그는 모국어를 제대로 교육받은 세대에 속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정(日政)의 잔재를 유년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으며, 한국동란의 쓰라린 추억을 지니고 있다. 조국 근대화는 청년 시절에 겪었고, 그가 미국으로 떠나갈 무렵은 조국의 경제적 사정이 훨씬 나아졌을 때였다. 이른바 ‘수출입국’의 시대였던 것이다.
이 짧은 글에서 그가 쌓은 업적을 다 기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곽훈은 한국적인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한 정상급 작가로 꼽힌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주문 연작’, ‘찻잔 연작’, ‘기(氣) 연작’, ‘겁(怯) 연작’과 같은 기왕의 시리즈들을 비롯하여 옹기설치작업, 정수기 작업 등 그가 제작한 작품들은 다같이 한국 내지는 동양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깊은 내면적 성찰을 통해 조형화한 것들이다.
오랜 수련기간을 거친 그의 회화작품들 속에는 역사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성찰이 내면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칠하고, 긁고, 입히고, 닦아내는, 부단한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이 역사성은 일종의 은유로 화면에 고착된다. 그것은 서구의 역사가 아닌 동양의 역사이며, 한국의 역사이다. 방법론은 유사하되 문화적 코드의 원류는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곽훈의 작품에 대해 긴 평문을 쓴 수잔 라슨 박사는 그의 작품을 싸이 톰블리의 작품과 비교하여 이 점을 고찰하고 있다. 수잔 라슨, <곽훈의 회화 참조>).
그러한 역사가 작품상에서 현재화하는 방식은 ‘시간성’이다. 작가의 행위를 매개로 작품에 침투하는 이 시간성은 부단한 행위의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 ‘겁(Kalpa)’ 연작에 보이는 헐벗고 찢겨 형해화된 파편들의 이미지, ‘기(氣)’ 연작에 나타난 단면이 잘린 삼각뿔이나 원통형의 도상들은 이동을 의미하는 기호나 직선 혹은 원 등을 통해 시간성을 함유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작품에 항상 현재와 과거 사이에, 그리고 순간과 영속 사이에 다리를 놓아왔다.”(수잔 라슨, <곽훈의 회화>)
수잔 라슨의 말처럼 곽훈은 순간적인 것과 영속적인 것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자인지도 모른다. 그는 한국문화의 특수한 것, 가령 다완, 실패, 옹기 등을 통해 문화보편적인 것을 말하고자 한다. 또한 주변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을 통해 영속적인 지평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의 ‘기(氣)’는 동양과 서양을 두루 관통하는 보편적 에너지로서의 기이다. 찰라를 영속화할 수 있는 것은 시각적 이미지라는 데 그는 착안한다. ‘기’와 ‘겁’을 어떻게 이미지화 할 것인가? 시간(역사)에 대한 고유의 축약법은 겹겹이 이루어진 필선들의 층위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다른 순간들, 다른 생명들의 누적된 층위에다 새로운 순간들과 느낌을 기록”(수잔 라슨)함으로써 이미지화가 가능한 것이다. 장구한 역사의 퇴적은 이제 곽훈이라는 한 화가의 개인적 재능과 상상력을 통해 화면 위에서 육화된다. 그곳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미래로 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소용돌이 문양은 시간의 순환성을 말해준다. 모더니티의 직선 운동이 아니라, 전(前) 모더니티의 싱싱한 비의를 상징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시각은 문명비판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각의 보편성이라는 보다 폭넓은 기대의 지평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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