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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신용철, 역사와 현실을 가로지르는 큐레이터

김준기

ⓒ 제공 신용철


신용철은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부산 토박이다. 청년 시절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마당극 연희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한다’는 김열규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민속학, 신화학, 서사학, 기호학, 미학 등을 섭렵해오던 그는 2011년부터 부산민주공원 큐레이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현대사에 깊이 새겨진 민중미술의 역사를 따라 조사연구와 전시기획, 출판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수준 높은 민중미술 컬렉션을 가진 부산민주공원의 큐레이터로서 그는 이 컬렉션 하나하나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으며 동시대 미술계와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민중미술 2013》으로 시작해 해마다 개최해온 민중미술 시리즈 전시는 역사 속의 작품과 작가들을 오늘로 소환하여 동시대의 미술 맥락에 다시 자리잡게 하는 일이다. 민중미술이라는 언어로 동시대 미술계로 소환하는 것은 뒷걸음치는 일이다. 나는 평소 신용철 큐레이터를 ‘퇴행의 아이콘’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 말의 속뜻은 좀 다르다. 모두가 다 앞만 보고 달려갈 때, 누군가는 뒤를 돌아보며 과거를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일을 한다. 신용철의 일이 바로 그렇다. 민중미술로 퇴행하여 진보의 길을 모색하는 것. 그는 이러한 자신의 위치를 민중미술의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연대의 아이콘’으로 명명하며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신용철은 미술비평가 활동도 하고 있다. 그는 한국 미술계의 비평적 논의 구조에 부동의하는 사람이다. 그는 예술의 역사와 미학과 비평 곳곳에 자리잡은 고정된 관념을 털어내고 작가와 작품과 감상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지향한다. 큐레이터로서 처신하며 비평가 활동을 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지만, 작품에 대해 말하는 사람으로서의 위치는 동일하다. 그는 비평의 위치를 학술이 아닌 예술의 경지로 규정한다. 예술에 대한 논문 형식의 접근이라면 학술활동이겠지만, 문학비평이 예술의 한 장르인 것처럼, 미술비평 또한 예술적 태도와 과정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 그의 미술비평은 ‘노래가 들리는 미술작품’에 대해 글을 쓰며 작품과 대화하는 신용철의 비나리다.

그는 자칭 ‘시골큐레이터’다. 대도시 부산에 살며 일하는 사람인 그는 서울과 부산의 위계로 인하여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가고 올라간다고 말하는 인식의 왜곡에 맞서 시골큐레이터임을 자처한다. 서울도 시골이고 부산도 시골이라는 생각으로 평등하게 연대하는 것. 부산 큐레이터 신용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정이다. 이 평등한 눈으로 그는 예술과 주술과 기술의 공동체를 꿈꾼다. 큐레이터로서 신용철정신의 핵심은 ‘소술공동체’의 꿈에 있다. 소농공동체라는 말뜻에 착안한 것인데, 그것은 ‘예술-주술-기술이 만나는 아나키, 히피, 집시의 공동체’다. 

신용철은 한국의 큐레이터들 가운데 보기 드물게 컬렉션 기반의 연구와 기획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1,000여 점의 민중미술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조사연구와 소장작가 아카이빙, 부산지역 민중미술 아카이빙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부산민주공원은 2025년 올해 분관으로 ‘민주항쟁기록관’을 개관한다. 이에 따라 소장품 관리와 연구 체계도 진화한다. 지난 해에는 ‘역사 사건의 미술 형상화 양상에 대한 시론’으로 ‘재현-발현-현현’이라는 기호학적 틀로 동학미술 연구를 했다. 이 틀로 부마항쟁, 5.18민중항쟁, 6월항쟁 등을 다루고, 주요 예술가들의 작가론을 쓸 예정이다. 시인과 로커를 꿈꾸다가 탈춤과 풍물과 굿을 만난 청년 신용철은 어느덧 역사와 현실을 가로지르는 민중미술 연구자/기획자로 성큼성큼 제 길을 걷고 있다.


- 신용철(1970- ) 인제대 국문학과, 동대학원 석사, 부산대 예술대학 미학전공 박사수료, 인제대 철학과 겸임교수(2002-2011). 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2007-2010),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학예실장(2010), 부산민주공원 학예실장(2011- ), 부산민예총 시각예술위원회 회원, 『부산문화예술아카이빙-김석출』(공저, 부산문화재단, 2022), 『시골큐레이터 표류기』(베리테, 2023)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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