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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목판화 70년, 전통의 수용과 현대적 변용

고충환



한국현대목판화 70년, 전통의 수용과 현대적 변용(1)


고충환 | 미술평론가


판화에는 오리지널 판화와 복제판화 두 종류가 있다. 오리지널 판화란 통상적으로 말하는 판화인데 한문으로 옛날에는 板畵로 쓰였으나 지금은 版畵로 쓰고 있다. 이는 오래전에 나무에만 새겨서 찍어내는 방법에서, 근대 현대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인쇄 방법이 발명된 것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1) 실제로도 18세기까지만 해도 목판화가 대세였고, 나머지 판법은 모두 19세기 이후 새로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여기에 목판화는 기본적으로 볼록판이지만, 하기에 따라서 오목판도 나아가 평판마저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목판화는 사실상 모든 판화의 모태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3)  이처럼 목판화는 다른 판화와 비교할 수 없는 역사와 전통을 내재하고 있고, 여기에 모든 현대에 어울리는 자기 변신이 가능한 미디어,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면서 아우르는 미디어로 거듭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현대목판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시점은 어떻게 설정될 수 있는가. 종교적인 경전이나 시전지(편지지)와 같은 생활 속 쓰임새를 위해 제작된 판화를 생활판화라고 한다. 이런 생활판화로 치자면 그 기원이 더 위로 소급되는 것이지만, 생활판화를 현대목판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현대목판화는 어떤 계기로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개인전이 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활 속 쓰임새가 아닌, 순수한 심미적 동기가 작동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강열이 목판화로 개인전을 연 1952년으로 그 시점을 소급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4) 아무래도 진정한 계기로 치자면 집단창작행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떤 계기로부터 비롯했는지 보는 것이 일반적일 수 있다. 


한국판화협회와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그렇게 한국현대판화의 시점은 이항성이 아연판으로 제작한 석판화로 첫 개인전을 연 것을 계기로 한국판화협회를 창립한 1958년으로 소급된다. 5)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석판화가 이항성이 창립한 한국판화협회에는 이항성을 비롯한 최영림, 정규, 유강렬, 이상욱, 박수근, 김정자, 김봉태, 김종학, 윤명로, 서승원, 송번수, 강환섭, 김상유, 배륭, 한묵, 김훈 등이 참여했다.
 
같은 해에 제1회 한국판화협회전을 중앙공보관에서 개최했는데, 개최 당시 이항성을 비롯한 유강렬, 이상욱, 김정자, 최영림, 정규, 임직순, 장리석, 변종하, 차혁, 박성삼, 박수근, 최덕휴, 전상범, 이규호 등이 전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전시에 참여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목판화를 제작 선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본격적인 판화 제작이 어려운 당시의 열악한 여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면에는 오랜 목판화의 전통에 대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공감이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그 면면을 보면, 판목의 무늬 그대로를 살린 유강렬의 목판화에서는 전통적인 서체의 자유분방한 변형이 돋보이며, 닥지에 찍어낸 이상욱의 목판화는 심플하면서도 서정적인 화면이 특징이다. 향토성 짙은 최영림의 목판화는 일본 태평양 미술학교 유학 시절, 당시 일본의 목판화가 무나카타 시코의 영향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리 부는 소년과 나체의 여인들을 소재로 한 목가적인 전원 풍경화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각각 1934년과 40년에 일본창작판화가협회전에 입선하기도 한 그는 국내 최초의 현대판화작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또한 1956년 목판화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한 정규의 목판화는 심플한 구성과 회화성이 돋보이는 화면이 특징이다.6)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석재인 화강암의 표면 질감을 도입한 박수근의 목판화는 당시 한국의 서민들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우둘투둘한 표면 질감과 굵고 간략한 선으로 축약된 인체 표현을 통해 그의 목판화는 자신의 회화와 마찬가지로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경우로 생각된다. 

그리고 도미 이전 김봉태의 초기 콜라그래피와 석판화에서는 일상으로부터 차용한 소재의 표면 질감이 고스란히 담긴 물질성을 강조한 점이 특징이며, 도미한 이후 지판과 에칭에서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전통으로부터 유래한 장식 문양을 변주한 색면 구성과 함께 원주민 미술의 토템 폴을 변주한 기하학적 형태가 돋보인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토템 폴 형상에서는 물활론이나 범신론에 대한 일정한 관심과 함께, 기념비적인 특징이 감지된다. 

한국판화협회는 정기적인 협회전과 함께 1968년에 처음 개최된 이후 1975년까지 지속한 신인 공모전을 통해 송번수, 이승일, 김진석, 김태호, 백금남, 이인화 등 차세대 판화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포토스크린 판화 <판토마임>(1972)으로 제2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 7) 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송번수는 이후 페이퍼캐스팅을 통한 가시나무를 형상화하고 있으며, 이승일은 공(空)을 주제로 한 릴리프와 새리그래피를 혼용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그리고 김태호의 판화는 그의 회화에서처럼 재료로 도입한 안료의 물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한편, 그라데이션기법에 의한 색면 구성과 함께 중첩된 화면에 바탕을 둔 추상 화면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백금남의 실크스크린 판화는 글자를 변형시키고 양식화한 일종의 문자 조형 작업이랄 수 있는 캘리그래피의 한 전형을 내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인화는 무수한 비정형의 얼룩들이 중첩된 추상 화면을 연상시키는 딥 에칭 작업과 함께, 회화의 자율성과 목판 고유의 물질적 특성을 극대화한 목판화가 주목된다. 에너지의 무분별한 분출이 느껴지는 딥 에칭과 목판화가 추상적인 감수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968년에는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창립되었는데, 당시 강환섭, 김민자, 김상유, 김정자, 김종학, 김훈, 배륭, 서승원, 유강렬, 윤명로, 이상욱, 전성우, 최영림 등 13인의 작가가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일부 작가들이 한국판화협회 작가와 겹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두 협회의 정체성이 구별되기보다는 연장된 경우로 봐도 좋을 것이다. 1968년 제1회 한국현대판화가협회전을 신세계화랑에서 개최한 본회는 1970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데에 결정적인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김상유는 정상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대신 독학으로 판화를 습득했다는 점에서, 한국현대판화사에 있어서 특이한 경우로 생각된다. 그는 동판화로 제작한 <출구 없는 방>으로 1970년 제1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했다8). 흑백 모노 톤의 화면에 담아낸 함축적이고도 강렬한 죽음의 이미지가 암울했던 당시 시대적 정황에 대한 인식을 고지시키는 한편, 인간 실존의 부조리함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 평가받았을 것이다. 이외에도 그는 마치 전통적인 문양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일종의 모자이크화를 보는 듯한 에칭 동판화를 제안하고 있는데, 이로부터는 전통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런가 하면 연못을 끼고 있는 정자 한가운데에 정좌해 있는 노인을 소재로 한 작품이 전통적인 선비 정신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배륭의 실크스크린 판화에서는 컬러풀한 색면 대비와 함께, 문자의 도입으로 팝아트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와 함께 기하학적인 구조 속에 위치한 인물을 통해서는 일말의 명상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또한 탈앵포르멜을 표방한 그룹 오리진의 맴버이기도 한 서승원의 석판화 <동시성> 시리즈는 기하학적인 형상과 중첩된 색면 구성이 특징이며, 이후 근작에서는 색면이 더 유기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그리고 윤명로가 60년대 초 실크스크린 판화로 제작한 <문신> 연작은 당시 앵포르멜 경향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후 석판화로 제작한 <얼레 짓>과 <익명의 땅> 시리즈는 해먹에 의한 석판화 특유의 미세 얼룩과 번짐 효과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근작에서는 겸제 예찬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과 함께, 리토그래피 제작에 토너를 이용하기도 한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창립에 자극받은 이항성은 협회가 창립된 1968년 <한국현대판화 10년> 전을 기획하기도 했는데, 당시 이항성을 비롯하여 김영주, 정규, 유강렬, 최영림, 배륭, 김정자, 강환섭, 이상욱, 윤명로, 김상유, 김종학 등이 전시에 참여했다. 작가의 명단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판화협회와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작가들을 두루 아우르는, 사실상 당대의 현대판화가들을 망라한 전시였다. 

그리고 이후 1970년에는 동아일보가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를, 그리고 1980년에는 공간이 공간국제판화전을 각 창설했다. 특히 공간국제판화전은 공간국제소형판화전이 원래 명칭이었는데, 소형 판화의 미학적 가치를 지향했다. 출품 작가의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 공모전 형식을 취한 것이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와 다른 점이다. 이후 소형 판화에 제한하는 제한 규정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고, 향후 보다 자유분방한 현대판화를 수용할 요량으로 규격 제한을 폐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5년에는 각 서울판화미술제와 내일의 판화전이 열렸다. 같은 해 한국판화미술진흥회 설립을 계기로 열린 서울판화미술제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초의 판화 전문 아트페어를 표방했고, 이후 판화와 함께 사진과 조각을 아우르는 에디션아트페어로 개칭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서울판화미술제에 자극받아 열린 내일의 판화전은 연이은 3회 전시 후 폐지되었다. 서울판화미술제가 판화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를 꾀했다면, 내일의 판화전이 순수판화의 표현 가능성과 실험적 모색에 있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판화를 대상으로 한 모든 전시에 있어서 한국판화협회와 한국현대판화가협회는 때로 견인차 역할을, 더러는 견제책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한국현대판화를 선도해왔다. 

이 두 협회의 창립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한, 그리고 그 활동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주요 목판화가로는 김형대, 김상구, 안정민, 강행복, 강동석, 서상환, 민경애, 이경희, 김익모, 배남경 같은 작가들이, 그리고 여기에 해외파로 이응노 같은 작가들이 주목된다. 9)
 
목판의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표면에다가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시키는 화염문을 형상화한 김형대의 후광 시리즈는 빛의 현상학을 떠올리게 한다. 좌우대칭 형의 구도를 엄격히 적용한 것이나, 빛과 불의 형상 자체를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존재에 대한 메타포와 결부시킨다. 그리고 흑과 백의 대비가 두드러진 모노 톤의 화면이나, 세부가 생략된 심플한 화면, 최소한의 형과 선으로만 이루어진 절제된 화면, 그리고 판을 중첩 시키지 않고 한 번에 찍어낸 프로세스가 특징인 김상구의 목판화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한 폭의 심상 풍경을 그려 보인다. 

그리고 서상환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영설화원(부산시 남구 용당동 소재)을 중심으로 그동안 <Via DOLOROSA>(1984), <빎>(1985), <당신은 내 어둠을 밝혀 주십니다>(1986), <야훼는 나의 목자>(1988), <엘리엘리레마 사박타니>(1993)와 같은 다수의 오리지널 목판화집을 제작한 바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주로 종교적인, 기독교적인 교리와 기도를 소재로 소환하고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소재 혹은 주제도 그렇지만, 단품보다는 특정 주제의 모음집이 집중적으로 제작된 경우여서 주목된다. 

그런가 하면, 요철효과로 촉각적인 느낌을 강조한 강동석의 목판화는 마치 거친 붓으로 거침없이 그린 것 같은 즉흥성과 역동성이 강조돼 보인다. 엠보싱을 매개로 시각 위주의 이미지를 촉각적인 경험치로 확장하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김익모의 몽상적 풍경 연작은 멀리 내다보이는 안개에 잠긴 남해의 고즈넉한 풍경을 추상화 기호화한 것으로,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느낌을 준다. 

한편으로 상대적으로 메시지가 강한 편인 안정민의 목판화 연작은 거칠고 남성적인 느낌을 주며, 이념성이 강하고 서술적인 점이 특징이다. 이미지를 최소화하는 대신, 색채가 갖는 의미에 메시지를 의탁하는 식의 상징적인 문법이 확인된다. 주걱같이 생긴 구두칼을 세워 잡아 합판의 결을 찢듯이 그어 내리는 과정에서 유래한 특유의 질감이 보통의 목판화(우드컷)와도 세밀 목판화(우드인그레이빙)와도 다른 강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국내 판화계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이경희의 세밀 목판화(눈목판)에서는 정치한 묘사와 함께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느껴진다. 초기에는 단일 이미지에 주력했지만, 언젠가부터 자신이 직접 제작한 이미지 조각을 콜라주 해 상대적으로 더 큰 화면도 가능한, 아마도 회화적 갈증을 풀어줄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목판화의 대표적인 판법으로는 이처럼 우드컷, 우드인그래이빙과 함께 소멸법을 들 수 있다. 한판다색판법인 소멸법은 하나의 이미지를 판 위에 새겨 종이에 찍어내고, 다시 같은 판 위에 다른 이미지를 새겨 찍어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겹겹이 찍히면서 드러나는 중첩 효과로 인해, 다른 판법의 목판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도감 있는 화면을 얻을 수 있다. 중첩된 색면과 스크래치 그리고 두터운 마티에르로 인해 회화적인 느낌이 강한 편이다. 

주요 작가로는 신장식, 임영재, 박구환, 김중걸, 홍진숙 같은 작가들이 있다. 이 가운데 신장식의 목판화는 초롱이나 촛불을 반복 열거하는 과정을 통해서 한국적인 이미지를, 금강산 등의 산수를 소재로 한 전통적인 미적 감수성을 표출시킨다. 그리고 둥지를 소재로 한 임영재의 목판화에서는 화석 이미지와 함께 시간의 지층을, 그 편린을 떠올리게 된다. 한편으로 이어도와 새섬 같은 제주도의 풍광을 배경으로 한 홍진숙의 판화는 지역색이 강한, 그리고 여기에 환경과 관련한 주제 의식을 반영한 일종의 생태판화를 예시해준다. 
그런가 하면, 기법이나 내용 면에서 특이한 경우로서 민경아의 리노컷(압축고무판화)이 주목되는데,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들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지우는, 그리고 그렇게 상호 간 이질적인 것들의 자유자재한 결합과 편집과 재구성이 현대미술과 관련해 창작의 한 방법론으로서 인정받고 있는 패러디 곧 차용의 한 용법을 예시해준다. 그리고 강행복의 판화는 판화의 표현영역과 범주를 설치판화로, 나아가 아티스트북으로 확장 시킨다. 굳이 에디션을 적용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그 자체 일품 판화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배남경은 자신의 판화를 목판평판법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목판화에서 필수과정인 판각 곧 새김질하는 과정이 없이 석판화에서처럼 평판으로 찍어낸다고 해서일 것이다. 여기에 먹과 한국화 물감을 사용해 한지의 배면에 충분히 스며들게 한 것도 주목해 볼 부분이다. 한국화 물감을 수 차례 반복 중첩 시킨 그의 판화에서는 마치 수묵화를 보는 것과 같은 먹의 색감이며 질감이 느껴진다. 색 바랜 흑백사진을 연상시키는 시간의 결이 느껴지고, 그림의 표면 위로 배 나온 나뭇결에 그 시간의 결이며 존재의 결이 고스란히 중첩돼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희미한 기억을 소환한 것 같은, 사라져가는 시간을 되 불러온 것 같은, 아득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일련의 판화에서 작가들은 전통적인(혹은 정통적인) 목판화 고유의 판법을 계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저마다 자신만의 표현을 찾아 판화의 표현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해외파로 목판화에 주력했던 고암 이응노의 경우가 주목된다. 이응노는 1958년 도불해 파리에 정착한 후, 1989년 호암미술관 초대 전시에 참석하지 못한 채 파리 현지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자료를 보면 1962년 파리 파케티 갤러리에서 작가의 첫 개인전 <이응노 콜라주> 전이 열렸으며, 1969년에는 프랑스 누벨 이마쥬 출판사에서 고암의 옵셋 판화집을 제작했고, 1973년에는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이 주최한 <현대판화전>에 초대받았으며, 1977년에는 고암이 가르치던 동양미술학교 수강생들의 전시를 위해서 개설한 파리 고려화랑(부인 박인경 여사가 운영하는)에서 <이응노 판화전>이 열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응노미술관을 중심으로 현재 전해지는 판화 관련 작품들이나 파리 국립도서관 전시에 초대받은 일(전통적으로 유럽에서는 판화 관련 주요 전시들이 곧잘 미술관 대신 도서관에서 열린다), 그리고 개인 판화 모음집이 출간된 것 등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판화는 분명 고암 작업 세계의 뚜렷한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판종을 보면 단연(혹은 아예 전체가) 목판화가 많고, 목판화 중에서도 일반적 경우인 널목판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판목으로는 송판과 합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송판이 고른 칼자국을 보여주는 것에 반해, 합판은 그 결과 가장자리 선이 거칠고 강한 질감을 떠올려준다. 대개는 단색 목판화로 제작된 경우가 많고, 더러 다색 목판화가 확인된다. 대개는 유성잉크 대신 전통적인 수성의 먹을 사용해 찍은 탓에 마치 먹그림에서처럼 부분적으로 번지는 효과가 엿보이고, 곧잘 판화를 찍은 연후에 그 위에 가필하는가 하면, 판화로 찍어낸 부분 이미지를 다른 종이에 올려붙인 일종의 콜라주 형식의 경우도 확인된다. 먹이 번지는 것이나 가필한 것, 그리고 특히 콜라주는 에디션을 염두에 둔 경우로는 보기가 어렵다. 판화의 형식에, 그 장르적 특수성에 구애받지 않고 있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저부조 형식의 판화도 많다. 그 원리를 보면 판각을 새긴 판목 위에 종이를 대고 눌러 찍어내는 방식이다. 보통의 판화와 다른 점은 판목에서도 확인되는데, 일반적인 판화의 경우에 이미지에 해당하는 부분이 양각으로 돋을새김 되는 것에 비해, 저부조 판화의 경우에는 마치 동판에서처럼 음각된 부분이 이미지에 일치하는 점이 다르다. 작가는 이미지 혹은 도상을 새길 때 주로 선묘 대신 면적인 접근을 꾀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엠보싱 된 판화로 종결되는 경우도 있고, 흔치는 않지만 판목 위에 종이를 대고 프린트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가 특이한 것은 보통의 경우에는 판목과 맞닿는 종이 안쪽 부분에 이미지가 인출되기 마련인데, 작가의 경우에는 판목 위에 종이를 대고 그렇게 덧대어진 종이의 표면에 프린트한 경우가 흥미롭다. 무색 엠보싱의 경우에는 이미지와 함께 종이 고유의 물성이 여실해서 아마도 작가가 이를 의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파리 체류 시절 작업의 뚜렷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작가의 판화가 한국현대판화사(특히 목판화와 릴리프 판화)의 공백을 메워 완성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중목판화운동과 이후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는 국내적으로 좌우 이념대립이 첨예했던 시대다. 미술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노크롬(단색화)으로 대변되는 제도권 미술과 민중미술로 대변되는 참여미술이 대립했다. 참여미술, 정치미술, 현실주의 미술을 표방한 민중미술은 당시 형상성에 바탕을 둔 소위 형상미술에서 예술의 실천 논리와 당위성을 찾았다. 전통적인 아카데미 풍의 미술과 구상 회화와의 차별성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형상미술 외에 당시 민중미술에서 유래한 용어로는 매체 미술도 있다. TV와 신문과 같은 대중매체에 나타난 사회문화적 현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성의 회화를 의미했다. 

형상 미술과 매체 미술은 말하자면 민중미술을 위한 실천 논리의 두 축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형상성을 획득해야 했다. 그 이론적 근거를 주로 게오르그 루카치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에서 가져왔는데, 반영이론, 전형이론 그리고 총체성 이론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에서의 형상성(그리고 형상 미술)이란 당대적인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영하는 형상을, 현실을 함축한 전형적인 형상을, 그리고 총체적인 국면을 반영한 형상을 의미했다. 민중미술에서 형상이 강조돼 보이는 것도 알고 보면 바로 이런 극적인 현실(극화된 현실)의 표현과 함께 사회적 현실의 전형적인 국면이 강조된 것에 따른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와중에 민중목판화운동은 민중을 계몽하고 선동하는 도구로서, 민중에 파고들기 위한 도구로서 역할을 하는 것에서 예술의 당위성을 찾고 실천 논리를 찾았다. 시위를 위한 걸게그림과 휘호, 포스터와 삽화 등 광범위한 경우에서 그 쓰임새를 찾았는데, 아마도 소통의 매개체로서의 판화가 갖는 가능성에 주목했을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경우가 처음은 아닌데, 1920년대 카프 운동에서도 역시 판화는 선전 수단으로서 널리 제작되고 유포된 사례가 알려져 있다. 

80년대 민중미술과 민중 목판화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 오윤의 목판화는 선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또한 여백의 묘미를 최대한 살리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선이 굵고 각이 뚜렷하며 목판 특유의 칼맛이 선연해서 전체적으로 힘에 넘치면서도 유연한 선이 감지된다. 그림에 나타난 소재를 중심으로 그의 판화를 보면 대략 당대적인 시대정신에 기초한 도상성과 전형성이 강하게 표출된 판화, 춤사위나 풍물 등 세속적인 풍속을 소재로 한 전통적인 놀이문화에 대한 공감과 해학과 신명을 표출시킨 판화, 새 등의 자연 소재를 끌어들인 자연 친화적이고 정적이며 서정적인 판화, 그리고 말년의 도깨비를 소재로 한 판화 정도로 구분된다. 이 모든 판화에서 힘이 느껴지며, 그 힘의 이면에는 한의 정서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의 목판화가 하나같이 힘이 넘치면서도 유연성을 잃지 않는 것은 그 힘이 이러한 한의 정서적인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볼록판의 대표적인 판종으로 목판화와 함께 리놀륨판화 곧 고무판화가 있고, 그 주요 작가로 정원철을 들 수 있다. 정원철은 <대석리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터전을 소재로 한 서사적인 판화,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소재로 한 메시지가 강한 연작 판화 <초상> 시리즈를 통해 보통사람들의 초상의 한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개인사 곧 개인의 삶의 역사가 집약된 일종의 상징이자 기호이며 삶의 지도로서의 초상이 갖는 주제 의식을 형상화한 것이다. 더불어 사람들 개개인이 저마다 지문 혹은 도장을 찍어 하나의 전체적인 개인의 초상(얼굴)을 완성하는 작업이 주목된다.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관객들의 참여로 작품이 완성되는 관객참여형 작업이고 프로젝트형 작업이다. 도장이나 지문이 갖는 개인의 자기 정체성을 초상의 자기 정체성에 결부시킨 점이 흥미롭다. 여기서 도장은 경제 논리에 기초한 외재적인 자기 정체성을, 그리고 지문은 생물학적 조건에 기초한 내재적인 자기 정체성을 각각 대변한다. 그런가 하면 자기 정체성을 매개로 초상과 도장과 지문을 하나로 결부시킨 것이 개인을 통제하기 위해 제도가 개인에게 부과한 억압의 기제 또는 기표와 관련한 또 다른 문제의식의 지평을 열어놓는다. 여기에 도장과 지문이 목판화를 확장하는(혹은 심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일이다. 

이후 시대가 변하면서 덩달아 작가들 역시 스스로 변해야 하는 현실에 처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 처음 정신이며 이념을 반영한 작업을 모색해오고 있다. 그 변곡점을 보면 대개 광범위한 의미에서 참여에서 생태로의 자기 변신이 주목된다. 아마도 삶의 현실에 그 초점이 맞춰진 관심이 저절로 가닿은 개념적 장소, 실천적 장소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 경우로는 김억, 김준권, 류연복, 이윤엽, 홍선웅 같은 작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지에 목판 릴리프를 강조한 김억의 판화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부감법으로 그린 그림이 섬세하면서도 장대한 느낌을 주고, 미학적 가치와 함께 기록의 의미를 수행한 고지도를 닮았다. 고지도의 현대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는 민중 목판화 이후 국토를 순례하면서 도시와 자연, 역사와 자연의 유기적인 관계와 기록적인 의미를 담은 기행 목판화를 예시해주고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 첩첩이 중첩된 산맥을 그린 류연복의 판화에서는 산맥에 일체화된, 산맥에 몸을, 허리를 일체화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윤엽의 판화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오버랩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듯 시공간을 넘어 현실 참여적인 소재와 주제 의식이 여전하다. 

이런 현실 참여적인(생태를 빌려 현실에 참여하는) 주제 의식으로 치자면 홍선웅 역시 여실한데, 모악산을 주제로 한 일련의 연작 판화가 그렇다. 강증산과 후천개벽, 동학혁명과 미래불 미륵과 같은 소주제가 모두 모악산이란 큰 주제 아래 모이는데, 모악산은 민중을 자기 속에 품어 들이는 어머니 산을 의미한다. 형식적으로도 작가는 황토와 칡 그리고 숯과 같은 천연재료를 이용해 염색하는 방법으로 직접 한지를 만들고, 여기에 무명천을 배접한 특유의 목판화를 예시해준다. 한지에 찍은 목판화와는 다른 색감과 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김준권의 목판화는 수성목판화로 특징된다. 각각 유성의 경우에는 프레스로 찍어내는 것으로, 그리고 수성의 경우에는 바렌으로 문지르는 것으로 차별화한 것이 특징이다. 붓으로 색을 칠한 연후에 바렌으로 일일이 문질러서 이미지를 찍어내는데, 색감의 명도가 점층적으로 변하는 그러데이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 질감이나 색감이 흡사 전통적인 수묵화를 떠올리게 한다. 종이에 스며든 잉크가 일체를 이루는 침윤성과 이로 인한 투명하고 깊은 발색이야말로 수성목판화만의 특징이며 묘미일 것이다. 보통 판화는 단색으로 떨어지는 색면이 중첩되는 것임을, 그리고 그렇게 평면과 평면이 포개지면서 이미지를 인출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경우다. 아마도 작가의 오랜 숙련과 감각이 얻어낸 경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김준권은 이런 자기만의 형식을 반영한 판화에 주력하는 한편으로, 안성과 청주를 중심으로 소위 목판대학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시민학교와 평생교육이 연장된 한 경우로서, 개인적인 작업을 넘어, 지역공동체와 더불어 예술을 실천하고 향유 하는 커뮤니티아트의 현장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외에도 김봉준(미술공방 흙손 운영), 홍성담(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바탕으로 한), 이철수(소위 선판화), 이인철, 남궁산(장서표 제작과 보급을 위한 활동이 두드러진), 정비파(태백산맥) 같은 작가들이 주목된다. 


한국현대목판화의 확장 

그리고 여기에 목판화의 현대화를 형식 실험하는 작가들이 있다. 목판화의 미래를 점쳐 볼 수 있는 경우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정원철의 판화를 특징짓는 요소로 초소형 핸드그라인더를 칼 대신 사용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칼의 확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경직되지 않으면서도 대상의 세밀한 부분까지 포착해내는 특유의 선묘가 매력이고, 우연한 선묘를 제어하는 감각이 돋보인다. 조각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속도감이 회화적인 깊이를 더할 뿐만 아니라 유기체의 생리를 그대로 빼닮은 유연한 선묘와 스크래치가 초상에 각인된 삶의 상처를 보는 것도 같다. 

조각칼 대신 치과용 소형 드릴을 이용해 선묘하는 작가로는 정원철과 함께 박영근을 들 수 있다. 정원철이 이 도구를 이용해 대상의 세부를 정치하게 묘사(정착)하고 있다면, 박영근은 같은 연장을 이용해 오히려 견고한 형태를 해체 시킨다. 도구에 의한 빠른 속도감과 함께 드로잉이 강조되고, 이로써 그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것들, 사라져 가는 것들을 환기시킨다. 만찬과 시간을 주제로 한(그 외에 다른 주제도 있지만, 아무래도 작가의 전형적인 주제라고 해도 좋을) 일련의 판화에 나타난 주제 의식이 검은 화면으로 표출된 암울한 색채 감정과 맞물려 바니타스 곧 삶의 덧없음을 환기시킨다. 모든 사물이 흐르는 시간 속의 한 과정으로 나타나며, 처음의 형태로서보다는 어떤 흔적과 궤적과 자취로서 드러난다. 흑백 모노 톤의 화면 속에 나타난 스크래치가 어둠 속에 부유하는 빛의 편린으로 화한 파편화된 사물들을 보여주며, 이렇게 드러난 사물의, 존재의 흔적이 보는 이의 감정(파토스)을 파고드는 힘(통렬함)이 있다.
 
그리고 임영길은 전자파의 유도방출에 의한 레이저로 조각도를 대신해 컴퓨터에 입력한 그림을 목판에 새기는 레이저 커팅 기법을 선보인다. 컴퓨터에 프로그램된 정보와 이미지 값을 받아 레이저로 커팅, 프린트하기도 하고, 이미지 값 그대로 프린트로 출력하거나 한다. 내용을 보면 <도깨비> 연작과 같은 세계의 기원과 민간 설화와 관련된 상징적 의미를 테마로 하기도 하고, 구글 지도를 통해 찾아낸 북한의 특정 지역을 지도상에 클로즈업해 표시하는 한편, 그 지역에 적절한 상징적 의미를 찾아 중첩 시키는 작업이 주목된다. 그 자체 현실을 반영한 주제 의식의 경우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안정민의 근작에서 예시되고 있는 실리콘 캐스팅이 주목된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와 같은 일련의 풍경을 소재로 한 작업에서 작가는 먼저 원하는 이미지를 목판에 새긴다. 그리고 그 형태 그대로 실리콘으로 떠내는 것인데, 실제로는 실리콘을 겹겹이 발라 일정한 두께를 갖는 반투명한 패드를 얻는 식이다. 실리콘으로 떠낸 것인 만큼 세부가 살아있고 섬세하다. 마치 반투명한 살갗(혹은 피부)의 이면에서 은근하게 내비치는 것 같은 은회색의 부드러운 색감과 함께 촉각적인 성질이 감지된다. 그렇게 섬세하고 부드럽고 은근한 미감을 자아낸다. 

각각 칼의 확장(정원철, 박영근, 임영길)과 판의 확장(안정민)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인데, 이외에도 자동차를 실물 그대로 프로타주 한 정명국, 종이에 묻은 가루 안료를 문질러서 이미지를 인출 하는 식의 옛날 인쇄 기술을 원용한 홍인숙, 그리고 마른 수숫대를 지긋이 밟아 조직을 부드럽게 으깬 연후에 그 위에 한지를 대고 문질러 이미지를 얻는 탁본 형식의 한영섭의 작업이 목판화의 미래를 위한 힌트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해 본다. 

지금은 목판화가 다른 판화 중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옛날에는 판화라고 하면 목판화가 당연시되었다. 그만큼 동양에서 목판화의 전통은 깊다. 더욱이 한국은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보유하고 있다. 판화의 역사가 인쇄의 역사로까지 소급되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한국에서 목판화의 전통은 가히 유서 깊은 것이었다고 할 만하다. 이런 뿌리 깊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한국현대목판화는 현대적 시대정신과 감수성에 맞게 자기 변신을 꾀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현대적 시대정신은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를 반영하고 표현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현대적 감수성은 주로 형식적인 표현의 확장을 꾀하는 식으로 발전해왔다. 주로 전통적인 칼과 판의 확장과 변용을 중심으로 자기 변신을 꾀해온 것이다. 먼저 칼의 확장을 보면, 전통적인 조각도를 비롯해 주걱 칼, 소형 드릴, 레이저커팅, 그리고 여기에 프로토타입 기법을 전용해 그 표현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판의 경우로는 전통적인 송판을 비롯해 합판, 리놀륨, 그리고 우드락과 포맥스와 같은 동시대적 신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에 때로 칼의 확장과 판의 확장에서 나아가 공간 확장을 꾀하기도 하는데, 그 자체 설치작업의 한 경우로 보아야 할 설치판화가 그렇다. 그렇게 이번 전시는 목판화와 관련한 전통의 수용과 현대적 변용을 한자리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 드문, 귀한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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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자현, 오리지널 판화와 복제판화 및 인쇄물의 개념. 

2) 정원철, 본 전시 <한국현대목판화 70년> 전을 위한 집담회, 경기도미술관. 

3) 김준권, 본 전시 <한국현대목판화 70년> 전을 위한 집담회, 경기도미술관. 

4) 김진하, 본 전시 <한국현대목판화 70년> 전을 위한 집담회, 경기도미술관. 

5) 이항성은 한국판화협회를 창립한 1958년 미국 신시내티미술관에서 열린 제5회 국제현대컬러리토그래피전에 입상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항성에 앞서, 1905년 해강 김규진이 시전지를 석판화로 제작한 것(난초)을 계기로 1905년을 한국 근대판화가 시작된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6)  1956년 정규가 목판화로 개인전을 연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따로 연도 표기가 없어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김진하, 본 전시 <한국현대목판화 70년> 전을 위한 집담회, 경기도미술관. 

7)  1970년 동아일보가 창간 50주년을 기념해 창설한. 

8) 김상유의 동 작품은 원래 실크스크린과 목판화 기법을 혼용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기회에 작가가 직접 제작해 만든 프레스기로 찍은 동판화인 것으로 판명돼 바로잡는다. 김진하, 본 전시 <한국현대목판화 70년> 전을 위한 집담회, 경기도미술관. 

9) 이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일일이 거론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만 형식실험이 강한 작가와 그 특징이 두드러져 보이는 작가를 중심으로 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해외파 목판화 작가로는 이응노 외에 이성자의 활동도 주목되는데, 1961년 목판화로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한 이성자는 한국현대판화가협회를 창립한 1968년 당시 미술대전과 국전 등 문화공보부 주관 공모전에 판화 부문이 별도 설정되지 않은 것에 문제를 느껴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김진하, 본 전시 <한국현대목판화 70년> 전을 위한 집담회, 경기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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